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산업은행이 HDC현대산업개발(현산)의 아시아나항공 재실사 요구를 일축하고 인수 무산 시 책임이 현산에 있다고 압박하면서 공은 다시 현산으로 넘어간 모양새다.

재계에서는 현산이 그동안 산은의 대면 협상 요구를 무시하고 언론을 통해 금호산업]과 아시아나항공이 인수 계약을 위반했다고 주장한 점을 들어 현산의 아시아나항공 인수 포기 선언이 임박한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온다.

다만, 산은이 이날도 현산을 향해 "진지하게 마지막 협의를 해달라"며 협상의 문을 열어 뒀고, 현산이 인수 무산에 따른 책임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협상 테이블에 앉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최대현 산은 기업금융부문 부행장은 이날 오후 온라인 기자간담회에서 현산의 아시아나항공 재실사 요구에 대해 "수용할 수 없다"고 밝혔다.

현산이 지난달 24일 매각 주체인 금호산업과 채권단에 '아시아나항공과 자회사들에 대한 재실사를 12주간 진행하자'고 제안한 것을 일축한 것이다.

이에 따라 현산이 어떤 반응을 내놓을지에 관심이 쏠린다.

현산은 작년 12월 금호산업, 아시아나항공과 아시아나항공 인수 계약을 맺고 국내외에서 기업결합 승인 심사를 추진하는 등 인수 절차를 하나하나 밟아왔다.

하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항공업계가 직격탄을 맞고 아시아나항공의 경영상황이 악화하자 인수에 소극적인 자세로 돌아섰다.

이런 태도 변화로 재계에서는 현산이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포기하려 한다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에 채권단이 현산에 인수와 관련된 입장을 표명하라고 압박했지만, 현산은 침묵으로 일관했다. 그러다가 당초 정했던 거래종결일을 한달여 남겨둔 6월 초 "변화한 상황을 고려해 인수 상황을 재점검"하자며 '재협상' 카드를 꺼냈다.

이같은 현산의 제의에 채권단은 "협상 테이블로 나오라"고 응답했지만, 현산은 대면 협상에는 응하지 않은 채 보도자료를 통해 금호산업과 아시아나항공이 인수 계약을 위반했다고 주장하면서 공세를 폈다.

이런 분위기 속에 금호산업과 아시아나항공은 지난달 14일 현산에 인수를 촉구하는 내용증명을 보냈다. 이 내용증명에는 '이달 12일 이후에는 계약해제 및 위약금 몰취가 가능하다'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금호 측의 이런 조치에 현산이 꺼낸 카드가 '12주간의 재실사'였다.

현산이 재실사를 거론하자 금호산업과 채권단은 현산의 진정성을 의심했다. 재계에서도 현산이 아시아나 인수를 포기하고 2천500억원의 계약금 환급 소송에 대비해 명분을 쌓으며 시간을 끌려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왔다.

이를 두고 현산과 금호산업은 지난달 30일 각각 보도자료를 내며 공방을 벌였다.

당시 현산은 "금호산업과 아시아나항공이 이미 선행조건 미충족 등 인수계약을 위반하였으므로 현산은 계약을 해제하고 계약금 반환 절차를 진행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아시아나 인수 재점검과 관련해 금호 측으로부터 "충분한 공식적 자료는 물론 기본적인 계약서조차 제공받지 못하고 있다"는 게 현산 측 주장이다.

그러나 금호산업은 "계약 체결 전 실사 단계에서부터 자료를 제공했고, 계약 체결 후에도 인수준비위원회 활동, 자료의 발송, 대면보고 등을 통해 충분히 정보 제공을 하고 설명이 이뤄졌다"며 사실 왜곡이라고 반박했다.

이날 산은은 현산과 금호산업 측의 공방에서 금호 측 편을 들었다.

산은은 지난달 러시아를 끝으로 국내외 기업결합신고가 끝나 거래 종결을 위한 선행 요건이 충족된 만큼 이달 12일부터는 금호산업이 계약 해제권을 갖는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산은은 이날 현산의 재실사 요구를 일축하면서 현산이 아시아나 인수에 진정성을 보이지 않는다면 인수 무산이 불가피하다고 했다.

최 부행장은 "수많은 M&A를 경험했지만, 당사자 면담 자체가 조건인 경우는 처음"이라며 "현산이 계속 기본적인 대면 협상에도 응하지 않고 인수 진정성에 대한 진전된 행위를 보이지 않는다면 인수 무산이 현재로선 불가피하다"고 강조했다.

이동걸 산은 회장도 "(현산이) 자꾸 재실사를 요구하는 의도가 무엇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고 현산의 인수 진정성에 의문을 표했다.

이 회장은 또 계약 무산 가능성과 관련해 "저는 금호와 산은은 하등 잘못한 게 없다고 생각한다"며 "계약 무산의 모든 책임은 현산에 있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현산의 보도자료 주장은 상당 부분 근거가 없었고, 악의적으로 왜곡된 측면도 있었다고 생각한다"며 "금호 측과 아시아나 측에서 신의 성실 원칙에 입각해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공방을 마무리 짓고, 양측이 진지하게 마지막의 협상을 해 계약을 종결지을 때가 됐다고 했다.

현산은 이날 산은 기자회견 내용과 관련해 내부 논의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 관계자는 "채권단의 재실사 거부로 현산이 이달 11일까지 뭔가 답을 내야 하는 상황으로 급해졌다"며 "이제 인수를 포기하느냐 리스크를 안고 인수를 계속 추진하면서 재협상 테이블에 앉느냐만 남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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