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찰 자격 완화시켜 특정업체 ‘일감몰아주기’ 지적

직원들 성범죄·청탁금지법 위반사례 수십 건 드러나
 

'국민의 발' 역할을 자처했던 한국철도공사(이하 코레일)와 국가철도공단(이하 철도공단)이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된 지 역사가 100년이 넘었건만 기관 비리와 직원들의 도덕적 해이가 여전히 뿌리 뽑히지 않은 채 만연해 있는 것에 대한 국민적 공분을 사고 있다.

공공기관 알리오에 따르면 코레일은 공기업(준시장형)으로 철도 운영·관리를 맡고 있고, 철도공단은 철도계획·기술개발·관리개발 등의 업무를 수행하고 있는 준정부기관(위탁집행형)이다. 국토교통부 산하인 두 회사는 닮은 듯 서로 다른 공공기관이다.

제21대 국회 국정감사가 한창인 가운데 지난 15일 국회에서 한국철도공사, 국가철도공단, ㈜에스알, 코레일관광개발(주), 코레일로지스(주), 코레일네트웍스(주), 코레일유통(주), 코레일테크(주) 등에 대한 국정감사가 진행됐다. 오는 26일까지 진행되는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위원장 진선미)의 국토교통부 및 소속 산하기관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이날 코레일과 철도공단이 '한국형 신호시스템 시범사업'을 추진하면서 특정업체에게 일감을 몰아줬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날 정동만 의원(국민의힘)은 코레일이 진행 중인 '일산선 도시철도신호시스템 시범사업'과 철도공단이 업체를 선정한 '전라선 신호시스템 시범사업'에서 특정업체에 대한 특혜가 있었다는 의혹을 강하게 제기했다.

정부가 국내 열차 신호기술이 외국기술에 종속된 점을 개선하기 위해 지난 2010년부터 2018년까지 국가 R&D를 통해 한국형신호 기술을 개발해왔다. 도시철도용 KRCTS-1은 2010년 12월부터 2014년 7월까지 335억원 규모를 투입한 R&D기술개발로 H사, L사, E사 등 3개 업체가 참여했고, 일반철도와 고속철도용 K-2는 지난 2014년 12월부터 2018년 6월까지 445억원 규모의 D사, L사, S사 등이 참여했다. R&D개발에 참여하지 않은 경우는 시험성적 성능조건 확인이 필요하다.

이 같은 한국형신호시스템 사업에 대해 정 의원은 코레일이 일산선 도시철도 시범사업으로 2개 공구 182억원 규모의 입찰을 진행하면서 개발(R&D)에 참여하지 않은 D업체에 입찰자격 완화해 주면서 스스로 특혜 논란을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개발에 참여한 3개 업체는 입찰 참가 자격이 주어졌지만 D업체의 경우 개발에 참여한 실적 없이 실포인증만 받은 상태에서 코레일이 입찰규정을 완화해 특혜를 준 것이라는 것이다.

정 의원은 손병석 코레일 사장을 상대로 "시험성적서를 안보고도 입찰할 수도 있느냐. 그런 경우는 없겠죠. 그런데 R&D에 참여하지 않은 업체를 규정을 완화시켜 실포인증만 받은 업체를 참여시킨 것에 특혜 의혹이 일고 있다"고 질타하자, 손 사장은 "국가에서 정한 R&D를 실시했고, 그로 인해 인증규격이 만들어졌고, 인증규격에 합격한 업체에 대해서는 입찰에 참여하는 것이 가능한데 사실상 3개 업체가 R&D에 참여했는데, 그외 다른 한 업체가 R&D 자격이 없어…"라고 말끝을 흐리며 답변했다.

정 의원이 "변명하지 마시라"라고 일축하고 화살을 철도공단 쪽으로 돌리며, 철도공단에 대해서 "R&D에 참여한 D업체가 시범사업 입찰에서 3개 공구 모두 독점하지 않았느냐"라고 다그쳤다.

철도공단은 2018년 7월 기술본부 신호처에서 작성한 한국형신호시스템 시범사업 추진계획안에는 ‘특정기업의 독점을 방지하겠다’, ‘공급다변화를 위해 다수의 업체가 참여할 수 있게 하겠다’고 적시했다. 또 2019년 9월 신호설비 실시설계용역보고서에는 ‘개발한 장치들이 서로 호환되는지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므로 1사1공구 적용이 가능하다’는 내용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2020년 5월 입찰결과 3개 공구 모두 D업체에 일감을 몰아준 결과로 이어졌다고 꼬집었다.

