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만에 세계 테마 기행중의 하나로 아프리카 케냐의 국립공원을 여행 다녀온 기분이다. 아직 아프리카에 발 한 발짝 담가 보지 못한 나에게 어느 정도의 여행 욕구를 충족시켜준 듯 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아프리카 여행에 대한 강렬한 열망이 하나 더 생기기도 한 셈이다.

정말 아프리카 대자연의 푸른 초원과 그 속에서 자유스럽게 뛰노는 온갖 동물들이 아름답기도 하고 장엄하기도 하였다. 화면으로나마 아프리카 초원을 감상할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이 영화를 보는 충분한 재미와 보상이 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특히 모짜르트의 잔잔한 음악과 함께 펼쳐지는 아프리카의 모습은 장관이었다.

이 영화는 카렌 브릭센이라는 작가가 1914년부터 1931년까지 17년 동안 아프리카 케냐에서 실제 커피 농장을 경작하며 격은 경험을 고국인 덴마크에 돌아와서 쓴 자전적 글을 소재로 영화한 작품이다. 1985년도 감독 시드니 폴락에 의해 연출되었으며 주연 배우로는 데니스역의 로버트 레드포드와 카렌역의 30대 중반의 아름다운 메릴 스트립이다.

덴마크 태생의 부잣집 딸 카렌은 덴마크에서의 무료한 생활을 접고 아프리카 케냐에서 커피 농장을 하기 위하여 아프리카로 홀연히 발을 옮긴다. 그는 사업을 성공시키기 위하여 남작 브릭센과 결혼을 하게 된다. 아마 결혼을 조건으로 사랑하는 사이는 아닌 듯 보였다. 카렌은 결혼을 통해서 심리적 안정감과 사업적 도움을 기대하나 남편 브릭센 남작은 툭하면 사냥을 나가 몇 일간 집에 들어오지 않는 등 방랑기와 바람기까지 심하여 거의 집에 머물지를 않는다.

급기야는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여 참전까지 하게 되어 카렌은 그야말로 당초 결혼을 꿈꿨던 것과는 완전 반대 양상으로 치닫게 된다. 전쟁 중 남편의 보급품이 모자란다는 전문에 카렌은 용기를 내어 브릭센이 머무는 부대에 보급품을 싣고 단숨에 달려가게 된다. 아뿔싸 이게 웬 날벼락인가? 오랜만에 남편과 전선에서 회포를 푼 카렌은 남편으로부터 매독에 걸리게 되고 병을 치료하기 위하여 덴마크로 다시 돌아가야만 하는 신세가 되고 만 것이다. 상당기간 치료 후 또다시 케냐의 커피 농장으로 돌아왔지만 아기를 가질 수 없는 불임의 여인으로 돌아온 것이다.

그러니 자연 브릭센 남작과는 결혼 생활이 삐걱 거릴 수밖에 없고 그럼에도 브릭센은 반성은 커녕 계속 바람을 피우고 마침내 또 다른 부잣집 딸과 다시 바람을 피우면서 카렌에게 미안해하는 척하면서 이혼을 요구하게 된다. 카렌의 체면과 자존심이 시궁창에 처박히는 상황이 된 것이다.

그러나 울고 싶은데 뺨 때려준격으로 카렌의 가슴과 마음속에는 이미 현재의 남편 보다는 데니스라는 남성이 자리 잡고 있었던 것 갔다. 데니스 역시 방랑기가 있고 자유스런 영혼을 소유한 사람이지만 그는 브릭센과는 좀 차원이 다른 인물이었다. 자기 정체성과 소신이 분명하고 용기도 있고 책임감이 강하며 정직한 인물인 듯 했다. 그리고 인생을 논하고 사랑을 논할 수 있는 낭만적이고 멋진 인물이기도 했다. 또 축음기를 통해 모짜르트의 음악을 종종 감상하며 아프리카의 생활을 즐긴다. 그러기에 카렌은 그를 더욱 품안에 끌어 들이려하고 청혼까지 하게 된다.

