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훈 서울시립대학교 세무학과 교수
박훈 서울시립대학교 세무학과 교수

지방자치시대의 핵심은 재정 자립이며, 그 근간은 도민이 납부하는 지방세에 있다. 그러나 세금을 부과할 권한만큼 중요한 것이 바로 부당하거나 착오가 있는 과세를 바로잡는 사후 구제 절차다. 현재 경기도는 전국 최대 인구와 경제 규모를 보유한 광역지자체로서 지방세수와 불복 청구 건수 모두 전국 최고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도민들이 체감하는 구제의 문턱은 여전히 높다. 그 해답의 실마리가 경기도 지방세 심의위원회의 최근 현황 속에 있다.

수치가 말해주는 현실은 냉정하다. 경기도가 2026년 2월 공표한 2025년도 지방세 심의 결과에 따르면, 접수된 과세전적부심사 및 이의신청 834건 가운데 695건이 심의에 회부되었고, 그 중 실제 납세자의 주장이 받아들여진 사례는 57건에 불과했다. 실질 인용률은 8.2%다. 국세청 심사청구 인용률이 최근 5년 평균 20% 내외를 기록해 온 것과 비교하면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지방세는 국세에 비해 사실관계가 상대적으로 명확한 취득세와 재산세 비중이 높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결과가 나온 것은, 심의위원회가 과세 처분의 정당성을 추인하는 형식적 절차로 기능하고 있지는 않은지 묻게 만든다.

그렇다면 왜 유독 경기도의 사례가 중요한가. 경기도는 대한민국 지방세정의 가늠자이자 기준점이기 때문이다. 경기도 내 취득세와 재산세 분쟁은 수도권 부동산 시장의 특수성과 복잡한 규제 환경을 고스란히 반영한다. 실제로 경기도 심의위원회의 결정은 타 지자체의 판단 기준이 되는 선도적 사례가 되는 경우가 많으며, 이는 경기도의 결정이 전국 지방세 구제 체계의 실효성을 가늠하는 척도가 됨을 의미한다. 경기도가 전향적인 태도로 구제 실효성을 높이지 않는다면, 전국의 지방세 불복 절차는 형식적인 틀을 벗어나기 어렵다.

낮은 인용률의 배경에는 구조적인 한계가 자리 잡고 있다. 현재의 심의 시스템은 과세 관청의 법리 해석을 원칙적으로 존중하는 경향이 강하다. 외부 전문가들이 위원으로 참여함에도 불구하고, 제한된 심의 시간 내에 방대한 행정 기록을 검토하여 과세 근거의 미비점을 찾아내기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위원 1인당 배당되는 사건 수와 심의 시간을 감안할 때, 개별 사건의 복잡한 사실관계를 면밀히 검토하기에는 물리적·시간적 한계가 뚜렷하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이유다. 특히 사실관계가 모호한 지점에서는 '세수 손실 방지'라는 보수적 판단이 우선시되기도 한다. 결국 행정 단계에서 구제받지 못한 도민들은 막대한 비용과 시간이 소요되는 조세심판원 청구나 행정소송으로 내몰리게 되며, 이는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의 증가로 이어진다.

물론 57건이라는 숫자 안에는 의미 있는 변화의 씨앗도 담겨 있다. 이번 심의 결과 중 주목할 사례는, 생애최초 주택 취득세 감면을 받은 납세자가 전세보증금 반환 지연으로 3개월 이내 상시거주 요건을 충족하지 못해 세금을 추징당한 건이다. 위원회는 임차권 등기 시기 등 제반 사정을 종합 고려하여 과세예고 통지를 취소했고, 이 판단이 거듭 축적되면서 행정안전부는 결국 관련 규정 자체를 삭제하는 방향으로 지방세특례제한법을 개정했다. 심의위원회의 실질적 판단이 제도 개선으로 이어진 드문 선례다. 그러나 이러한 사례가 예외적 성과로 주목받는다는 사실 자체가, 역설적으로 구조적 변화의 필요성을 방증한다.

경기도 지방세 심의위원회는 이제 '숫자'보다 '신뢰'의 관점에서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 인용률 제고 자체가 목적이 될 수는 없으나, 법문의 자구 해석에만 매몰되지 않고 납세자의 불가피한 사정을 실질적으로 살피는 '실질과세의 원칙'이 더욱 적극적으로 적용되어야 한다. 경기도는 이미 2019년 전국 최초로 '지방세 법무 전담팀'을 신설하는 등 지방세 행정에서 선도적 역할을 자임해 온 저력이 있다. 이제는 징수의 전문성에 못지않게, 심의 과정에서도 정보의 비대칭성을 해소하고 영세 납세자를 위한 전문 조력을 강화하여, 8%라는 수치 뒤에 가려진 도민의 고충에 응답해야 한다. 지방세정의 신뢰는 엄격한 징수가 아니라, 공정하고 실질적인 구제 절차 위에서 비로소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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