아울러 철도공단이 제시한 동일한 고장이 발생할 확률에 대한 신뢰성 규격도 D업체의 의견에 따라 변경돼 계약됐다며 이를 지적했다. D업체는 최근 10년 동안 공단에서 발주한 ‘신호관제사업’ 34건 중 25건 낙찰을 받았으며, 금액으로 보면 1135억 중 93%인 1056억원의 사업을 낙찰 받았다.

정 의원은 용역보고서를 인용하면서 "1사1공구 적용이 가능하다는 내용이 있는데 이를 무시한 것 아니냐"라고 하자, 김상균 철도공단 이사장은 "저희는 그렇게 의도했는데, 결국에는 한 업체가 독점했다"고 답했다. 이에 "결국 D업체에 몰아준 게 아니냐"라고 묻자, 김 이사장은 "몰아준 것은 아니고 3개 공구를 나중에 각각 평가를 했는데 결국 D업체가 1등을 해서 그렇게 됐다"고 해명했다.

결국 자신들이 맡겨 실시한 신호설비 실시용역보고서 내용은 무시한 채 경쟁 입찰을 통해 진행했다는 말이었다.

정 의원이 "D업체가 신뢰성 규격을 만족시킬 수 없다고 하자 D업체 의견에 따라 규격도 변경돼 계약된 것 아니냐"라고 되묻자, 김 이사장은 "이러한 규정으로 공고해도 참가업체들이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고, 분명히 특혜가 아니라 공정한 경쟁을 했고, 공단에서는 평가과정에 전혀 개입하지 않았으며, 평가 툴(tool) 430명을 두고 참가업체들과 공단 감사실이 보는 앞에서 뽑았다"고 답변했다.

이날 국정감사를 통해 피감기관인 코레일과 철도공단의 수장이 곤욕을 치르는 모습을 국민들이 지켜봐야 했다. 또한 수년간에 걸쳐 두 기관에서 벌어졌던 각종 비리에 연루된 직원들의 도덕적해이가 심각하다는 지적도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코레일의 경우 직원들의 음주운전, 폭행과 사기, 절도, 상해, 모욕죄로 검찰·경찰 등 수사기관으로부터 조사를 받거나 벌금형, 징역 처분을 받는 등 지난 5년간 수십명이 사법처리됐거나 현재 조사가 진행 중에 있기 때문이다. 지난 4월 경기도 일산 마두역 역무원으로 근무하던 코레일 계열사 직원이 근무시간에 여자 화장실에서 불법 촬영을 시도하다가 검거되는 일도 있었다.

이에 대해 코레일 관계자는 “수차례 지적돼 온 일이지만, 특정업체에 특혜를 줄 수 있는 사안이 아니어서 단호하게 국가개혁법에 따른 적법한 입찰을 진행할 것”이라며 “비도덕적인 직원들의 문제는 질타 받아 마땅하고, 꾸준히 제도개선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입장을 전해왔다.

철도공단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성폭력과 성비위 사건이 적발되기도 했다. 2017년 청탁금지법(일명 김영란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직무 관련자로부터 저녁식사를 대접받고, 골프를 치거나 유흥업소 등에서 향응을 제공받았고, 외부강의 후 신고의무를 위반한 경우도 있었다. 뇌물을 받거나 심지어 제3자와 공여하기도 했다. 이 법을 위반한 사례로 올해까지 줄지어 징계나 주의, 경고조치를 받은 직원이 수십명에 이르렀다.

철도공단 고위 관계자는 “국감에서 제기된 내용은 사실과 다르다”며 “공단이 입찰에 개입할 수도 없고 평가위원들이 전문성을 가지고 공정한 평가를 진행했다”고 밝혔다. 이어 “직원 비위 건에 대해서는 징계 등에 대한 자료를 추가로 국감에 제출할 예정이다”라며 “충분히 개선의 의지를 갖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국가의 대동맥인 철도를 위한 세금이 언제쯤 올바르게 쓰여지고, 승객들이 안심하고 열차를 이용할 수 있을 것인지, 두 기관이 국가 산업기관인 만큼 제대로 된 인력과 장비확충 및 직원교육 강화 등 특단의 대책이 절실히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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