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무조사 ‘방어권’으로 작동될 긍정 측면…‘이행강제금제도’는 힘 잃을 가능성

박훈 교수, "탈세의 도구로 악용되지 않도록 예외 규정의 엄격한 적용" 필요

변호사 ‘비밀유지권’이 국회 법사위를 통과하면서 향후 국세청의 세무조사에도 영향이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세무조사를 대비해 변호사가 작성했던 서류나 자료를 공개하지 않을 권리가 인정되기 때문이다.

지난 18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전체회의를 열고 비밀유지권 도입을 골자로 하는 변호사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변호사의 비밀유지권은 OECD 국가 중 우리나라만 유일하게 입법화가 되지 않았다. 구체적으로 ‘변호사와 의뢰인 간 비밀 유지권(Attorney-Client Privilege·ACP)’은 변호사와 의뢰인 등이 법률사무와 관련해 주고받은 정보나 문서를 비밀로 유지할 수 있는 권리를 뜻한다.

현행 변호사법에는 ‘변호사였던 자는 그 직무상 알게 된 비밀을 누설해서는 안 된다’는 변호사 비밀유지의무에 관해 규정하고 있을 뿐, 변호사와 의뢰인 등의 사이에서 이루어진 비밀인 의사교환 내용을 공개하지 않을 권리는 규정하고 있지 않다.

이에 따라 수사기관은 변호사 사무실을 압수수색해 변호사와 의뢰인이 주고받은 이메일, 문서 등 의사교환 내용을 수집하거나 변호사를 참고인 신분으로 소환하는 방식으로 수사를 하고 있어 ‘국민이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침해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이와 관련해 이재명 대통령(사법연수원 18기)은 변호사 출신으로 대선 과정에서 ‘변호사와 의뢰인 간 비밀 유지권(Attorney-Client Privilege·ACP)’을 공약으로 내세운 바 있으며, 대한변호사협회는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국정기획위원회 정치행정분과에서 ACP 도입을 포함한 정책입법 제안서를 전달하기도 했다.

법무부에 따르면 이번 개정안은 미국에서는 의뢰인이 변호사의 법률 조력을 받기 위해 이루어진 비밀 의사교환을 변호사-의뢰인 특권으로 보호하고 있는바, 변호사법 26조의2 제1항에서 그 부분을 규정토록 했다.

같은 조 제2항에서는 변호사-의뢰인 특권과는 별개로 변호사가 의뢰인의 법적 쟁송에 대비해 작성된 자료가 공개될 경우에 상대방에 의한 무임승차 우려가 있으므로 공개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로 인정되고 있는 업무성과물 원칙을 규정했다.

이렇게 되면 국세청이 실시하는 세무조사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기업이 변호사로부터 받은 법률 검토 문서나 이메일을 강제로 확보하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국세청이 납세자에 대한 세무조사 과정에서 기업 법무팀이나 로펌의 자문 자료까지 요구할 수 있었다면, 앞으로는 비밀유지권을 근거로 제공하지 않을 수 있게 된다.

특히 국세청이 최근 도입한 ‘세무조사 자료제출 거부 시 이행강제금 부과’하는 제도는 비밀유지권을 이유로 자료제출을 거부하게 될 가능성도 있다.

국세청 세무조사 과정에서 기업들은 자료제출을 거부하는 방식으로 조사를 방해해 왔다. 자료제출 거부로 부과되는 벌금이, 세무조사 추징금보다 가벼웠기 때문이다. 이 같은 현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 국세청은 올해부터 다국적기업이 정당한 사유 없이 자료제출을 거부·지연하는 등 조사 방해 행위에 대한 이행강제금을 도입했다. 1일당 평균 수입금액의 0.3% 범위에서 이행강제금을 부과한다. 평균 수입금액이 없거나 산정이 곤란하면 1인당 500만원 범위에서 이행강제금이 부과된다.

하지만 비밀유지권이 시행되면 정당한 사유 없이 자료제출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비밀유지권을 근거로 자료 제출을 거부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이처럼 국세청은 세무조사 과정에서 AI 및 포렌식을 활용한 조사 기법을 고도화한다 하더라도 비밀유지권이 적용되면 향후 조사 단계에서부터 조사에 활용되는 자료가 제한될 것으로도 전망된다.

이와 관련 박훈 서울시립대 교수는 "변호사-의뢰인 비밀유지권(ACP) 제도의 도입은 세무분야에서 납세자의 방어권 강화라는 긍정적 측면과 함께 신중히 접근해야 할 과제들을 동시에 안고 있다"며 "그동안 세무조사 과정에서 납세자들이 변호사와 상담한 내용까지 모두 공개해야 했던 부담이 사라지고 법률자문 내용이 보호받게 돼 납세자가 솔직하고 충분한 법률 조언을 구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또한 "OECD 국가 중 유일하게 이 제도가 없던 우리나라도 이제 국제 수준의 납세자 방어권을 갖추게 됐다"면서도 "이 제도가 탈세의 도구로 악용되지 않도록 예외규정의 엄격한 적용과 함께 변호사의 직업윤리 강화가 병행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특히 "세무 분야에서는 '적법한 절세'와 '위법한 탈세'의 경계가 모호할 수 있으므로, 향후 판례와 실무를 통해 구체적인 기준이 정립돼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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