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 인스타그램]
[국세청 인스타그램]

“국세청 어딘가에 비밀금고가 있다?!” 국세청 비밀금고가 전격 공개됐다. 인스타그램의 국세청 릴스다. 지난 3월11일 “경매사이트 ‘옥션’을 통해 체납자에게 압수한 물품을 경매로 판매한다”는 알림이다. 거대한 금고가 열리면서 ‘에르메스’, ‘샤넬’ 등 명품 핸드백에서부터 시계, 양주, 미술품까지 다양한 물건들이 전시된 장면을 보여준다. 그리고 –국세청 비밀금고 전격 공개!- 라는 제목 아래 “체납으로 압류된 물품을 온라인 공개 매각합니다! 명품부터 주류, 미술품까지 국민 누구나 참여 가능합니다.” 상세한 설명을 첨부해 알기 쉽고도 눈에 확 들어오는 영상이다. 관심을 끌기에 충분히 넘친다는 느낌이다. 동경의 대상인 명품을 소유하고 싶은 욕구에 불을 지핀다. “얼마나 싸게 가질 수 있으려나” 관심을 가지고 경매에 참여하려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데 이것이 훌륭한 행정인지 나아가 칭찬받아야 할 국세청의 선진행정인지는 정말 모르겠다. 체납정리는 국세청의 해묵은 과제이고 다양한 아이디어와 행정 방법이 동원될 수 있는 사항이다. 그래도 국세청이 직접 경매하는 것은 격 떨어지는 느낌이다. 국세청의 체면이 있고 국가의 살림살이를 책임지는 기관의 자존심과 위신(威信)이 있어야 한다. 모르긴 해도 체납자로부터 몰수한 물건이라면 자산관리공사(Kamco)에 맡겨서 관리하게 하는 것이 관행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물론 국세청이 하면 더 잘할 수 있다는 것이 현실이고 진실일 수도 있다. 그래도 체납자로부터 압수한 재산을 국세청이 직접 현가화하는 것은 체면이 구기는 모양새 같다. 옛말에 “소 잡는 칼로 닭 모가지 딴다”는 말이 생겨난 이유다. 연장의 용도를 따지지 않고 마구 사용하는 어리석음을 빗댄 말이라는 것은 누구나 알 것이다.

국세청은 행정수반의 위치에서 보면 가히 도깨비방망이에 비견될 정도로 쓸모가 다양하고 무섭게 위력 있는 최상의 무기다. 어떤 정책에도 동원할 수 있고 국세청이 나서면 대부분 해결된다는 긍정적인 시그널도 보장되고 있다. 그래도 국세청의 일차적 목적과 존재 이유는 나라 살림의 안정(세수 조달)과 국민의 성실납세 분위기 조성, 징세비용의 절감과 납세비용 축소가 일차적 과제일 것이다. 그다음 정부가 역점을 두고 추진 하고자 하는 주택, 물가, 복지 등의 정책에 일정 부분 힘을 보탤 수 있다. 이런 아주 원론적인 생각만 해봐도 체납자에게 몰수한 물건을 국세청이 직접 경매하는 것은 소 잡는 칼을 닭 잡는 데 사용하는 느낌이 훨씬 강하다.

그리고 주술이나 신앙의 측면이 아닌 인간 본성으로 회귀해서 보아도 아무리 고가이고 명품이라고 하지만 핸드백이나 시계 같은 장신구 등은 왠지 저어된다. 사용하지 않고 감추어 둔 것이라 항변할지 모르지만 개인적인 취향이 강하게 작용하는 악세서리나 소지품은 중고를 선호하지 않는 이유가 있다. 핸드백이나 신발, 시계 같은 경우 누구나 명품에 대한 동경이 있고, 구입하는 순간 이미 구입자의 정령이 함께하게 된다. 세금을 체납하면서 명품을 구입하는 심성이라면 올바른 생각과 인간 본연의 삶을 살기보다는 남과의 경쟁심이나 우월감, 나쁜 심성으로 나쁜 짓을 죄의식 없이 할 수 있는 사람으로 보아도 될 것이다. 이런 나쁜 마음의 정령이 깃든 물건이라면 남에게 팔면 그 역시 나쁜 행위에 동참하게 됨일 것이다. 아무리 실적이 필요하고 잘 보이고 싶어도 해야 할 일과 해서는 안 될 일은 구분 지어져야 하고 소 잡는 칼로 닭을 잡는 것은 어리석음이다.

