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주영의 세무사에세이]

 

 

 

 

 

 

지난 2월경부터 느닷없이 3선에 도전하겠다면서 세무사회 지하서고(書庫)에 처박혀 있던 87년(임영득 전 회장의 자료)의 자료를 꺼내어 ‘3선 명분 찾기’에 골몰해오던 정구정 세무사회 회장이 결국 3선에 성공했다.

 

세무사업계에서 내로라하는 단체와 이름깨나 알려져 있는 대부분의 회원들이 3선 반대 대열에 나서면서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같았지만 회원들은 3선찬성에 더 많은 표를 던졌다. 업계를 대표해 오던 대부분의 신문들도 반대 측 기사를 더 많이 실으면서 3선 불가에 명분을 보탰으나 정구정 회장을 지지해온 회원들의 ‘믿음’은 크게 흔들리지 않았다.

 

이번 선거결과에 한 회원은 ‘하도 어이가 없어 할 말이 없다’면서도 이번 선거는 한마디로 세무사회의 ‘계사정난(癸巳鄭亂)’이라고도 했다. 1453년 수양대군이 정통성을 가진 단종의 왕위를 찬탈한 계유정난(癸酉靖難)을 빗댄 표현으로 읽혔다.

 

이런 회원들의 반감 만큼이나 정 회장이 3선 도전에 성공은 했으나 '3선임기'를 성공시킬 지는 미지수다.

 

당장 3선은 절대불가라고 외치던 상대후보가 선거결과에 대한 불복입장을 표명했고, 당선무효 소송까지 내겠다고 벼르고 있다.

 

이와 함께 회원들의 정서도 많이 변했다. 정 회장 측에서는 2위 후보와의 표차가 많이 난다며 명분을 삼는 모양이지만 이번 선거에서 정 회장이 얻은 표는 지난 3월 3선을 위한 임시총회에서 얻은 득표율에 비해 현저히 낮아졌다. 그만큼 3선에 반대하는 정서가 시간이 가면서 회원들의 본심을 사로잡아가고 있었던 것으로 해석되었다. 이런 점을 간파한 것인지 정 회장은 당선직후 총회현장에서 회원들을 향해 “회원의 화합과 통합을 이끌어야 했는데 갈등과 분열이 일어난 책임을 통감한다”며 큰 절을 올렸다고 한다.

 

정 회장은 왜 큰 절을 올렸을까? 분명 쉽지 않은 ‘2년’이 될 것이라는 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법 해석도 제 맘대로인 세무사들이라는 외부의 시선과, “정 회장의 독선적 회무운영을 더 이상 두고 볼 수는 없다. 아무리 세무사회를 위해 일을 많이 했다고 해도 3선만은 안된다”면서 결사반대하다 ‘생육신, 사육신’으로 불리며, 강제 해임당한 전임 임원들의 분기가 여전히 가시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안정적 회무는 물론 선거기간 내놓은 공약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이 앞섰을 것이다.

 

정 회장이 이번 선거에서 핵심공약으로 발표한 조세소송대리권의 쟁취, 그리고 국선세무사제도와 지방세 세무검증제 도입 등은 2년 전 출마 당시에도 똑같이 약속했던 것들이었다는 점에서 이를 과연 실현시킬 수 있을까 하는 무거운 두려움도 들었을 것이다.

 

계유정난(癸酉靖難). 1453년 단종1년 수양대군이 일으킨 난에 붙여진 이름이다. 웃기게도 계유년에 난을 바로잡았다는 의미의 이름이라고 한다. 아무튼 세종에 이어 왕위에 오른 문종이 일찍 죽으면서 김종서 황보인 등에게 어린 단종을 잘 보위해 달라고 유언을 남겼고, 정국은 이들의 손에 의해 좌우 되었다.

 

그러나 야심이 컸던 수양대군은 김종서 등의 대신정치를 못마땅해 했고, 결국 김종서를 철퇴로 쓰러뜨리고 궁궐로 난입해 황보인 등 신하들을 모두 죽인 후 권좌를 차지한 조선조를 대표하는 정변이었다.

 

그러나 이런 정당하지 못한 ‘난’은 군사력강화, 경제안정, 동국통람, 경국대전 등 세조가 이룬 업적으로 명분을 얻기도 했으나, 많은 역사가들은 단호히‘십보후퇴를 위한 일보전진’이라는 평가를 내렸다. 그리고 적자 계승 원칙의 파기, 정통성이 부여된 왕위를 강압에 의해 폐위시키고 권좌를 탈취했다는 점에서 두고두고 시비거리가 되었다.

 

당시 단종의 복위를 꾀하다 죽은 ‘사육신’은 물론 초야에 묻혀 살았던 ‘생육신’들이 큰 명망을 얻었다. 아마 세조의 왕위가 ‘나쁜 선택’이었다는 점 때문이었을 것이다. 결국 당시의 정치·사회적 불안정은 몇 가지 성과(일보전진)는 있었으나, 국가의 발전을 더디게 할 수 밖에 없게 했다(십보후퇴)는 게 역사가들의 평가다.

 

세무사회의 ‘생육신 사육신’으로 불리면서까지 반대를 외치던 전임 임원들의 충정을 뒤로 하고, 3선의 욕심을 쟁취한 정 회장이 이런 역사의 교훈을 거울삼아 ‘계사정난(癸巳鄭亂)’으로 불리는 미완의 3선(選)을 세무사회의 어지러움을 바로 잡은 ‘계사정난(癸巳靖難)’으로 바꾸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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