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에서 수십년 근무하다 퇴직하는 경우 대부분 세무사로 개업하는 것이 일반화 되어있지만 최근 들어서는 직업군이 다양해지고 있다. 청장을 비롯한 고위직들의 경우 국내 대형로펌이나 회계법인 등의 고문으로 새 명함을 새기는 게 여전히 벗어날 수 없는 세무인의 길이지만 하위직의 경우 파란색의 세무사 명함에서 기업에서 새겨준 빨강 파란 노란색의 명함으로 빛을 발하고 있다.

지난해 국세청 내에서 승승장구하던 한 과장이 그만두자 주위에서는 당연히 로펌에서 새 인생을 설계할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대기업으로 진로를 틀었다. 그가 새긴 명함은 재경팀 상무였다. 후배들에게는 (세무사가 아닌) 이런 길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도 결정의 배경이라고 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처럼 국세공무원을 그만둔 후 곧바로 세무사로 개업하거나 세무법인 등에서 자리를 잡기 보다는 기업체로 방향을 트는 경우가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

최근 세무사로 개업한 한 전직 세무공무원은 한사코 세무법인 소속 세무사를 배제했다. 그의 말인즉슨 국세청에서도 상사들을 무수히 모셨는데 자유인(세무사)이 되어서까지 상사를 모시고 싶지는 않다고 했다. 이처럼 현실적으로 세무공무원 생활을 접은 후 세무사 자격이 있든 없든 개인사무실을 차릴 능력이 안되는 경우 세무법인의 구성원이 되어 세무사로서 활동을 해야 하지만 그는 더 이상 퇴직 후에까지 조직의 룰을 짊어지고 살지는 않아야 겠다는 것이 크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국세청을 퇴직한 후 기업체에서 제2의 인생을 시작하는 전직 세무공무원들이 나날이 늘어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들어서는 국세청에서 퇴직한 후 기업체 등에 취업하기 위해서는 공직자윤리법 상 퇴직공직자의 취업제한 규정에 따라 심사를 거쳐야 한다는 점에서 이 심사를 거친 경우 통계에 잡힌다. 따라서 통계에 잡히지 않고 새 길을 가는 사람은 더 많은 것으로 추정된다.

통계에 나타난 국세청 퇴직자 재취업자 수(세무사 개업 외)는 지난 `16년 12명이었다. 이들이 선택한 곳은 대기업의 차장, 중견기업의 감사, 부사장, 상무 등 다양했다. 그리고 `17년에는 그 숫자가 20명으로 늘었다. 직위도 직원에서부터 과장, 차장, 부장, 전문위원, 본부장 등 넓어졌다. 기업체의 성향도 증권사, 은행, 제약, IT기업 등 다양하게 분포됐다.

그리고 `18년과 `19년엔 더 많아졌다. `18년엔 22명, `19년엔 25명이었고, 올들서 7월까지 14명이었다. 올들어 국세청 퇴직 직원들이 기업체에 몸담은 사례는 쿠팡, 우리조명, 우리들제약, 엘지화학 등 그 폭이 점차 넓어지고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아마 이들 중에는 국세공무원들에게 자동으로 주어지던 세무사자격제도가 폐지되면서 국세공무원으로 오랫동안 근무해도 퇴직 후 세무사 개업이라는 메리트가 사라지면서 제2의 인생을 서둘러 준비한 경우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세청 사람들은 퇴직자들의 이런 선택을 대체적으로 반기는 분위기다. 국세청 출신들이 기업체 곳곳에 자리 잡을 경우 기업들의 세무문제가 발생했을 때 국세공무원과의 소통이 좀 더 쉽다는 점을 꼽는다. 나아가 퇴직자들 모두가 세무사로 개업할 경우 국세청과 세무공무원들은 ‘한통속’이라는 사회적 편견을 해소하는데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기업들도 퇴직 국세공무원들의 기업행에 ‘댕큐’라는 반응이다. 세무조사 등 세무문제가 발생했을 경우 국세청 출신이 있는 것과 없는 것과는 크게 차이가 난다고 말하고 있다. 국세청 출신이 없어도 세무전문가들의 도움을 충분히 받을 수 있지만 알고 도움을 받는 것과 모르고 도움을 받는 것과는 천양지차라는 것. 국세청 퇴직자들의 기업행, 국세청도 좋고 취업자들도 좋은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굿잡’이 되어가고 있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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