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 채무의 이행에 갈음하여 수탁자에게 재산을 신탁하면서 채권자를 우선수익자로 지정하여 신탁계약을 체결한 것이 부가가치세 과세대상인 재화의 공급에 해당하는지에 대한 대법원의 판단이다.

1. 사실관계

가. 일반건축공사 및 주택건설업을 하는 시행사인 원고는 2003년 무렵 OO건설주식회사(이하 ‘OO건설’이라고만 한다)와 부산(주소 생략)에 지하 3층, 지상 20층 1개동 주상복합건물(이하 ‘이 사건 주상복합건물’이라 하고, 그 중 상가 14세대를 ‘이 사건 상가’라 한다) 신축공사를 공사대금 271억 원에 도급하기로 하는 계약(이하 ‘이 사건 도급계약’이라 한다)을 체결하였다.

나. OO건설이 2006년경 이 사건 주상복합건물의 신축공사를 마쳤으나, 이 사건 도급계약에 따른 공사대금 중 148억 5,995만 원을 지급받지 못하였다.

다. 원고는 2006. 7. 27. 주식회사 OO자산신탁과 이 사건 상가를 포함한 미분양 부동산 305세대에 관하여 부동산처분신탁계약(이하 ‘이 사건 신탁계약’이라 한다)을 체결하면서, 주식회사 OO자산신탁이 위 미분양 부동산 305세대를 처분하여 그 매각대금을 우선수익자로 지정된 OO건설에 지급하기로 약정하였다.

라. 한편 원고와 OO건설은 위 미분양 부동산 305세대의 분양예정가액을 이 사건 도급계약에 따른 미지급 공사대금 상당액인 148억 5,995만 원 정도로 보고, 이 사건 신탁계약을 통하여 원고의 OO건설에 대한 공사대금 채무가 모두 변제되는 것으로 약정하였다.

마. 피고는 원고가 OO건설을 우선수익자로 지정하여 이 사건 신탁계약을 체결한 것이 구 부가가치세법 제6조 제1항의 ‘재화의 공급’에 해당함을 전제로, 이 사건 상가의 분양예정가액인 40억 270만 원을 그 시가로 보고 그 중 건물가액인 26억 6,245만 원을 과세표준으로 하여 2012. 1. 2. 원고에게 2006년 제2기 부가가치세 463,427,640원을 경정․고지하는 이 사건 처분을 하였다.

2. 이 사건의 쟁점

이 사건의 쟁점은 앞에서 밝힌바와 같이 기존 채무의 이행에 갈음하여 수탁자에게 재산을 신탁하면서 채권자를 우선수익자로 지정하여 신탁계약을 체결한 것이 부가가치세 과세대상인 재화의 공급에 해당하는지 여부이다.

3. 대상 판결의 요지(대법원 2017. 6. 15. 선고 2014두6111 판결)

가. 구 부가가치세법(2010. 1. 1. 법률 제9915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이하 같다) 제6조 제1항은 “재화의 공급은 계약상 또는 법률상의 모든 원인에 의하여 재화를 인도 또는 양도하는 것으로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신탁법상의 신탁은 위탁자가 수탁자에게 특정한 재산권을 이전하거나 기타의 처분을 하여 수탁자로 하여금 신탁 목적을 위하여 그 재산권을 관리․처분하게 하는 것이다.

따라서 수탁자가 위탁자로부터 이전받은 신탁재산을 관리․처분하면서 재화를 공급하는 경우 수탁자 자신이 신탁재산에 대한 권리와 의무의 귀속주체로서 계약당사자가 되어 신탁업무를 처리한 것이므로, 이때의 부가가치세 납세의무자는 재화의 공급이라는 거래행위를 통하여 그 재화를 사용․소비할 수 있는 권한을 거래상대방에게 이전한 수탁자로 보아야 하고, 그 신탁재산의 관리․처분 등으로 발생한 이익과 비용이 거래상대방과 직접적인 법률관계를 형성한 바 없는 위탁자나 수익자에게 최종적으로 귀속된다는 사정만으로 달리 볼 것은 아니다(대법원 2017. 5. 18. 선고 2012두22485 전원합의체 판결 참조).

이와 같이 수탁자는 위탁자로부터 재산권을 이전받고 이를 전제로 신탁재산을 관리ㆍ처분하면서 재화를 공급하는 것이므로, 채무자인 위탁자가 기존 채무의 이행에 갈음하여 수탁자에게 재산을 신탁하면서 채권자를 수익자로 지정하였더라도, 그러한 수익권은 신탁계약에 의하여 원시적으로 채권자에게 귀속되는 것이어서 위 지정으로 인하여 당초 신탁재산의 이전과 구별되는 위탁자의 수익자에 대한 별도의 재화의 공급이 존재한다고 볼 수 없다.

