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호영 세무사
석호영 세무사

삼년여의 긴 코로나 터널을 지나, 그 끝자락에서 중학교 동기 동창들과 오랜만에 만남을 가졌다. 캐나다에서 일시 귀국한 동기 외 여섯명의 여성 동기와의 오찬 자리였다. 청일점인 나, 그리고 위 칠선녀와의 만남이었다, 캐나다에 이민중인 동기가 일시 귀국하여 기획된 만남같았다. 오랜만의 만남이니 모두 반가웠다.

모임중 일원인 동기가 운영하는 남한강 메기 매운탕집, 개인적으로도 맛이 좋아서 코로나 상황 전에는 수차례 갔었지만 여전히 맛있었다. 메기와 참게, 민물 새우를 듬뿍 넣고 끓인 매운탕,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가운데 소담하고 먹음직스럽게 진상되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함께 먹으니 더욱 맛있고 좋았다. 역시 맛있는 음식에 좋은 친구, 좋은 기분과 좋은 분위기에서 먹는 식사는 맛이 더 좋을 수 밖에 없다.

정말 맛있었다. 귀한 민물 새우 튀김은 주인인 본인이 쏘겠단다. 정이 많은 친구같았다. 그리고 일부러 겉절이와 오이 소박이 등 일부 찬은 우리의 방문 계기로 직접 담갔단다. 정이 듬쁙 담긴 성의 또한 고마웠다. 지나간 세월 동안 잘 발효되었을 우정을 버무려 끓여서인지 제대로 맛을 내는 매운탕과 반찬들이었다.

오찬 후에는 레스토랑 가까이에 위치한 어린이 대공원에 가서 만개한 벚꽃을 감상하며 산책도 하고 커피도 마셨다. 번개 모임이기는 했지만 사전에 계획했던 것보다도 멋진 벚꽃놀이였다. 사전에 치밀한 계획없이 우연히 이어지는 여정이 어느 순간에는 더욱 큰 설렘과 감동으로 다가올 때가 있다. 오늘이 그런 날이었던 것같다.

이곳 벚꽃을 만끽하기 위해 입추의 여지없이 몰려온 상춘객들. 그 물결속에 휩쓸려, 낯선 곳에서 산책하는 맛이 감흥을 불러일으켰다. 사실 이곳은 아들이 어릴 때 한차례 와보기는 했지만 그 때와는 경관과 풍물이 상전벽해라 할 정도로 변했고 당시 이곳은 수도권 벚꽃 놀이의 상징 지역이 아녔나 생각되는 곳이기도 하다.

산책 중 공원 내에 세워진 국민교육 훈장 탑을 지나며 당시 암기했던 '우리는 민족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띄고 이땅에 태어났다. 조상의 빛난 얼을 오늘에 되살려'로 시작하는 내용을 상기해 보니 감회도 새로웠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공원 내 까페에서 커피 타임을 가졌다. 추억 소환 수다놀이, 졸업후 50여년이 지난 동기 동창들의 모임이니 그동안 꽁꽁 봉인 되었던 특급 비밀까지도 소멸시효가 지났지 않않겠는가. 그러니 추억들이 무제한 마구마구 소환되고 방출될 수밖에 없다.

마치, 영화 화양연화(花樣年華)에서 양조위가 장만옥과의 사이에 가슴 깊이 묻어 두었던, 애매한(quizas) 연정과 사연들을 캄보디아 앙코르와트 사원의 담벼락 구멍에 한웅쿰 묻고 봉인 하였듯 우리도 그동안 타임캡슐에 깊숙히 봉인되었던 그 사연과 추억들까지도 한올 한올 실타레 풀 듯, 소환하는 기분이 삼삼하였다. 아마 나를 포함하여 그녀들도 어딘가에 애매한 사연들을 한개 내지는 그 이상 꽁꽁 봉인해 두지 않았을까 생각해 보았다.

또한 한잎 두잎 떨어져 바람에 날리는 벚꽃잎을 바라보며, 화양연화의 그 한 장면을 떠올려 본다. 쏟아져 휘날리는 추억들을 그 장면에 오버랩도 시켜본다. 양조위가 앙코르와트 그 담벼락에 봉인한 사연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그도 먼 훗날 그의 추억을 찾아 떠났으리라. 때로는 홀로 의미심장한 내심의 미소를 지으며 반추에 젖었으리라. 나 또한 내용은 다를지 모르지만 그런 순간, 그런 기분이 아녔을까 생각해 보았다.

