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년 난곡4거리에서 무작정 개업…100억원 매출 최고 세무법인 우뚝
‘독수리타법’으로 만들어 낸 박사학위…외식사업자의 부가가치세 연구

이규섭의 맛 집은 역삼동 ‘고래불’…그 중에서도 우아한 맛의 ‘물회’

그의 또다른 이름 ‘라이온스 총재’…50대에 총재 국내외서 '봉사활동'
세무사 개업했던 난곡 독거노인 50명에 26년째 기부…숨은 ‘기부천사’
 

‘세무사 이규섭’. 세무업계에서 그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74년 말 국세공무원으로 공직에 입문했고, 퇴직 후인 1992년 신림동 난곡사거리에 세무사 사무소를 차리면서 세무사의 길을 걸었다. 그리고 2000년 3월, ‘세무법인 하나’를 세우고 대한민국 최고이자 최대의 세무법인으로 성장시켰다. 그는 국내 최대의 세무법인에서 멈추지 않고 세무법인 하나 조세연구소를 열어 세무법인의 한계를 돌파하기 위한 초석을 쌓고 있다. 세법에 관한한 세무사가 최고의 전문가인데 왜 회계법인과 로펌들보다 인정을 받지 못하느냐는 생각이 깔려있다.

그는 광주상고를 졸업하고 서울로 올라와 대학 진학을 준비하던 중 신문에 올라온 광고를 보고 공무원 행정직 모집에 응시했다. 그날의 선택을 시작으로 오늘의 ‘세무사 이규섭’이 만들어졌다.

◆ 고래불의 ‘물회’ 한그릇…절제와 품위가 느껴졌다

그가 즐겨 찾는 곳은 세무법인 하나에서 100여 미터 남짓 떨어져 있는 ‘고래불’이라는 곳이었다. 그는 역삼동의 진짜 맛집을 찾고 싶으면 이곳이라고 자신 있게 추천했다. 고래불은 해양요리전문점으로 동해바다에서 잡아올린 100% 순자연산 재료만을 매일 직송해 요리하는 곳이었다.

이곳에서 이규섭 세무사가 추천하는 ‘물회’를 함께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시원한 물회에는 전복 등 값비싼 싱싱한 제철생선과 푸짐한 야채가 있었고, 밥과 소면을 곁들여 잘 비벼서 먹으면 새콤달콤하면서도 명품 회의 맛을 느낄 수 있었다.

바다음식을 좋아하는 기자도 웬만한 물회를 섭렵해 봤지만 고래불의 물회를 맛보는 순간 자연스럽게 엄지가 척 세워졌다. 이 세무사가 자신 있게 고래불을 별미음식점이라고 소개하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 역시 다른 사람의 소개로 우연히 찾게 된 곳이었는데 지금은 단골손님이 될 정도의 맛집이었다.
 

◆ 경원대 박사학위 취득, ‘외식사업자의 부가가치세 납세행태에 관한 연구’

그는 세무법인 하나의 그 많은 세무사들 중 유일한 박사학위 소지자다. 그렇기에 더욱 그의 박사학위 논문 내용이 궁금했다.

그가 쓴 논문은 ‘외식사업자의 부가가치세 납세행태에 관한 연구’다. 이 세무사는 외식사업자의 경우 현금수입업종이라는 이유로 과세관청의 불신을 받고 있다는 현실을 지적하면서 외식사업자에 대한 불신이 부가가치세 회피 성향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연구를 한 것.

그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외식사업자들이 부가가치세 회피 성향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회피요인은 동료집단적 요인과 정부신뢰도 요인으로 나타났다. 이와 연결선상에서 과세당국이 외식사업자에 대한 신뢰성 또한 매우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과세정책 당국에서는 외식사업자들에 대해 공정한 조사와 업소별 공평과세를 실현해 외식사업자들로 하여금 과세당국의 세정이 신뢰를 받도록 긍정적인 시각으로 전환시키는 정책이 필요하다는 것.

그는 “살면서 그렇게 열심히 해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컴퓨터를 이용해 문서작성을 해본 적도 없었던 40대 후반이었던 그는, 논문을 쓰기 위해 일명 ‘독수리타법’으로 논문을 한 글자씩 적어나갔다고 설명했다.
 

그가 난곡사거리에 사무실을 운영하던 시절, 모두가 퇴근한 오후 7시부터 새벽 1시까지 매일 박사학위 논문을 써내려갔다. 특히 그의 주제는 선행논문도 없어 인용할 다른 서적이 없었기에 더욱 힘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외식사업자 750명을 대상으로 설문을 진행하면서 그들이 갖고 있는 생각을 이끌어 낸 것만으로도 굉장히 큰 효과를 가져왔다고 소회했다.

그렇게 그는 96년도에 석사학위를 받고 경원대 회계학과에서 강의를 시작했다가 주변 교수님들의 권유로 경원대 대학원 경영학과 회계학 전공 1호 박사가 됐다.