그러나 아프리카에서의 생활에 젖어 무한의 개인적 자유와 모험을 마음껏 즐기고 있는 그는 "결혼이라는 형식과 그를 통해 가지게 될 증서가 서로에게 어떤 믿음과 사랑을 더하게 되느냐"고 반문한다. 그리고 카렌은 데니스에게 "당신에게는 인생이 그렇게 단순하냐?"고 묻는다. 이에 데니스는 "아마 당신보다 요구가 적어서 인가 보조"라고 답한다. 그렇다 "유구면 유고요 무구면 무고"라는 말이 있듯이 끝까지 움켜쥐고자 하는 카렌과 확고한 정체성을 바탕으로 제도와 관습으로부터 한발 물러서서 자유로운 삶을 선택하여 살아가는 데니스 두 사람 간에 적합한 표현인 듯 하다.

데니스는 또 묻는다. "결혼이라는 것을 해서 뭐가 그리 좋으냐?" 아마 파탄에 이른 브릭센과의 결혼을 빗대어 하는 말 같기도 하였다. 결혼이라는 제도권 속에 둘을 묶어 놓았지만 결국 서로 파경을 맞았으나 카렌과 데니스는 결혼을 안했더라도 서로 알콩달콩 사랑하고 아껴주며 잘 살아가고 있지 않느냐는 의미 같기도 하였다.

사실 로맨틱 가이인 데니스는 카렌을 극진히 사랑하면서 낯선 아프리카에서 방향을 잘 잡고 살아가라고 나침판을 제공하기도 하면 실질적으로도 카렌의 일상에도 나침판 역할을 하여 아프리카 생활에 직‧간접적인 도움을 많이 제공한다.

그러니 여성들이 최고의 명장면이라고 할 수 있는 석양에서의 카렌 머리 감겨주는 데니스와 카렌의 낭만적인 장면이라든지 마치 사파리를 연상할 수 있게 자동차에 탑승하여 육지에서 동물 구경, 말을 타고 여행, 걸어서 여행은 물론 이 영화의 최고의 장면이고 이 영화에서만 볼수 있는 장면인 데니스가 직접 경비행기를 몰고 케냐의 상공에서 아프리카 대자연의 풍광을 구경시켜 주는 광경이다. 카렌은 물론 관객까지도 아프리카에 여행 온 듯 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한다. 이는 카렌이 외관적으로나마 진정한 아프리카를 이해하고 조망 하는데 큰 기여를 할 듯 했다.

카렌은 아프리카에서 광활한 커피 농장을 가지고 있고 수많은 하인을 거느리고 있으며 또 선교사를 통해 원주민들로 하여금 글을 깨우치도록 학교도 운영하는 등 물질적으로나 여러 실 생활 면에서 두루 부족함이 없는 여인이다. 그러나 그는 늘 허전해 보이고 외로워 보인다. 그리고 데니스와의 사랑을 결혼이라는 제도속에 가두려한다. 그를 통해 안정과 행복과 마음의 안식처를 삼으려는 것 같았다.

그러나 아프리카의 초원에서 아프리카의 동물처럼 모험을 즐기고 자유로운 생활에 익숙한 데니스는 카렌의 요구에 부응하지를 않는다. "결혼이라는 거추장스럽고 더 좋은 결과를 약속하지 못하는 것을 왜 하느냐"고 오히려 반문한다. 그리고 정직하게 카렌에게 충고도 해주고 진정으로 사랑도 하며 카렌의 아프리카 생활을 도와준다.

카렌은 외로움과 고독한 생활을 달래려는 듯 커피 농장에 더욱 매진을 하게 되고 어느 정도 성공도 거두었다. 아뿔싸 화마가 급습하여 커피 농장은 하루 아침에 잿더미가 되고 말았다. 원주민은 이를 "신이 강림 하셨다"고 잠자고 있는 카렌에게 보고한다. 원주민들은 불도 자연의 섭리이고 신의 뜻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설상가상으로 그가 사랑하며 유일한 마음의 안식처인 데니스 마저 비행기 사고로 사망했다는 소식을 접한다. 그것도 이혼한 전 남편 브릭센 남작으로부터 전해 듣는다. 비로소 카렌은 "소유란 없는 것이며 그저 스쳐갈 뿐이다"라고 설파한 데니스의 말에 동의하며 깨닫게 된다. 그러면서 가치 있는 존재로 남겠다는 소망을 피력한다.

