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세금을 얼마나 성실하게 내어야 할까. 당연히 올린 소득에서 세법이 정한 한도 내에서 납부해야 한다. 우리가 뽑은 국회의원들이 그렇게 정했다. 그런데 내가 얼마나 벌었는지를 정확하게 기록하지 않으면 제대로 납부하기가 쉽지 않다. 그리고 정확하게 납부했는지를 확인하는 것도 쉽지 않다. 그래서 세법에는 근거과세라는 명분으로 기장(장부)을 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매출이 얼마인지, 그리고 매입이 얼마인지 등을 기록하여 그 기록에 근거하여 세금을 산정하여 신고납부 하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 이 기장의무가 얼마나 엉터리였는지는 몰라도 1990년대만 하더라도 일부 업종의 경우 부가가치세 과세표준이 매출액의 30~40% 선에 머무는 경우도 있었다. 이 정도면 사실상 엉터리 장부였다는 얘기다. 그렇다보니 세금 다내고 사업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이상한 사람 취급당하는 경우도 있었다. 근거과세라는 말은 사실 사전적 의미에 불과했던 셈이다.

그러자 이런 현실이 부끄러웠던 정부는 어떡하면 과표현실화율을 올릴 수 있을까 궁리하던 차에 마법처럼 ‘신용카드’라는 것이 등장했다. 한때 성인 한사람이 많게는 신용카드를 3~4장은 기본이고, 10장 가까이 소지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런 틈을 타 정부는 신용카드 사용액에 대해 낼 세금을 계산할 때 소득공제를 해주는 제도를 고안했다. 그리고 신용카드 사용액은 급증했고, 과표현실화율은 쑥쑥 올라갔다. 특히 음식점들의 경우는 95%이상이 신용카드 매출이라고 할 정도로 과표현실화율이 급격히 신장됐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업종에서의 탈세가 줄어들지 않으면서 탈세근절에 대한 목소리는 끊이지 않았고, 정부는 개인사업자를 대상으로 하는 ‘성실신고확인제’라는 제도를 전격 도입했다. 세무대리인들이 대신해 주는 기장만으로는 성실성을 믿지 못하겠으니, 세무대리인들이 작성하는 신고서류가 성실한지를 다시한번 세무대리인들이 확인하여 (세무서에)제출하라는 것이었다. 코미디도 이런 코미디가 없었다. 하지만 납세자들이 순진한 탓도 있겠으나 ‘성실납세’라는 지고지순한 대의에 대부분 동의할 수 밖에 없었고, 제도는 물살을 탓다.

그리고 최근들어 이어지는 세수호황에 성실신고확인제의 '보이지 않는 힘'이 컸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정부는 떡 본 김에 제사지낸다는 격으로 개인사업자에 한해 실시해 오던 이 성실신고확인제를 법인사업자에게까지 확대한다고 발표했다. `17년 세법개정안에 담겨있다.

그런데 이번에는 어찌된 일인지 정부의 말이라면 무조건 꾸벅하던 세무대리인들의 대표단체인 한국세무사회가 법인사업자에 대한 성실신고확인제 도입을 반대한다는 건의서를 기획재정부에 제출한 모양이다. 세무사들의 입장에서는 세무사들의 업무와 관련 확실히 법률적 지위를 가진 이 제도를 굳이 배척할 필요가 있을까라는 의문이 생겼지만 이 제도를 통해 들어오는 수입은 많지 않은데 이에 따른 제재(징계)가 매우 무서운 존재로 다가와 있다는 현실이 더 크게 작용한 것이라는 말이 들린다.

이 제도가 없어도 먹고사는데 지장이 없는데 왜 굳이 잘못 다룰 경우 터질지도 모르는 폭탄을 집안에 두려하는 것이냐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이미 자리잡은 세무사들의 입장이 더 크게 대변된 것이라고 한다.