중딩 당시, 동기 동창들과의 에피소드. 선생님들의 이야기 등 수많은 추억들이 떨어져 뒹구는 벚꽃잎 숫자 만큼이나 많게 탁자 위에 차려졌다. 그리고 커피향과 함께 공중으로 흩어졌다.

친구들과 함께 추억을 머금으며 향수에 젖어 보는 것도 매운탕 못지 않게 구수하고 맛있었다. 식후에 산책도 하고 또 함박웃음을 지으며 대화를 하니 배가 부르도록 먹었던 음식도 금방 소화되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일노일노 일소일소(一怒一老 一笑 一小)라고 하는 모양이다.

코로나 시국 후 이런 모임 정말 오랜만이었다. 칠십대를 바라보는 나이인데도 모두 표정이 밝고 건강해 보여서 좋았다. 무엇보다도 각자의 표정에 중딩 때, '갈산의 미소와 백제의 미소'가 아직 서려 있어서 좋았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가끔씩 우수와 애수에 젖은 모습도 스며 있었다.

세월 만큼이나 내공도 튼튼히 다져있는 듯 했다. 어느 분야에 천재적 재능을 가진 사람도 그 재능을 꽃피우기 위해서는 파란만장한 삶이 내재되어 있다지 않던가, 삭풍과 풍파를 헤치며 인생여정을 걸어가야할 평범한 범인이야 말할 나위가 있으랴. 대부분의 사람이 그럴 것이다. 나 또한 대동소이(大同小異)할 것이다.

각자 삶의 터전에서 치열하게 열심히 살아온 훌륭한 친구들, 아니 그 치열함을 즐기며 삶에 임해온 친구들, 모두에게 그 긴 세월 동안 나름대로의 성(城)을 쌓으며 애썼다고 훌륭하게 살아왔노라고 진정한 위로와 박수를 보내고 싶다. 또 앞으로도 더욱더 건강하고 행복한 나날이 이어지기를 기원해 본다.

중딩 학창시절이 주마등처럼 뇌리를 스치는 가운데 새록새록 떠오르는 순간들, 50여년전, 그때로 돌아가 추억의 파편들이 부드러운 봄바람에 떨어지는 벚꽃만큼이나 많게 끊임없이 나뒹군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이지만 매일 보는 친구처럼 자연스럽게 대화가 계속 이어졌다. 그래서 동창, 그것도 동기 동창이 좋은 모양이다.

초봄의 연록색 연약한 새싹처럼 순진하고 순수했던 중딩시절의 그들, 수줍어 말 한마디도 조심스럽게 건네거나 건네지도 못하던 사춘기 소녀들이 이제 한 여름의 진한 녹색으로 변신하여 성숙한 모습들이었다. 머리에는 흰머리가 몇 올, 얼굴에는 보일듯 말듯한 주름이라는 계급장을 달고 나와 그 시절 수줍음은 온데 간데 없어 보였다. 그 만큼 성숙하고 모두 곱게곱게 잘 익어가고 있음이 보였다.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황홀한 청춘, 그 순수와 갈망으로부터의 탈출" 그 것은 세속적 삶의 경험과 세상 풍파에 파뭍혀 파란만장한 인생 여정 끝자락에서 기다리는 행복한 깨달음이 아닐까 오늘 이 순간 생각해 본다. 질풍 노도와 격정으로부터의 탈출은 순수함을 지우는 세속적이고 속물적 과정였다. 그러나 그 순수함이 오늘 이시간에 생생하게 재생, 부활되는 느낌이었다.

흰 컬러와 검정색이 조화를 이룬 수녀복을 입은 수녀 동기의 모습, 그녀의 모습에서 중딩시절의 단아하고 순수하며 깨끗한 흰색 컬러에 남색 복장의 교복이 겹쳐 보였다. 그녀에게서는 아직도 세속적이고 속물적 과정은 없어 보였다. 우아하고 정돈된 그의 모습에서 당시와 현재가 묘하게 연결되고 연속되어 보이는 느낌이었다.

그러면서도 의젓하고 의연하며 범접하기 어려운 완성체로서의 포스를 느끼게 되었다. 물론 다른 동기들의 모습에서도 그런 면은 엿보였다.

영화 말레나(malena)에서 사춘기 소년 레나토는 "수많은 여성이 본인을 기억해 주겠냐고 물어 봤지만 물어본 그녀들은 기억에 없고 아무 말도 묻지 않고 말하지 않은 말레나만이 내 가슴 속에 아련히 남아 있다"라는 그의 독백이 나의 귓전에도 머므는 듯 하다. 단순한 고귀함, 조용한 위대함, 소리없는 함성은 이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누구나 겪었을 정신적 격랑과 격정의 십대 사춘기 시절, 다가 설 수 없고 구체적으로 행동 할 수도 없는 이성에 대한 설레임과 호기심이 발원 되었던 그 시절, 정상적 성장 발달한 소년이라면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소용돌이치고 용솟음쳤던 순간이 없지 않았을 것이다.

