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무사로 살아온 지 40년째다. 영어뿐만 아니라 일본어까지 전문통역사도 어려워하는 전문용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국내 세무업계에서도 몇 없는 외국인투자기업 시장의 최고 전문가로 이름을 날리고 있다.

1978년 제15회 세무사고시에 합격하고 그해 세무사업을 시작해 올해로 세무사 나이 40살인 최원두 세무사를 지난 3일 서울 서초동에서 만났다. 그의 사무실은 서울 역삼동 성지하이츠1 빌딩에 있다.

그는 한국세무사고시회 부회장, 서울지방세무사회 국제이사, 세무사회 제도개선추진위원회 부위원장, 윤리위원, 한국세무사석·박사회 회장, 세무사회 감사, 윤리위원장까지 세무사회 회직에 봉사해오면서 1만2천여 세무사들로부터 구수한 ‘원두커피’같은 회원으로 더 이름나 있다.

최원두 세무사가 좋아하는 음식은 무엇일까. 그가 지인들에게 기꺼이 추천하고 싶은 맛집은 유명한 ‘이남장’(교대점)이었다. 그의 고향이 바닷가(경남 남해)여서 분명 횟집일 것이라는 기자의 예측은 빗나갔고, 그는 이남장을 추천한다고 했다.

평소 부담되지 않는 가격으로 배부르게, 그리고 소주 한잔의 즐거움을 함께 할 수 있어 자주 찾는다는 추임새에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실제로 그는 기자와 만난 이날 절친인 김태경 세무사도 불렀다. 내친김에 소주한잔 기울이며 옛이야기에 빠져보고 싶어서였다고 했다. 이남장은 최원두 세무사의 소탈하고 소소한 행복을 찾는 그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 곳이었고, 그 명성만큼이나 푸짐하고 맛있었다.

◆ 피, 땀, 노력…누구나 할 수 있지만 모두가 하지 못하는 것

그와 함께 설렁탕 한 그릇을 먹으며 그가 세무사로 살아오게 된 이야기를 들었다. 그가 처음부터 세무사였던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국세청 출신, 소위 현직 경험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지금의 최원두 세무사가 되기까지는 오로지 피와 땀, 그리고 노력으로 성과를 냈다고 했다.

평범한 직장인이었던 그는 한 외국인투자법인의 회계분야에서 일하다가 조세의 중요성을 일찍 깨닫게 됐다고 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조세라는 생각이 들었고 이 업무를 누가 수행할 것인지 생각했을 때 세무사와 회계사 두 전문자격사가 있었다고 말했다.

당시에는 회계사 자격을 취득하면 세무사 자격은 자동으로 얻을 수 있었지만 현실적으로 세무사가 세무에 더 가깝고 전문적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결국 3전4기의 도전 끝에 합격했다고 설명했다. 당시 세무사 시험은 지금처럼 유예제도가 없기 때문에 4번의 도전을 시도하면서 하루에 두 시간씩 자며 노력했던 날들을 회상했다. 그의 나이 31살 때였다.

39년이 지난 지금, 그는 외국인투자기업들로부터 최고의 능력자로 평가받는 세무사다. 영어나 일본어를 통달했다는 장점도 있겠지만, 세무사 자격 취득 전 외투기업에 종사했던 감각이 세무사업을 하면서도 도움이 됐다. 그가 직장인으로 있을 때 당시 회사 상무로부터 일본어책 번역을 부탁받고 일본어를 배우게됐고, 욕심을 부려 영어공부에도 매진해 궤도에 올랐다.

세무서나 국세청 근무 경험이 없으면 성공하기 쉽지 않다는 것이 세무사업계의 속설이지만 그는 당당히 성공했고, 또 성공한 세무사라는 이야기를 듣고 있다. 그리고 전문가 중에서도 전문가라는 소리를 듣는다.

후진들을 위해 그 비결을 물었다. 40여년 전에는 지연, 학연, 혈연 등 각종 연(縁)과 권력이 휘둘러지던 시대였다. 그러나 그는 누구의 힘도 빌리지 않고도 오로지 피와 땀, 그리고 노력으로 ‘지금’을 이룩했다고 말했다. 그는 고향 선후배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도 있었지만 단 한 번도 그렇게 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발품이 최대의 성공요인이라고 말했다.
 