이 영화는 자연 풍광으로 따지면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멋지고 영상미가 넘치는 영화다.

아프리카의 생생한 대자연과 초원 그리고 그 속에서 노니는 온갖 동물들을 한눈으로 모두 볼수 있기 때문이다. 아니 줄거리를 막연하게 알게 되면 자연 풍광만 뇌리에 떠오르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영화는 많은 점을 시사하는 것 같다. 산업사회가 잉태한 물질적 풍요를 통해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구가할 수 있는 가라든지, 인위적 자연의 지배가 궁극적으로 가능한 것인지, 그리고 무한한 개인의 자유와 사회적 제도와의 틀과의 충돌을 어떻게 풀어내야 되는 것인지에 대한 물음과 과연 행복은 소유에서 오는 것인가 올바른 가치관을 가진 존재에서 오는가의 물음을 던져주는 것 같았다.

풍부한 부를 통해 자연과 인간을 어느 정도 자기 품에 넣고 지배하려 했던 카렌과 빈털터리지만 무한한 자유에의 영혼과 모험심을 가지고 본성과 본체에서 요구하는 대로 자유롭게 살아가는 데니스, 그리고 인파이터로 사랑을 소유하려는 카렌과 사랑하지만 아웃복서처럼 이리저리 벌처럼 날라 다니며 자기의 삶과 사랑을 병행하는 데니스와의 삶속에서 과연 누가 행복할까? 그렇다고 데니스가 자신의 자유만을 위해 무책임하다거나 거짓된 행위를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뚱딴지같은 질문이지만 데니스의 삶의 방식에 수렴되고 귀결 되는 듯 하다.

결국 카렌은 불타버린 커피 농장을 하인들에게 나눠주고 사고로 죽은 데니스를 "자기가 죽으면 묻어 달라"는 그 자리에 묻고 가방 하나만 덜렁 들고 홀가분하게 홀연히 고국인 덴마크를 향해 떠났으니 말이다. 그녀는 데니스의 주검 앞에서 "아무도 그를 소유할 수 없었고 나도 그를 소유할 수 없었다"고 애달프게 눈물을 훔치며 추도사를 읽으며 아프리카 형식으로 장례식을 거행하였다.

아마 많은 것을 잃고 아프리카를 떠나게 된 시점에서 비로소 아프리카를 이해하며 그대로 받아들이려는 것 같았다. 글을 통해서 원주민을 계몽하고 깨우쳐 주려는 카렌의 행위에 죽어간 데니스는 "글은 몰라도 문명이 없는 것은 아니다"라는 점을 역설하며 추장 또한 "글을 아는 영국인은 무엇이 그리 좋으냐"고 반문한다. 아프리카는 아프리카답게 보라는 데니스의 주장과 제국주의에 대한 추장의 일침인 듯 했다.

인생의 좋고 나쁨 행, 불행 옳고 그름, 정의와 불의를 어떠한 잣대와 기준으로 판단해야 할까? 특히 자연이 그들의 삶의 터전이요 행복의 원천인 그들 아프리카인들에게는 문명과 식민통치와 물질적 풍요가 과연 어떠한 의미가 있겠는가? 화마에 휩싸인 커피 플랜테이션의 불꽃을 보고 "신이 강림했다"고 외치는 원주민의 말속에 모든 답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보지 않을수 없다.

카렌의 물질에 의한 지배나 소유욕도 아프리카를 이기지는 못했다. 또 변화 시킬 수도 없었다. 데니스의 말처럼 변화 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 잘못이었을 것 같다. 아프리카는 역시 소유가 아닌 존재이며 자유이며 문명, 형식, 제도 이전에 자연 인 듯하다.

내년에는 아프리카로의 여행을 떠나야겠다.

저작권자 © 세정일보 [세정일보] 세정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