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년 4월 변호사들에게 세무대리 행위 전부를 제한하는 것은 헌법에 합치하지 않는다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나오자 세무사들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 헌재의 결정은 6:3이었고, 재판관 한명만 더 소수의견을 밝혔어도 결정은 달라질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헌재법은 위헌, 탄핵, 정당해산, 헌법소원에 관한 인용결정을 하는 경우 재판관 6인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같은 사안의 결정을 10년 전에는 다르게 내렸던 헌재였기에 세무사들의 낙담은 더 컸다. 그러자 세무사업계에서는 헌재 한번 방문하지 않은 집행부를 성토하는 회원들이 많았다. 그리고 그 집행부는 선거에서 처참히 패배했다.

헌재 결정은 세무사자격을 가진 변호사들에게도 일부 세무대리업을 허용하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보완입법은 정부와 입법기관에서 알아서 하라고 했다. 다만 19년 말까지 입법을 완료하라고 했다. 그러나 우려했던 것처럼 입법은 이뤄지지 못했다.

헌재 결정을 두고 해석이 갈렸다. 세무사들은 세무대리 전부허용은 아니라고 해석하고, 변호사들은 전부허용이라고 주장했다. 솔직히 헌재 결정은 변호사들에게 세무대리 일체를 전부 금지하는 것은 잘못이라는 것이었다. 즉 허용 가능한 것은 허용하라는 취지였지 전부 허용하라는 문구는 어디에도 없었다. 법률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 누가 봐도 명백했다.

그런데 변호사들은 이때다 싶어 전부허용이라면서 ‘세무사법은 전부허용으로 개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법률 해석의 전문가들이 보기엔 그렇다면서 ‘자격증의 힘으로’ 밀어붙였다. 개정안의 처리는 국회의 몫이었다. 기획재정위 소관이었고 그 위원회에서는 일부 허용으로 법안이 통과되었다. 그러나 변호사들이 대거 포진한 법사위에서 여지없이 가로막혔다.

작년에 세무사시험에 합격한 세무사자격자들이 보완입법이 미뤄지면서 등록조항이 실효되어 개업을 할 수 없다며 조속한 입법을 촉구하기도 했으나 법사위는 그런 주장에는 무게를 두지 않았다. 무조건 법무부와 합의를 해오라고만 했다. 결국 20대 국회에서 일부허용을 골자로 하는 세무사법 개정안은 통과되지 못했다. 변호사들이 이긴 것이다.

현재 세무사들의 숫자는 1만3000여명이다. 세무사자격 변호사들이 관리번호를 부여받고 세무사업을 할 경우 수치상으로는 1.3배의 세무대리인이 한꺼번에 시장으로 쏟아져 나오는 것이다.

기존 세무사들은 ‘변호사자격을 가진 분들이 실제로 세무대리업을 얼마나 하겠느냐, 세무사들의 자존심 때문에 전부허용을 반대하는 것’이라면서 시장의 영향은 미미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과연 그럴까. 현업에서 직접 기장을 자기 손으로 하는 세무사들의 생각은 다르다. 현재 세무사시장에는 명의대여가 분명히 존재하고, 또 사무장 영업(사무장이 거래처를 가지고 세무사를 쥐락펴락하는)이 활개치는 엄연한 현실에서 변호사들에게 아무런 교육과 제도적 장치없이 무작정 관리번호를 부여하고 세무대리시장으로 진출하게 한다면 기존 세무대리시장은 무질서해지고, 무너질 것이라는 우려를 숨기지 않는다. 관리번호를 부여받은 변호사들이 세무사시장의 사무장이나 직원들을 스카우트하여 지인들의 기장대리 등 최소한이라도 세무업무를 시작할 경우 그 숫자만큼이나 시장은 3만명(회계사 포함시 4만명 이상)의 완전경쟁시대로 바뀐다는 것.

이런 우려를 너무나 잘 알기에 세무사들은 20대 국회에서 법사위원장실을 두드리고 또 두드리면서 개정안(일부허용)의 통과를 절절히 호소했었다. 여성세무사들까지 찾아가 눈물로 호소했다는 이야기도 들렸다. 그리고 세무사시험 합격자들이 주축이 되어 여상규 전 위원장과 김도읍 전 통합당 간사 등을 상대로 거액의 손해배상소송(뒤에 취하)을 제기하기도 하는 등 ‘읍소와 압박’의 전략까지 다 동원해 봤지만 무용지물이었다.

