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5월 31일 제28대 한국세무사회 임원선거를 위한 후보자등록 마감후 회장 및 감사, 윤리위원장 선거에 나선 후보자들이 기호추첨을 한 후 포즈를 취했다.

◆…1981년 3월 어느날. 한국세무사회가 서울 관철동에 회관을 두고 있었던 시절. 국세청 고위직을 지낸 회원이 회장으로 재임중이었다. 그런데 그는 회장직을 2년의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1년 만에 물러났다. 회원들의 마음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오판을 했던 것이 중도 하차사태를 초래했다. 

세무사회 51년 역사에서 회장을 1년하고 물러난 유일한 회장으로 기록에 남아있다. 

그가 당선된 것도 회원들의 열렬한 지지에 의한 것이었고, 물러난 것도 회원들의 강력한 민의에 의한 것이었다. 그는 재일교포 출신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세무사회는 공식 행사에서의 회장 인사말을 일본인들이 발음하기 어려운 자구는 아예 발음이 편한 표현으로 바꾸어 만들어 올리는 등 회장의 직무를 수행하는 데 최선으로 보필했고, 회장직은 순탄하게 이어졌다. 

그런데 그는 한 순간의 착각으로 ‘감(感)없는 회장’으로 찍혀 사퇴할 수밖에 없었고, 세무사회의 역사이야기에 회자되곤 한다. 

사건은 이랬다. 

당시 재무부에서는 세무사징계권을 국세청으로 이관하려고 했다. 일이 많기로 유명한 재무부 입장에서는 그 업무를 국세청으로 넘겨 관리를 하게하면 더 효율적일 것이라는 판단에 따라 추진했고, 당시 세무사회 회장은 자신이 국세청 국장 출신이었다는 점에서 국세청이 그 업무를 맡으면 오히려 국세청과 더 원활한 업무협조가 될 것이라는 생각에서 ‘오케이’ 사인을 했다. 당시 재무부에서 그 일을 추진했던 담당자도 그 회장과 친인척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 사안에 대한 세무사들의 생각은 국세청 고위직 출신 회장님의 생각과는 완전히 달랐다. 

세무사들은 세무사징계권을 국세청으로 이관한다는 것은 ‘세무사징계위원회는 재무부에서 열리고, 징계요구는 국세청에서’ 해오던 것을 ‘징계위원회(판사)와 징계요구(검찰)’를 국세청에서 모두 하게 하는 것으로써 세무사들을 국세청에 옴짝달싹 못하게 하는 ‘철권감독’의 수단이 될 것이라며 절대 반대하고 있는 사안이었다.

또한 세무사들은 이 업무가 국세청으로 이관된다면 자신들이 하루 아침에 소위 ‘10급 세무공무원’으로 전락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등 세무사들에게는 마지막 자존심을 건드리는 매우 민감한 사안중의 하나였다. 당연히 반대의견이 격렬하게 이어졌고, 회원들은 똘똘 뭉쳤다. 

급기야 당시 세무사회의 여론을 주도해 오던 한국세무사고시회와 재우동지회(국세청 출신 세무사)의 지도층 인사들이 종로의 한 식당에 모여 당시 회장에 대한 ‘탄핵’을 결의하게 되었다. 당시는 지금처럼 업계의 여론을 주도해 나가는 임의단체가 많지 않고, 단 두 개였다는 점에서 합의도 쉬웠다. 

참석자들은 합의문을 작성했고, 모두 날인을 했다. 당시는 지금처럼 서명문화가 발달하지 않았던 때여서 갑자기 모임에 나오면서 도장을 지참했을리 만무했다. 

참석자들은 ‘기지’를 발휘했다. 한 참석자가 ‘깍두기 국물을 손가락에 묻혀 지장으로 표시를 합시다’라고 제안을 했고, 만장일치로 깍두기 국물을 인주(印朱)로 삼은 합의문이 만들어졌다. 

이런 회원들의 민의는 즉시 회장에게 전달되었고, 그 회장은 탄핵이라는 모습이 아닌 자진 사퇴라는 모양새를 취했다. ‘잘 못해서가 아니라 잘못 할 것으로 추정하여 물러난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는 일부의 반대가 있었으나, 들불처럼 번지는 세무사들의 반발에 그는 깨끗이 물러났다. 

