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어진 청진기를 목에 두르고 있다
빛바랜 와이셔츠에 넥타이는 매지 않았다
하늘색 단추가 느슨하게 풀려 있다
출퇴근도 휴식 시간도 명확하지 않다
벽시계의 초점은 미동도 하지 않는데
진한 하품 소리가 대기실까지 전염된다
거식증인지 폭식증인지
묻기도 전에 바람의 몸무게를 잰다
이제 막 사랑을 끝낸 중년 부부처럼
이미 잠든 사람을 깨워 수면제를 권한다
철 지난 잡지가 여기저기 흩어져있다
푸른색 다이아몬드를 찾아
독수리타법으로 자판을 두드린다
텅 빈 진료실엔
아직 목숨을 의탁할만한 가벼운 안도감이
듬성듬성 자리 잡고 있다
은폐가 불가능한 새끼고양이 수염처럼
자꾸 만져도 자라지 않는 토끼 인형처럼
만질수록 쭈그러드는 방울토마토처럼
시詩든 것들은 모두 바람에 날리기를 원한다
[박정원의 시에서 시를 찾기]
의학과 문학의 경계를 넘나들며 애를 써온 의사 시인의 고뇌와 역정을 이 시 한 편이 함축합니다. “시詩든 것들”이 그것을 대변해줍니다. 그의 환자나 병원 가족, 수술 도구 등을 시적 은유로 꾸준히 승화해왔기 때문입니다. “상자의 세계”에 갇혀 있다가 결국엔 “폐업 직전”의 “늙은 의사”라니요. 시인의 운명은 꿈과 좌절의 영원한 반복이라는 형벌 속에 갇혀 있는지 모릅니다. 시인과 의사라는 정체성을, 김연종 시집 『삶은 팍팍하고 생은 울컥한다』(황금알시인선 328, 2025) 여러 쪽에서, 함께 번뇌의 여행에 동행할 수 있어 추천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