팜므파탈의 치명적 미모의 여인, 말레나를 흠모하여 수없이 썼다가 구겨서 바닷가에 버린 레나토의 편지만큼이나 그랬을 것이다. 레나토의 편지 만큼이나 그 사춘기 시절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킨 순간이었다.

그 것은 말레나가 아름다워서 그럴수도 있지만 레나토의 순수함이 더 커서 그럴 것이다. 어색하고 어설프고 아슬아슬하고 뒤죽박죽이던 그 시절로부터 탈출하여 이제 거울 앞에 우뚝선 누님처럼, 한송이의 국화꽃이 그랬듯, 모두 어떤 비바람과 폭풍우, 모진 세상 풍파에도 끄떡없을 누님처럼 듬직해 보였다. 철옹성같이 굳건한 면모 또한 엿볼 수 있었다.

현재의 어느 한 지점에서 오랜 친구를 만나면 또 다른 과거로의 여행이 이어져 좋다. 특히 학교 동기 동창의 만남은 이렇게 시계추를 아름다웠던 과거로 돌릴 수 있어서 더욱 좋았다. 과거를 있었던 그대로 꾸밈없고 채색없이 반추 할 수 있으니 더욱 좋다. 청춘의 마지막 길목에서 선 동기들과 서산마루에 걸쳐있는 태양을 바라보니 세월의 흐름을 실감한다.

고등학교 시절에 '전국 자유교양 고전읽기 경시대회' 출전 준비중 논어, 소학, 택리지, 당시, 한시, 구운몽, 사씨남정기, 채별감별곡등 서적을 탐독했던 때가 있었다. 그때 고전중 '구운몽(九雲夢)이라는 책이 있었다.

절에서 도(導)를 닦던 주인공 양서유(스님 명은 성진)가 육관도사의 허락을 받고 용궁에 다녀 오던중 길목에서 놀고있던 팔선녀(八仙女)를 만나게 된다. 순간 도닦는 길을 잊고 그녀들에 반하여 그 팔선녀와 함께 온갖 경험을 다하며 꿈같은 삶을 산다. 결국 정신을 다시 가다듬고 절로 다시 돌아가 도를 잘 닦아 세상을 규휼했다는 줄거리의 이야기였다. 물론 양서유의 일장춘몽(일場春夢)을 다룬 이이기였다.

주인공 양서유의 심정이 이랬을까, 양서유와 같이 사춘기나 청춘 시절에 이런 상황이 전개되었으면 비슷한 감정 언저리에는 가봤지 않았을까 생각해 봤다. 그런 감정과 정서가 일기에는 너무 많은 세월이 흘렀다.

양서유에게 일장춘몽(一場春蒙)였듯이 몽암(夢巖)의 뚱딴지 같고 건방지고 택도 없는 상상이었다. 그러나 양서유와 그 팔선녀를 상상해 볼수 있는 순간이 주어지니 나쁘지는 않은 것 같다.

모처럼 꿈 많던 유년 시절로의 시간 여행, 추억 여행을 하였다. 오랜만에 수다를 떨며 호방하게 웃으며 시간을 보냈다. 모두 밝은 표정이어서 더욱 좋았다. 마음과 기분이 테라피되고 힐링되었다는 느낌이었다.

나와 그 일곱 명의 친구들, 봄의 어귀에서 벚꽃과 함께한 짧은 추억의 향연이었지만 모두의 가슴 속에 길고 찐한 여운과 함께 오늘 이 순간도 화양연화(花樣年華)의 순간으로 기억되기를 소망해 본다.

서산 마루에 걸려있는 석양을 바라보며 아쉬운 귀로에 올랐다. 백세시대라고는 하지만 우리도 저 마루에 걸터앉아 있을 때가 백퍼(100%) 올 것이다. 그러나 주어진 오늘 하루도 소홀히 할수 없는 '까르페 디엠'. 

흐드러진 벚꽃 길에서 영화 '말레나'의 사춘기 소년 레나토와 '화양연화'의 중년 남성 양조위와 우연한 조우였다. 그리고 고전 '구운몽'의 양서유까지 소환하며 청춘시절을 공유했던 친구들과 함께 추억과 향수에 젖어본 뜻깊은 한나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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