◆ 그의 또 다른 이름, ‘라이온스 총재’

그는 92년도 세무사사무실을 개업하면서 라이온스에 뛰어들었다. 20여년간 봉사활동을 꾸준히 해온 그는 지난 2012년 7월부터 2013년 6월까지 라이온스 총재를 지냈다. 직전년도에는 부총재로 있으면서 물질적부분은 물론 재능기부로도 국내외를 망라해 다양한 봉사를 펼쳤다.

라이온스에서 활동한지 14년 만에 첫 50대 총재가 됐다고 한다. 베트남과 필리핀에 주택과 학교를 짓고 말레이시아에 간이상수도시설을 지었다. 국내에서는 다문화가족 34쌍의 합동결혼식을 진행하는 등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수많은 봉사의 뜻을 펼쳤다.

그는 세무사로 개업하면서 1%는 남을 위해 쓰자고 다짐했고 그것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난곡지역의 독거노인 50명에게 26년째 기부를 하고 있는 숨은 ‘기부천사’이기도 하다.

그는 전문가로 살아왔고 봉사하며 살아왔지만 그가 바라는 꿈을 자신이 아닌 그 누군가가 꼭 이루어졌으면 하는 것이 있다고 한다. 바로 우리나라의 기부문화 제도의 정착이다.

그의 봉사정신은 세무법인 하나의 운영철학과도 이어진다. 하나를 만들 당시 막중한 책임감을 느꼈지만 하나에서 일하는 모든 직원들에게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으로 시작했고, 아무리 어렵더라도 ‘콩 한쪽이라도 나눠먹고 살자’라는 정신으로 운영했다고 한다. 실제로 17년간 하나를 나간 사람은 팀장급 이상으로 10명도 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 세무사? “최고의 직업!”

그에게 세무사란 ‘최고의 직업’이다. 그는 대한민국을 자격사의 천국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세무사로 개업한 후 실력의 유무를 떠나 자격증을 가지고 있다면 무한한 발전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는 것.

그는 광주상고를 졸업하고 선배들과 마찬가지로 은행에 취업하려고 했다. 그러나 71년도에 제1차 오일쇼크가 오면서 은행 채용인원이 줄었고, 대학에 진학키로 마음을 먹었다. 서울로 상경해 진학사라는 학원을 다니면서 공부를 하다가 우연히 발견한 행정직 공무원 채용 광고로 인해 국세청과의 인연을 만들게 됐다.

그는 남대문세무서에 근무할 당시 학업을 병행하느라 고생했던 시절을 떠올렸다. 아침 8시까지 출근해 사무실 청소부터 시작했다고 한다. 학교를 다니는 자신이 혹여 다른 직원들에게 폐가 되지는 않을까 염려해 2년간 매일 아침 8시에 출근해 책상을 쓸고 닦으면서 솔선수범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렇게 그는 당시 직원 인기투표에서 1등을 했다고 한다.

9급으로 공직에 입문한 그는 7급으로 퇴직했고, 91년도에 세무사 시험에 합격해 무작정 세무사사무소를 차렸다고 한다. 그는 “내게 그런 결단력이 있었을까, 지금 생각해도 내 자신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웃었다. 공무원이라는 안정적인 직장을 그만두고 세무사라는 창업전선에 뛰어든 것.
 

그가 사무실을 처음 열고 첫 손님이 양도소득세 상담을 받고 갔다. 당시 시간당 3만원의 상담료를 받을 수 있었지만 첫 손님이기 때문에 1만원을 받았다. 그가 자격증을 따고 처음으로 번 돈이었다. 준비도 없이 시작했지만 만원짜리 상담을 시작으로 첫 해에 1억7천만원, 이듬해 3억원 가량의 매출을 올렸다.

그렇게 대한민국은 ‘자격사의 천국이구나’라는 생각을 가지게 됐다고 한다. 물론 발이 닳도록 뛰었고 쉬는 날에도 사무실을 다녀가야 마음이 놓일 정도의 ‘일중독자’로 불렸다고 한다.

그렇게 2000년 초반 세무법인 하나를 세우고 단 10년 만에 연매출 100억원을 달성했다. 이후로 7년이 지났지만 연매출 100억 원 밑으로 내려가 본 적이 없다. 세무법인이 연 매출을 100억 원을 달성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그는 세무법인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위해 지금도 고군분투하고 있다고 한다.

그의 나이 올해 63세. 업계에서도 최고로 이름을 날렸고 봉사의 꿈도 이루었기 때문일까, 최근 삶에 재미가 없는 것처럼 느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 그에게는 새로운 목표와 꿈이 생기면서 매일 열정적으로 사람들을 만나며 바쁘게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

그가 구상하고 있는 계획이 실행된다면 세무업계에 분명 새로운 패러다임을 일으킬 것으로 예상된다. 그가 일으킬 새로운 돌풍이 무척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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