세무사들의 입장과 호불호는 그렇다치고 문제는 이 제도가 납세자 입장에서 정말 필요한 것일까를 따져봤다.

먼저 법률적인 면부터 살펴보자. 현재의 세금신고제도는 납세자의 자기결정권을 보장하고 있다. 법정기한내 신고‧확정된 내용에 대해서는 관세관청이 확인한 근거자료에 의해 경정‧결정되기 전까지는 성실한 것으로 추정하도록 하는 ‘성실성 추정원칙’을 전제로 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법인성실신고확인제’를 도입한다는 것은 현재 신고납부되고 있는 법인세가 ‘불성실하다’고 전제하는 것이나 다름없으며, 납세자가 신고한 세금은 성실한 것으로 추정한다는 법률 조항까지 부인하는 결과가 될 수 있어 위험천만이다.

행정적인 측면에서도 사리에 맞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성실신고 확인업무는 본래 과세관청 스스로 신고성실도 분석 및 세무조사를 위해 사전 수행하는 업무다. 그럼에도 이 제도를 강행하는 것은 국세청의 업무와 책임을 세무대리인들에게, 비용은 납세자에게 전가하겠다는 것이다.

납세자입장에서도 성실신고확인을 받을 경우 세무조사를 받지 않는다면 기꺼이 (납세)협력비용을 부담하겠지만 현재의 상황은 그렇지가 못하다는데서 정부의 생각에 흔쾌히 동의가 되지 않는다. 비용(정신,물질)은 비용대로 물고, 또다시 세무조사를 받아야 한다면 막말로 국세청은 손 안대고 신고성실도를 높이고, 세무대리인들에게는 일거리(수입)를 보장해 주려는 것 아닌가라는 의구심까지 가지지 않을 수 없다. 납세자들로서는 세금을 내기위해 기장료와 세무조정료 외에 성실신고확인수수료까지 이중 삼중으로 협력비용을 지불해야하니 하는 말이다.

이에대해 정부에서는 성실신고확인에 따르는 비용은 세액공제나 비용공제를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세액공제 한도액은 100만원으로 한정되어 있으며, 공제한도 초과금액은 고스란히 납세자가 추가로 부담해야한다는게 현실이다. 또한 성실신고확인 대상이 되는 법인들의 절반가량은 총결정세액이 없는 적자기업이라는 것이다. 즉 이런 기업들은 확인비용에 대한 세액공제나 비용공제도 받을 수 없다. 이런 사실을 알면서도 제도를 추진한다면 국민을 위한 정책이 아니라 ‘가렴주구’다. 세무대리인들 입장에서도 이런 기업들에게 확인비용을 당당히 청구할 수 있겠는가. 세무대리인들이 이 제도의 도입에 입을 삐죽이 내미는 이유다.

이쯤 되면 납세자들이 성실신고확인을 받아야 하는 시간적‧정신적 노력 외에도 확인비용 지급에 따른 납세협력비용을 추가로 부담하게 된다는 사실은 투정수준에 불과하고, 어쩌면 신고검증제 자체를 송두리째 새로 짜야한다는 이야기까지 나올지 모르겠다.

기자이기 이전에 납세자의 한사람으로서 ‘성실한 납세’를 위해서라면 이중 삼중의 검증장치를 마련하는 것에 동의한다. 하지만 더 이상의 비용을 부담하게 하지 말든지, 아니면 성실신고확인제를 ‘사전세무조사제’로 바꾸어 성실신고확인을 받은 사업자는 세무조사에서 면제해 주어야한다. 그게 정의롭고 당당한 정책이다. 그렇지 않다면 ‘기장료에 조정료에 성실신고확인비용까지’부담해야 하는 납세자는 배(세금)보다 배꼽이 더 크다는 말과 함께 메가폰을 들고 나설지도 모른다.

제발, 납세자들을 목동의 양이 아닌 이리의 양떼로 만들려 하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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