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이 지난 1일자로 서기관 전보인사를 단행하면서 고참 서기관 3명을 하향전보 조치했다고 한다. 이들에게 ‘좌천성 인사’를 감수할 수밖에 없게 만든 것은 ‘골프’였다.

 

두 사람은 국세청 외부인들과 접대성 주말 라운딩을 한 것으로 알려졌고, 한 사람은 같은 과(課) 직원들과 함께 서울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한적한 골프장을 찾아 스트레스를 풀고 왔다는 것 때문이었다. 라운딩의 형태는 달랐지만 국세청이 발동해온 ‘골프자제령’을 위반했다는 게 이유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세청은 여기에 더해 최근 사실상의 골프금지령인 ‘골프사전신고제’ 지침을 각 지방국세청 및 일선세무서에 내려 보냈다.

 

내용은 골프를 하고 싶으면 본·지방청 감사관실에 신고를 하고 가라는 것. 어떤 골프장에서 누구와 함께 그리고 왜? 또 그린피는 어떤 형태로 지불되는지 까지 일일이 고변(告變)한 후 집을 나설 수 있게 돼 있다. 또 사전신고 후 골프를 하는 경우에도 비용은 스스로 부담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며, 국세청공무원행동강령에 위배되는 일이 없도록 유의하라고까지 밝혀두고 있다. 그리고 서기관 이상 관리자들이 솔선수범해 달라는 특별당부까지 보탰다.

이 같은 지침을 받은 국세공무원들은 “사실상의 ‘골프금지령’이다”라고 못 박았으면서 이 정도면 국세청이 사실상 ‘골프와의 전쟁’을 선포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해석했다. 실제로 이번 신고제 공문의 첫 문장도 ‘소속 직원들은 원칙적으로 골프장 출입자제’였다.

그렇다면 국세청은 왜 직원들이 취미활동으로 하겠다는 골프를 못하게 수시로 금지령을 발동할까? 이번의 조치는 세수확보에 매진하고 있는 조직의 이완을 방지하고, 또 최근 발생한 조사국 공무원들의 뇌물수수 사건 등으로 조직이 국민들의 신뢰를 잃은데 따른 자숙 차원으로 읽히지만 과거에도 국세청은 일만 터지면 골프금지령을 내렸다.

국세청은 타 부처에 비해 직원 숫자가 많다는 점에서 수시로 직원들의 ‘골프군기’를 다잡지 않는다면 많은 국세공무원들이 너도 나도 골프백을 메고 골프장을 찾게 될 수도 있다. 이럴 경우 자칫 조직 전체가 위기에 빠질 수도 있다는 우려를 예방한다는 차원에서 골프금지령을 즐겨 사용했다. 또 골프금지령은 그 자체만으로도 직원들의 ‘정신훈육’과 국민들에게 보여 지는 ‘선전효과’가 크다는 점에서 꽤 괜찮은 수단이었다. 

또한 국세공무원들은 납세자들에게 ‘갑’의 위치라는 점에서 골프를 한다면 대부분 자기 돈이 아닌 ‘접대를 받을 것’이라는 상상과 거기엔 부정이 개입될 수 있는 ‘잘못된 만남’ 일 것이라는 선입견도 골프금지령의 중요한 배경으로 전해지고 있다.

실제로 지난 2011년 있었던 ‘이천사건’처럼 국세공무원들의 ‘갑(甲)질 골프’도 없지 않았다는 점에서 무조건 색안경만 끼고 보지 말라고 할 수도 없는 처지이다. 그렇다고 골프 치는 국세공무원 모두가 다 ‘나쁜 골프’만 한다고 생각해서도 절대 안되는 일이기도 하다.

국세청이 올해 말까지라는 기간까지 명시해 ‘사전신고제’라는 변형된 금지령을 발동한데는 최근 “공직자들에게도 골프를 치게 해 달라”는 골프장협회 측의 대정부 건의에 영향을 받았다는 뒷얘기도 들린다. 골프장 측의 골프해금 건의도 수용하면서 직원들의 골프군기도 다잡는 ‘일거양득’의 효과를 얻겠다는 것.

과거 골프금지령 시절엔 선글라스 끼고, 모자 푹 눌러쓰고, 클럽하우스 들르지 않고 ‘도둑골프’를 즐기던 직원들도 많았지만 요즘은 그렇게 ‘간 큰’ 직원들은 없다는 점에서 국세청이 못 박은 시기처럼 연말까지는 전국의 골프장에서 국세공무원들의 모습은 볼 수 없을 것 같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참 안됐다, 조금 과(過)한 조치다’라는 생각이 떨쳐지지가 않는다.

과연 국세공무원들이 떳떳하게 골프를 즐길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국세청장의 전향적인 생각의 전환, 즉 정치적 결단만 있다면 가능하다고도 본다.

국세공무원들은 정년까지 보장되는 탄탄한 직장을 가진 고급직업인으로서 한 달에 한두번 정도는 당당하게 골프를 즐길 수 있는 경제적 능력을 갖추었다. 이번에 특별히 솔선수범을 당부한 관리자들의 경우는 말할 것도 없다. 또 공무원연금공단이 운영하는 골프장을 이용한다면 그렇게 비싸지도 않다. 골프비용을 능가하는 다른 고급스포츠도 많은데 굳이 골프만 못하게 칸막이를 친다는 것도 잘못이다.

그리고 국세공무원들도 친구들이나 직장 동료들과 함께 같은 취미로 어울릴 수 있는 최소한의 자유는 보장되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국세공무원이라는 단 하나의 이유만으로 취미 생활의 자유,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권리를 억압당한다면 너무 가혹하지 않은가. 골프마니아 국세공무원들에겐 ‘손톱 밑 가시’가 따로 없을 것이다.

지금 대전에서 인천에서 들려오는 국세공무원들의 뇌물수수 사건이 골프 때문이 아니라면 이제 국세청도 오랜 세월 갇혀온 ‘골프의 굴레’에서 벗어날 때도 되었다. 더 넓은 골프장 페어웨이처럼 탁 트인 국세청장의 정치적 ‘배포’를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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