◆ 건국대서 경영학 박사학위 취득…법인세율 인하에 따른 기업이익의 이연화 및 유효세율 분석

최원두 세무사는 지난 2005년 건국대 대학원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보통 6년에서 10년 정도 걸리는 학위이지만 그는 단 4년 만에 취득했다. 박사학위를 취득하면서 이어진 인연으로 건국대 겸임교수로 10년간 활동을 이어가기도 했다.

그가 박사학위를 받은 논문은 ‘법인세율 인하에 따른 기업이익의 이연화 및 유효세율 분석’이다. 법인세율 인하와 인상에 대한 논쟁은 10여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뜨거운 감자다.

그는 당시에도, 그리고 지금도 가장 시사성이 있으며 우리나라의 세율 체계를 분석하는데 아주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이 논문을 쓰기로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명목적으로 법인세율을 올릴 것인지 내릴 것인지 논하기에 앞서 보다 학문적으로 충분한 검토와 토론을 통해 국가의 세율정책을 결정해야한다고 생각한 것.

지난 1986년 미국의 법인세율은 46%였으나 1988년 34%로 12%p를 대폭 인하한 바 있다. 바로 텍스리폼(Tax Reform Act)이다. 이같은 세율인하에 대응해 경영자들이 법인세를 최소화하기 위해 세율인하 직전연도에서 이익을 낮추는 방향으로 조정했다는 연구들이 줄지어 발표됐다.

그는 논문을 쓸 당시 우리나라가 2002년부터 2005년까지 약 7% 법인세율을 내린다고 발표한 만큼, 금년도 기업 이익을 내년도로 이연시키는 경향이 있는지 분석하고, 기업의 조세부담이 실질적으로 감소해 유효세율 인하로 연결되고 있는지를 파악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무엇보다 문헌적 분석이 아닌 실증적 분석을 하고자 했다. 그는 논문을 통해 당시 기업들은 정부가 법인세율 인하계획을 발표하면 현재의 높은 법인세율을 회피하기 위해 이익을 인위적으로 이연시키는 방법을 사용했다고 밝혔다. 이때 탈법적인 방법으로 이연시키는 것이 아닌 감가상각을 많이 하거나 각종 준비금을 설정하는 방식으로 이연요소를 이용해 유효세율이 낮은 연도로 이익을 이연시킨다는 결과를 도출해냈다.
 

◆ “제자들이 인생의 중반을 달릴 때, 어느 날 불쑥 추억을 선물하고 싶다”

그는 세무사라는 직업에 종사하면서 쉴 틈 없이 달려왔지만 더 새로운 개척분야에 도전하기 위해 박사에 도전했다고 설명했다. 그 결과 건국대 겸임교수로도 활약한 것이 무엇보다 보람된 시간이었다고 회고했다. 지난 2015년 정년 65세를 맞이해 10년간의 교수 생활은 끝났지만 그는 여전히 제자들이 써내려간 시험 문제의 답안지를 갖고 있었다.

그의 강의는 언제나 인기순위 1위에 빛났다. 학생들은 그의 강의를 듣기 위해 줄을 설 정도였다. 시작과 동시에 마감되는 수강신청으로 인해 직접 찾아오거나 연락해 수강할 수 있도록 부탁하는 학생도 적지 않았다.

실제로 그의 이메일 속에는 학생들의 수강요청 메일이 수없이 와있었다. 소중한 추억이라는 학생들의 메일을 하나도 빠트리지 않고 보관하고 있었다. 그의 강의가 인기있었던 비결을 묻자, 실무를 중심으로 설명했기 때문에 학생들에게 좀 더 와 닿았는 모양이라며 웃었다.

특히 그는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제자들이 40대가 됐을 때 불쑥 찾아가 보관 중인 시험 답안지를 나누어줄 것이라고 말했다. 40대 중년이 되어 시험지를 보는 순간 얼굴이 붉어질 제자들을 머리 속에 그리고 있다며 또 웃었다.

그는 후배세무사들에게 남기고 싶은 한마디로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은 오로지 피와 땀, 노력밖에 없다’고 말했다. 지금 환경이 어렵고, 앞으로는 더 어려워지겠지만 다른 자격사와는 다르게 노력하는 만큼 성과가 나오는 직업이 세무사임을 강조했다.

40년 전 자신 역시 허허벌판에서 발품을 팔며 뛰어다닌 것처럼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노력하는 만큼 성과가 따른다는 말을 남기며 제자들과 후배들을 향한 애정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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