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관예우 방지법 시행 이후, 세무서장 73%는 ‘세무서 관내’에 버젓이 개업
국세청 ‘명퇴 시즌’은 6월 말인 상반기, 12월 말인 하반기로 나눠진다. 그러나 최근 일선의 모 세무서장이 명퇴보다 앞선 지난 10월 퇴직 후 곧바로 세무사 사무실을 개업한 것이 ‘기장 매매’를 위한 것이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세무서장’이라는 자리가 여전히 세무사 개업을 위한 창구라는 지적이 나온다. 명퇴를 앞당길 정도로 기장 확보가 중요한 일일까.
22일 세정일보가 ‘국세청 전관예우 방지법’이 시행된 이후인 `23년 상반기부터 `25년 상반기까지 퇴직한 전국 세무서장 110명의 퇴직 후 경로를 분석한 결과, 퇴직 후 곧바로 관내에서 개업한 이들의 비중이 약 73%로 집계됐다.
고객 명단을 사고파는 기장 매매는 해도 되는 행위일까. 세무사 사무소 자체를 양도받거나 고객이 계약 승계에 동의하면 불법은 아니다. 다만 세무기장 업체 한 곳당 얼마라는 형식으로 돈을 주고 사고팔게 되면 위법이 된다. 세무사는 업무를 알선하거나 그 대가를 받고 소개·중개해서는 안 된다는 조항이 세무사법에 명시돼 있다.
세무서장은 왜 퇴직하면 개업을 할까. 이는 과거 국세공무원에게 세무사 자격증을 주었고 이로 인해 퇴직 세무서장은 ‘제2의 인생’으로 세무사업을 이어간다. 특히, 자신이 세무서장으로 근무했던 곳에서 다시 세무사로 개업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 되었다.
그러나 세정가를 뒤 흔들었던 세정협의회 사태에서도 알 수 있듯 퇴직을 앞둔 세무서장이 관내 기업체들과 퇴직 전 구두로 고문 계약을 맺고 실제 퇴직 후에 이들 업체로부터 고문형식으로 돈을 받는 것이 드러나기도 했다. 세무서장 출신 한명의 세무사가 받는 월 고문료는 수천~수억원에 달했다.
이처럼 ‘전관예우’ 문제가 지속되자 이를 막기 위해 ‘공직퇴임 세무사’의 수임제한법이 국회를 통과하기도 했다. “왜 세무서장 자리에 퇴직 예정자를 앉히느냐”, “어제는 서장님이고 오늘은 사장님이냐”는 비판이 계속됐다.
전관예우 방지법은 지난 `22년 말 시행됐다. 그러나 세정일보가 `23년 이후 퇴직자들의 현황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아직까지도 세무서장으로 근무했던 세무서와 같은 건물에 개업을 한 세무서장이 있는 것으로도 확인됐다.
이에 대해 국세청은 ‘직업 선택의 자유’라고 말하고 있다. 지난 `23년 김창기 당시 국세청장은 국세청 국정감사에서 퇴직 직원들의 로펌 이직과 관련 “퇴직하는 분들의 직업 선택의 자유에 대해서는 현직자가 평가하기 어렵다”고 답한 바 있다. 현직이 아닌 첫 퇴직자 출신 국세청장의 발언이었다.
이후 이재명 정부에서도 현직자가 아닌 국세청 퇴직자 출신인 현 임광현 청장을 국세청장으로 다시 임명했다. 임광현 청장도 국세청 차장으로 퇴직 후에 세무법인을 설립하며 대표세무사로 근무했고, 임 청장이 근무했던 1년 6개월가량 세무법인 선택의 매출이 100억원이 넘는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인사청문회에서는 ‘전관예우’ 논란이 다시 불붙기도 했다.
국세청의 고질적인 ‘전관예우’ 논란을 없애기 위해서는 세무서장 자리에 ‘퇴직자’가 아닌 ‘승진자’를 앉히면 된다. 퇴직 예정자들은 지방청 과장, 국장 자리에서 명퇴하면 관내 기업체와의 고문료 논란 등은 대부분 간단히 사라질 수 있는 문제다.
그러나 국세청은 아직까지도 ‘개업하기 좋은’ 길목인 서울 시내 세무서장 등은 퇴직을 앞둔 이들로 임명하고 있다. 오랜 기간 국세청에서 근무한 선배들에 대한 예우 차원에서 관행적으로 퇴직 후에도 잘 먹고 살 수 있도록 배려한다는 차원이다. 또한 여기에는 2년 먼저 퇴직(명퇴)이라는 인사불이익에 대한 보상성격도 있다.
공직퇴임 세무사 수임제한법은 지난 `22년 말경 시행돼 올해로 3년을 맞이했다. 5급이상 직급으로 근무하다가 퇴직한 후 세무사 개업을 하면 퇴직 1년 전부터 퇴직한 날까지 근무했던 국가기관이 처리하는 사무와 관련된 세무대리를 수임할 수 없도록 하는 것이 골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10명의 퇴직 서장 중 관내에 다시 개업한 이들은 80명, 관내는 아니지만 강남에 다시 자리를 잡은 서장은 추가로 13명이 더 있다. 사실상 85%는 퇴직 후 관내 혹은 강남권에 개업 중인 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