나. 위 사실관계를 앞서 본 법리와 기록에 비추어 살펴보면, 위탁자인 원고가 이 사건 신탁계약을 통하여 OO건설에 대한 미지급 공사대금 채무에 갈음하기로 하면서 수탁자인 주식회사 OO자산신탁에게 이 사건 상가 등을 이전하고 OO건설을 우선수익자로 지정하였다고 하더라도, 그와 같은 신탁설정에 따른 거래가 있었다는 사정만으로는 부가가치세 과세대상이 존재한다고 볼 수 없다. 그런데도 원심은 이와 달리 위탁자인 원고가 이 사건 신탁계약을 통하여 우선수익자인 OO건설에게 구 부가가치세법 제6조 제1항에서 정한 재화를 공급하였음을 전제로 이 사건 상가의 분양예정가액이자 이 사건 상가의 공급으로 소멸한 공사대금 채무액을 기초로 과세표준을 산정한 이 사건 처분이 적법하다고 판단하였다. 이러한 원심의 판단에는 부가가치세법상 재화의 공급 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

4. 대상 판결에 대하여

가. 종전 판례의 입장

종전에 대법원은 신탁재산의 처분과 관련한 부가가치세 납세의무자에 관하여, 자익신탁(신탁의 수익이 위탁자 자신에게 귀속되는 신탁)과 타익신탁(신탁의 수익이 위탁자가 아닌 수익자에게 귀속되는 신탁)을 구분하여 달리 판단하였다. 자익신탁인 경우에는 부가가치세 납세의무자가 위탁자이고, 타익신탁인 경우에는 부가가치세 납세의무자가 수익자라는 것이 대법원의 확립된 입장이었다. 대법원이 그와 같이 판단한 이유는 아래와 같다.

즉, 신탁법상 신탁재산을 관리ㆍ처분함에 있어 재화 또는 용역을 공급하거나 공급받게 되는 경우 수탁자 자신이 계약당사자가 되어 신탁업무를 처리하게 되는 것이나, 그 신탁재산의 관리ㆍ처분 등으로 발생한 이익과 비용은 최종적으로 위탁자에게 귀속하게 되어 실질적으로는 위탁자의 계산에 의한 것이므로, 신탁법에 의한 신탁은 부가가치세법 제6조 제5항 소정의 위탁매매와 같이 '자기(수탁자) 명의로 타인(위탁자)의 계산에 의하여' 재화 또는 용역을 공급하거나 또는 공급받는 등의 신탁업무를 처리하고 그 보수를 받는 것이어서, 신탁재산의 관리ㆍ처분 등 신탁업무에 있어 사업자 및 이에 따른 부가가치세 납세의무자는 원칙적으로 위탁자라고 보아야 하고, 다만 신탁계약에서 위탁자 이외의 수익자가 지정되어 신탁의 수익이 우선적으로 수익자에게 귀속하게 되어 있는 타익신탁의 경우에는, 그 우선수익권이 미치는 범위 내에서는 신탁재산의 관리ㆍ처분 등으로 발생한 이익과 비용도 최종적으로 수익자에게 귀속되어 실질적으로는 수익자의 계산에 의한 것으로 되므로, 이 경우 사업자 및 이에 따른 부가가치세 납세의무자는 위탁자가 아닌 수익자로 봄이 상당하다는 것이다(대법원 2008. 12. 24. 선고 2006두8372 판결, 대법원 2003. 4. 25. 선고 99다59290 판결 등).

나. 과세당국의 유권해석

대법원 2017. 5. 18. 선고 2012두22485 전원합의체 판결이 선고되기 전까지 과세당국은 종전 판례와 동일한 입장을 취하였고, 다만, 판례에서 사용하지 않는 ‘실질적 통제권’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었다. 과세당국은 아래에서 보는 바와 같이 실질적 통제권이 넘어갔는지 여부에 따라 부가가치세 납세의무자를 달리 판단하고 있었다.

즉, “1. 사업자(위탁자)가 소유 부동산을 「신탁법」 규정에 따라 부동산신탁회사(수탁자)에게 신탁하고 이를 수탁자가 임대 및 양도하는 경우 당해 신탁부동산과 관련된 납세의무자는 위탁자가 되는 것임. 다만, 신탁계약상 위탁자가 아닌 수익자가 따로 지정되어 있어 신탁의 수익이 우선적으로 수익자에게 귀속하게 되어 있는 신탁(타익신탁)에 있어 당해 신탁계약 및 특약에서 정한 조건에 의하여 신탁재산에 대한 사용・수익 및 처분 등에 대한 권한(실질적 통제권)이 위탁자에서 우선수익자로 이전되는 경우에는 위탁자가 우선수익자에게 재화를 공급한 것으로 보며, 그 공급 시기는 당해 신탁계약 및 특약에서 정한 조건에 의하여 신탁재산의 실질적 통제권이 이전되는 때가 되는 것이며, 그 과세표준은 우선수익권이 미치는 금액이 되는 것임. 2. 타익신탁에 있어 위탁자에서 우선수익자로 신탁재산의 실질적 통제권이 이전된 후 수탁자가 신탁재산을 임대 및 양도하는 경우 납세의무자는 우선수익자가 되며, 귀 질의의 제2 신탁계약에서와 같이 1순위 및 2순위 우선수익자 각자가 신탁재산에 대한 실질적 통제권을 이전받은 경우에는 우선순위에 따라 우선수익권이 미치는 금액의 범위 내에서 납세의무를 지는 것임.“(서면3팀-76, 2008. 01. 09. 등 다수)이라고 함으로써 종전 판례와 동일하게 자익신탁의 경우 부가가치세 납세의무자는 위탁자이고, 타익신탁의 경우 부가가치세 납세의무자는 우선수익자라고 유권해석하였다.

