변호인 “피고인은 국정원의 정치적 의도나 내부사정 알 수 없는 외부인, 무죄”

피고인 “부디 죄인의 낙인이나 멍에서 벗어나 국가산업 기여할 수 있기를 희망”
 

이명박 정부 당시 김대중 전 대통령의 해외 비자금을 추적하고자 국정원 공작금을 미국 국세청 요원에게 전달한 혐의로 기소된 박윤준 전 국세청 차장에 대한 항소심 공판이 다시 한 번 재개됐다.

21일 오후 서울고등법원 제9형사부(재판장 한규현)는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국고 등 손실) 혐의로 기소된 박윤준 전 차장 사건에 대해 기존 재판부의 폐부에 따른 변경이 있었던 만큼 검찰과 변호인 측의 서증조사 및 최후변론의 시간을 가졌다.

앞서 박윤준 전 국세청 차장은 2010년 국제조세관리관으로 근무하며 김대중 전 대통령의 비자금을 추적하라는 이현동 전 국세청장(당시 차장)의 지시로 해외정보원에게 국정원 자금을 전달한 것에 관여한 혐의로 기소됐다.

당시 1심 재판부는 “박윤준 전 차장이 한정된 정보를 갖고 수동적으로 응해 내부결정에는 관여하지 못하는 외부자의 지위에 있었고, 이현동 전 청장에 지시를 받고도 추진배경이나 경과, 국정원에게 건네진 자금이 어떤 경위로 조성·집행됐는지 알 수 없는 만큼 중개 역할에 그친다”며 무죄를 선고한 바 있다.

이날 검찰은 피고인이 DJ 비자금 추적 사업의 불법성을 처음부터 인식했으며, 특정정치인에 대한 비리정보 수집에 대한 국정원 자금 사용에 적극 참여한 공범이라고 밝혔다.

검찰은 “지난 원심 재판부는 피고인이 불법성을 명확하게 인식하기보다는 단순 의심하는 정도에 그쳤다고 했지만, 피고인은 DJ 비자금 추적 업무에 대한 거부감을 느꼈고 국정원이 정치적 일을 한다고 생각한다는 진술을 했었다”며 “이는 수차례에 걸친 조서에 나타나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피고인이 국정원의 DJ 비자금 언론 폭로 계획을 명백하게 인지한 상태에서 직접 자금을 해외정보원에게 전달하는 점 등에 비춰 피고인은 공동정범임이 충분히 인정된다”며 “백번 양보하더라도 방조범의 고의는 넉넉히 인정되며 이는 다른 판례들에서도 나타나는 만큼 재판부가 논리적 모순 없는 판단을 해 달라”고 요청했다.

한편 변호인 측은 피고인이 국정원의 의도나 내부사정을 알 수 없는 외부인의 지위에서 이현동 전 국세청 청장에게 DJ 비자금 관련 자료를 파악하라는 지시를 받았을 뿐이라며 무죄를 주장했다.

변호인 측은 “피고인이 간접적으로 접촉했던 국정원 측 사람들이 DJ 비자금 추적에 대한 정치적 의도를 전달했다는 내용이 없는 상태에서 국정원과 범행을 공모하거나 의도를 인식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다”며 “이는 지난 원심 판결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고 설명했다.

또 “지난 1심에서 피고인은 해외정보원에게 국정원 자금이 전달되는 것은 본인의 역외탈세 업무에도 도움이 된다고 밝혔으며 실제 정보를 제공받아 국세청 업무에 활용했다”며 “국세청에서 역외탈세 관련 정보를 여러 루트를 통해 매입한다는 사실은 관련 증거에 의한 명백한 사실이다”고 덧붙였다.

변호인 측은 “검찰은 피고인과 동일한 사실로 기소된 이현동 전 국세청장에 대한 사건에서도 동일한 주장을 했으나 재판부는 이현동에 대한 국고 등 공동정범이 성립하지 않는다며 무죄를 선고한 바 있다”며 “피고인은 이현동의 지시에 의해 해외정보원에 대한 국정원 자금 전달에 관여한 것에 불과한 만큼 이현동이 무죄면 피고인도 당연 무죄가 되는 것이 순리에 맞다”고 반박했다.

아울러 “피고인은 자타가 공인하는 국세청의 역외탈세 전문가로서 공직에 근무하는 수십 년간 관련 국고손실 사범들을 조사하고 처리했다”며 “피고인이 이러한 국정원의 음모에 개입해 범죄를 저질렀다고 보기 어려운 만큼 모든 사정을 고려해 피고인에 대한 모든 공소사실을 무죄로 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최후편론에 나선 박윤준 전 차장은 “공무원 생활 이후 새로운 직장에서도 세금 중에서도 국제조사라는 제한적이지만 중요해지고 있는 분야에서 근무하며 애정과 자긍심, 사명감을 갖고 있다”며 “언제까지 이런 실무 혹은 연구를 계속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부디 죄인의 낙인이나 멍에에서 벗어나 국가산업에 기여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한편 재판부는 내달 25일 판결을 선고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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