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장을 바꾼다는 소식이 전해진지 40여일, 차일피일 미뤄지던 새 국세청장 후보자가 지난달 30일 발표됐다. 예상대로 김대지 국세청 차장이 문 대통령의 지명을 받았다. 그는 이제 국회의 인사청문회를 거쳐 대통령으로부터 임명장을 받으면 영예의 국세청장(24대)에 취임하게 된다.

1년여 전 김현준 현 청장이 임명될 때 그는 부산국세청장이었다. 알려진 바는 당시에도 청장 후보자로 경쟁했다. 그리고 2인자인 차장 자리에 올랐다. 그간 국세청 인사 역사를 보면 청장과 후보자로 경쟁할 경우 대부분 쿨하게 옷을 벗는 경우가 많았으나 김 차장은 예외였다. 또한 자신과 이번에 경쟁을 했던 김명준 서울국세청장이 새 후보자가 지명되자마자 멋지게 사표를 낸 것과도 달랐다.

이번 청장 경쟁은 자못 관심이 컸다. 호남을 텃밭으로 하고 있는 민주당 정권에서 ‘현 정권 세 번째 청장은 호남 출신이 될 거야’라는 전망과 ‘아니냐, 경찰청장처럼 대통령과 인연이 있는 부산 출신의 김대지 차장이 될 거야’를 놓고 설왕설래가 많았다. 결과는 인연으로 승부가 갈렸다는 것이 세평이다. 좋은 말로는 ‘대통령의 국정철학 이해도가 높을 것이다’라는 것이 점수를 딴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는 달리 세정가에서는 솔직히 현 김현준 청장이 1년 정도 되면 김대지 차장이 청장에 오를 것이라는 일부 의견이 있었다. 현 청장이 세정을 잘 이끌고 있는 마당에 1년 만에 바뀔 것이라고 하면 소위 ‘흔든다’는 프레임으로 인해 겉으로 말을 못했지만 속내는 그랬다. 청장과 경쟁을 하고서도 당당히 2인자 자리에 올랐고, 취임 1년이 지나감에도 제스처 측면에서라도 후진을 위한 용퇴라는 말이 흘러나오지 않았던 점에서 누구나 유추가 가능했다.

결국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는 국세청장이 되기 위해 ‘와신상담’해왔고, 대통령과 가까운 ‘실세(實勢)’였다고 사람들은 믿게 됐다.

그는 행정고시 출신이면서도 현 정부 이전에는 크게 주목을 받지 못했다. 노무현 정부 당시 청와대 행정관으로 일했던 것이 아킬레스건이 되었는지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는 ‘중용’이라는 말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리고 현 정부 들어 서울국세청 조사1국장, 부산국세청장, 차장까지 승승장구해 왔다.

‘와신상담, 고진감래, 절치부심’ 다 좋다. 이제 그는 어떻게 해야 할까.

국세청장 자리에 오르기 위해서만이 버텨온 것이 아니라면 자신의 세정철학을 도도히 펼쳐야 한다. 솔직히 국세청장이 되기까지 자신의 세정철학을 대놓고 말하기가 곤란한 것이 국세청 문화다. 그래서 우리는 그가 어떤 철학을 가졌는지를 잘 모른다. 그런 점에서 그의 세정철학이 드러날 다가오는 인사청문회가 중요하다고 여긴다.

세수확보에 중점을 둘 것인가. 국민들이 세금을 좀 더 쉽고, 정의롭게 낼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데 주안점을 둘 것인지를 가늠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국세공무원 생활 수십 년 동안 내가 청장이 된다면 이렇게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수없이 쌓고 부수고 또 짓고 허물고 해봤겠지만 납세자들의 소리를 주로 듣는 기자의 고언(苦言)은 이런 것이다.

국세청을 위한 세정, 국세청장을 위한 세정, 정권을 위한 세정, 세수를 위한 세정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과거 어떤 국세청장이 개혁이라는 미명으로 납세자들의 손발인 세무서를 35개나 폐지했던 것처럼 밑도 끝도 없는 막무가내식 개혁이 아닌 실제로 필요도 없다는 말이 많은 지방국세청의 폐지, 조세정의를 외치면서 조사4국(특별조사국)의 기능은 왜 축소하는지, 세무서에서 답변한 것을 믿고 신고 납부한 납세자가 엉터리라면서 세금을 추징하는 황당한 행정의 개선, 대기업 세무조사 대상의 과감한 공개, 고사리 손으로 모으는 밀알정보 대신 정보국의 신설 등 실질적 개혁을 하나하나씩 해 나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리고 납세의무에 대한 감시 역시 등한시 할 수 없지만 납세자들의 권리보장을 위한 세정운영으로 정권의 충복이 아닌 국민인 납세자의 충복의 길을 걸었으면 한다. 다소 고단하겠지만.

그래서 내가 청장으로 일하고 퇴직한 후 ‘국세행정이 조세정의의 수준을 한 단계 발전시키는데 일조한 것 같다’는 평가를 받는 그런 청장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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