다. 변경된 판례

대법원 2017. 5. 18. 선고 2012두22485 전원합의체 판결은 위 가.항의 종전 판례를 변경하여 신탁재산의 관리․처분이나 담보신탁에 있어서 부가가치세 납세의무자는 수탁자라고 판시하였다. 판결 요지는 아래와 같다.

구 신탁법(2011. 7. 25. 법률 제10924호로 전부 개정되기 전의 것) 제1조 제2항은 ‘신탁이라 함은 위탁자와 수탁자가 특별한 신임관계에 기하여 위탁자가 특정의 재산권을 수탁자에게 이전하거나 기타의 처분을 하고 수탁자로 하여금 수익자의 이익을 위하여 또는 특정의 목적을 위하여 그 재산권을 관리, 처분하게 하는 법률관계를 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와 같이 신탁법상의 신탁은 위탁자가 수탁자에게 특정한 재산권을 이전하거나 기타의 처분을 하여 수탁자로 하여금 신탁 목적을 위하여 그 재산권을 관리․처분하게 하는 것이다. 이는 위탁자가 금전채권을 담보하기 위하여 금전채권자를 우선수익자로, 위탁자를 수익자로 하여 위탁자 소유의 부동산을 신탁법에 따라 수탁자에게 이전하면서 채무불이행 시에는 신탁부동산을 처분하여 우선수익자의 채권 변제 등에 충당하고 나머지를 위탁자에게 반환하기로 하는 내용의 담보신탁을 체결한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수탁자가 위탁자로부터 이전받은 신탁재산을 관리․처분하면서 재화를 공급하는 경우 수탁자 자신이 신탁재산에 대한 권리와 의무의 귀속주체로서 계약당사자가 되어 신탁업무를 처리한 것이므로, 이때의 부가가치세 납세의무자는 재화의 공급이라는 거래행위를 통하여 그 재화를 사용․소비할 수 있는 권한을 거래상대방에게 이전한 수탁자로 보아야 하고, 그 신탁재산의 관리․처분 등으로 발생한 이익과 비용이 거래상대방과 직접적인 법률관계를 형성한 바 없는 위탁자나 수익자에게 최종적으로 귀속된다는 사정만으로 달리 볼 것은 아니다.

라. 판례 변경 이후 관련 판결

대상 판결과 같은 날 선고된 대법원 2017. 6. 15. 선고 2014두13393 판결은 주택보증회사를 수익자 겸 수탁자로 하여 체결한 주택분양신탁에서 주택보증회사가 보증채무를 이행하고 상환청구를 하자 이를 실질적 통제권의 이전으로 보아 재화의 공급이라고 하여 부가가치세를 부과한 사안에서, 신탁재산의 관리․처분과 관련한 부가가치세 납세의무자는 수탁자라는 위 2012두22485 전원합의체 판결의 취지를 원용하여 보증채무를 이행한 것만으로는 재화의 공급이 있다고 볼 수 없고, 수탁자의 지위에서 신탁재산을 처분할 때 재화의 공급이 있다고 판시하였다.

마. 대상 판결의 의의

대상 판결은 기존 채무의 이행에 갈음하여 수탁자에게 재산을 신탁하면서 채권자를 우선수익자로 지정하여 신탁계약을 체결한 것을 위탁자의 우선수익자에 대한 재화의 공급으로 보아 부가가치세를 부과한 사안이고, 위 전원합의체 판결은 우선수익자가 미이행된 대출원리금으로 신탁재산을 취득한 것을 위탁자가 우선수익자에게 재화를 공급한 것으로 보아 부가가치세를 부과한 사안이며, 위 2014두13393 판결은 수익자 겸 수탁자가 보증채무를 이행한 것을 실질적 통제권의 이전으로 보아 재화를 공급하였다고 하여 부가가치세를 부과한 사안이다. 대법원은 위 3개의 판결을 통하여 신탁재산의 관리․처분으로 재화를 공급하는 자인 납세의무자는 수탁자라는 점을 명확하게 밝혔다.

대상 판결은 신탁재산과 관련한 부가가치세 납세의무자를 수탁자로 변경한 위 2012두22485 전원합의체 판결이 선고된 이후 변경된 법리를 다시 한번 확인해 준 판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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