한국세무사회 역사에서 유일하게 1년짜리 회장으로 기록되고 있는 민의를 읽지 못한 전직 세무사회장의 쓸쓸한 퇴임기이다. 

◆…32년 전 회장의 오판으로 큰 위기를 맞았던 한국세무사회가 2013년 봄 다시 한 번 내분에 휩싸인 채 질풍노도의 위기에 노출돼 있다. 정구정 현 회장의 ‘3선출마’ 가 위기의 단초다. 

올해 초 정구정 현 회장이 느닷없이 회칙의 유권해석을 통해 3선에 출마하겠다는 뜻을 밝히자 많은 회원들이 의분을 삼키지 못하고 일제히 들고 일어나면서 한동안 세무사회는 발칵 뒤집어졌다. 그러나 정 회장은 한치의 흔들림 없이 회칙의 유권해석을 위한 임시총회를 강행했고, 회원들의 민의를 자기편으로 만드는데 성공했다. 결과는 6:4. 

그러나 한 회원이 분기를 참지 못하고 ‘임시총회 무효 가처분’ 소송을 제기하는 등 3선불가 목소리는 여전히 성난 파도처럼 높다. 가처분 소송의 결과는 기각. 항고를 했다는 이야기도 들리지만 이미 대세는 기울었다는 이야기가 많다. 또한 이 회원은 현 집행부가 잘못한 것이 많다면서 세무사회의 감독기관인 기획재정부에 특별감사를 요청했다. 이 또한 ‘감사불가’라는 게 기재부의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제 남은 것은 세무사회장 선거에서 회원들의 민심으로 심판하는 것. 그러나 이마저도 이미 불안한 결과가 엿보인다. 

지난달 31일 정 회장의 3선 여부를 묻게 될 차기 세무사회장 선거를 위한 후보자 등록결과는 참담한 모습이었다. 정 회장의 3선저지를 위해 일명 야권후보 단일화를 한다고 하더니 무려 3명이 야권후보로 등록을 마친 것. 선거전은 정구정 현 회장을 포함해 ‘4파전’. 

야권후보들이 정말 정 회장의 3선을 반대한다면 임시총회 무효 가처분 소송까지 기각된 시점에서 남아 있는 카드는 당연히 표로서 심판하는 것일 것이다. 그렇다면 야권단일화는 절대 비켜갈 수 없는 길. 그런데 결과는 32년 전 ‘깍두기 국물’로 결기를 보여주었던 선배들의 결의에 찬 그런 모습은 없고 야권의 대분열이라는 ‘4파전’이었다. 

야권의 세 후보들은 아직 단일화 기회는 남았다고 둘러댈지 모르겠지만 이 시점에서 누구 한사람이라도 사퇴를 한다면 누가 누구에게 공탁금 5천만원을 보상했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흘러나올 것이다. 그것은 서로를 진흙탕 속으로 끌어넣는 더 좋지않은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결국 이번 야권후보들의 분열은 세무사고시회, 세세회, 세무사미래포럼, 전직 세무사회장단, 현 지방세무사회장단 그리고 많은 상임이사들이 ‘생육신 사육신’ 소리까지 들어가며 사퇴와 해임되는 상황에서도 반대의 뜻을 꺾지 않아온 최소한의 민심조차 읽지 못하는 결과였다. 32년전 선배들이 보여주었던 ‘깍두기 국물’의 결기는커녕 여론조사를 하고도 단일화를 이루지 못한 실망 그 자체였다. 

이런 절망속에서 한가지 희망적인 모습은 다른 곳에서 보였다. 멀리 부산에서 위기에 빠진 세무사회를 바로 세우겠다는 생각으로 혈혈단신 서울까지 올라와 이날 기호추첨 현장에 참석한 이영근 전 부산세무사회장(감사 후보 등록)의 모습이었다.

그는 지난 임시총회 때 정 회장의 3선은 절대 안된다면서 연단에 올라 반대토론을 했던 인물. 나이 75세. 그나마 이 감사후보의 결연한 표정에서 32년전 선배 회원들이 보여주었던 ‘깍두기 국물’의 붉은 빛이 어렴풋이 엿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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