체납과 관련된 슬픈 사례는 수도 없을 테지만 체납자라는 원죄 때문에 말도 못 하는 하소연 하나가 생각난다. B는 사업을 하다가 매분기별 부가가치세를 200여만 원씩 몇 년 체납하고 소득이 없다는 이유로 종합소득세 신고를 소홀히 했다. 그러다 보니 사업을 접을 때쯤 해서는 3000만 원 가까운 체납이 빚으로 덩그러니 남게 되었다. 이후 소득도 없고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몇 년 지나고 나니 체납액이 5000만 원이 되어 있었다. 가산세니 중가산금이니 하면서 배보다 배꼽이 커진 상황이었다. 더 기막힌 것은 햇살론이니 하면서 아주 저리로 대출해 줄테니 세금을 내라는 안내가 달콤하게 다가왔다. 아르바이트라도 좀 하자니 통장이 필요했고, 체납세금만 없으면 신용 회복되고 통장도 만들 수 있다는 생각에 대출받아 세금을 납부했다. 손에는 일 원 한 푼 만져보지도 못한 5000만 원이 금융 부채로 남아서 연체가 쌓이니 5000만 원이 훌쩍 넘어있다. 더 기가 찰 노릇은 자영업 하다가 망한 생계 불능자에게는 3000만 원까지 금융 부채를 탕감해 준다는 말에 울화통이 치밀어도 참았는데 이제 체납세금도 5000만 원까지는 탕감해 준다고 한다. 재수가 없어도 이렇게까지 없기도 힘든데 아무리 내 팔자가 센가 보다 해도 가슴에 돌처럼 뭉쳐지는 한 덩이는 어찌할 수 없다는 하소연이다. 국세청장이 바뀐 이후 많은 일을 했는데 왜 ‘체납정리단’만 보일까?

국세청이 기름값 인하에 동원된 것도 보기에 따라서는 볼썽사나울 수 있는 행정이다. 최고가격제 시행의 소비자가격 즉시 반영 여부 모니터링을 위해 전국 7개 지방국세청 및 133개 세무서 인력이 13일부터 소비자가격이 높은 주유소, 일일 판매량이 많은 주유소 등에 현장 확인을 나섰다. 점검 과정에서 세금탈루 행위가 확인되는 경우 세무조사로 전환할 예정이라고 한다. 정부가 최고가격제를 시행하기로 하고 고시를 하면서 전국적인 조직을 갖춘 국세청을 동원하기로 한 것이다. 생각해 보면 중동에 전쟁이 발발한 이상 이제 고유가 시대는 필연이다. 고물가, 고 집값, 고주가, 고환율, 고인플레 우리 주변의 무엇을 둘러봐도 천정부지로 오르기만 한다. 고유가는 고가행진을 계속하는 어떤 것보다 가치가 낮아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세금으로 집값 잡지 않겠다”고 공언하면서 정책적으로 국세청을 등장시키지 않아서 박수를 보냈는데 착각이었다.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인상이 강한 ‘체납정리단’ 구성을 위한 인력 충원이 국세청의 모두인 것처럼 보이고, 이미 대세가 된 기름값 잡는데 국세청이란 장엄한 칼을 뽑는 것은 행정의 오류를 입증하는 단면이 아닐까? 체납정리도 기름값 안정도 국가 전체를 놓고 보면 큰 이슈도 중요한 정책에서도 한참 순위가 떨어진다. “요즘 일 잘하고 있다”는 칭찬은 납세자에게서 나와야 진짜다. 대통령이 말하면 아첨을 부추기게 된다. 국세청이 닭 잡는 칼로 사용되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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