결국 변호사들도 무작위로 세무대리 일체를 대행할 수 있는 길은 열리고 말았다.

그러자 세무사등록제도를 관장하는 기획재정부는 세무사 신규합격자는 물론 변호사들까지 등록도 교육도 필요 없는 무제한 개업이 가능해지자 이들을 최소한이라도 ‘관리해야 겠다’는 생각에 예규를 만들었다. ‘임시관리번호’라는 것이 튀어나온 것. 어쨌든 시험에 합격한 세무사자격자나 세무사자격을 자동으로 받은 변호사들은 국세청에 관리번호를 신청하면 세무대리업무 일체를 할 수 있게 됐다. 헌재의 결정에 직접적인 영향권에 있는 세무사 자격 변호사들은 1만8000여명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에게도 세무대리시장이 완전히 무방비로 개방된 것이다.

그렇다면 세무사법을 지키고, 제도를 관리해야 하는 정부는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라는 의문이 절로 나온다. 그래서 나온 것이 ‘정부의 입법 실패로 이제 자격만 있으면 누구나 세무대리업무 일체를 할 수 있습니다’라고는 못하고, 이를 관리하기 위한 방편으로 임시관리번호라는 것을 들고 나와 ‘관리’를 하겠다고 예규를 낸 모양새다. 이 얼마나 영혼 없는 처사인가? 세무사들이 얼마나 화딱지가 났으면 ‘차제에 세무사제도 관리업무를 기획재정부에서 떼어내어 아예 법무부로 이관해버리라’는 볼멘소리까지 해댈까.

진짜 문제는 따로 있다.

20대 국회에서 처리되지 못한 세무사법 개정안이 21대 국회에서 통과한다하더라도 교육과 등록절차도 없이 이미 개업한 이들 세무대리인들을 어떻게 되돌릴 수 있을까라는 것이다. 그때가 되면 아마도 ‘낙장불입’이라는 투전판의 논리가 득세할 것이다. 결국 ‘세무사는 공공성을 지닌 세무전문가로서 납세자의 권익을 보호하고 납세의무를 성실하게 이행하게 하는 데에 이바지하는 것을 사명으로 한다’는 세무사법 제1조를 금지옥엽으로 여기며 세무사로서 자부심을 가졌던 1만3000여 세무사들은 투전판으로 내몰릴 형국이다. 좋은 말로 ‘무한경쟁’이다.

내 터전을 무방비로 내어 놓게 된 세무사들은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가. 기장대리와 성실신고확인제를 지켜내지 못한 것은 세무사 집행부의 책임이라면서 총사퇴하라고 요구할 것인가. 국회 법사위가 가로 막았으니 ‘법사위는 물러가라’라면서 자격증을 국회 앞마당에 내동댕이치는 결기로 맞설 것인가. 아니면 기재부도 입법을 성사시키지 못한 관리 책임이 있으니 기재부장관은 물러나라고 외칠 것인가. 이도 아니면 그래도 세무문제는 세무사가 ‘제일’이니 ‘변호사들의 세무시장 진입은 미미할 것이야’라고 자위하면서 세태에 순응할 것인가.

50년 이상 세무사제도를 지키면서 돈벌이를 위한 세무사가 아닌 ‘나는 세금을 정확하게 내는데 옆집은 세금을 적게 내는 것 같다’는 납세자들의 배 아픔을 어루만지는 조세정의의 파수꾼으로서의 자격사라고 자부해온 세무사들이 팬데믹의 코로나 보다 더 불안해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이제 세무사업계는 본회장과 생각이 같은 새로운 서울세무사회장이 당선과 함께 취임했고, 본회장도 임기 2년차를 맞으면서 궁합이 맞는 라인업이 짜여진 만큼 올해는 ‘큰 성과’를 올릴 것이라는 기대가 적지 않다. 그리고 세무사들을 울렸던 국회 법사위원장도 통합당이 아닌 민주당이 차지했다. 세무사들의 기대가 부풀어지고 있다. 세무사들은 그날을 기대하면서 요즘 말로 ‘존버’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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