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 "셀프 조사, 정부 지시에 따른 것"…"정보유출 3000개 불과"
개인정보 유출, 노동권 침해, 불공정 거래, 세금탈루 의혹 전면 조사
쿠팡이 '셀프 조사'를 통해 고객 3370만명의 개인정보를 유출한 전 쿠팡 직원을 특정하고, 범행에 쓰인 노트북과 하드 드라이브 등 장치를 회수해 조사한 결과 실제로 저장된 정보는 약 3000개 계정에 불과하고 외부 전송 정황은 없었다고 발표하면서 국민적 공분을 불러일으켰다. 정부는 이번 쿠팡 사태가 단순한 정보유출 사고가 아닌 노동권 침해 및 불공정 거래 의혹까지 중첩된 ‘복합적 중대 사안’으로 보고, 12개 정부 부처·기관이 전방위 조사를 실시하기로 했다.
쿠팡은 지난 26일 “이번 조사는 정부 지시에 따른 것”이라며 정부와의 교감 아래 조사가 이뤄진 것처럼 읽히는 정부와의 공조 진행 과정을 담은 약 2000자 분량의 입장문을 내놓았다. 그러나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대는 "노트북 등 증거를 임의 제출한 21일 이전에 피의자 접촉이나 증거 제출과 관련해 쿠팡과 사전에 연락하거나 협의한 적 없다"고 하자, 쿠팡은 접촉한 기관은 경찰이 아닌 국정원이라고 했다.
국정원이 쿠팡과 공조한 정부 기관으로 지목되자 “국정원은 어떠한 지시를 할 위치에 있지 않고 어떠한 지시를 한 바도 없다”면서 국회에 쿠팡 위증죄 고발을 공식 요청했다. 쿠팡 측은 "국정원이 직접 용의자를 만나서 수거할 수 없으니 쿠팡 직원이 반드시 중국에 같이 가서 용의자를 만나서 그것을 받아야 한다"며 "국정원 직원 3명을 만났고, 회수한 다음에는 알아서 해도 된다는 취지로 말했다"고 주장했다.
결국 '쿠팡 사태 범정부 TF’는 청문회 과정에서 드러난 쿠팡의 미온적이고 소극적인 해명 태도, 피해 축소 및 책임 회피적 대응이 국민적 우려와 불신을 더욱 증폭시키고 있다고 판단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경찰청·고용노동부·공정거래위원회를 비롯한 12개 부처·기관은 ‘국회 쿠팡 연석 청문회 후속조치’ 계획을 공개했다.
배경훈 부총리 겸 과기부 장관은 지난달 30일 국회에서 열린 ‘쿠팡 침해사고 및 개인정보 유출, 불공정 거래, 노동환경 실태 파악과 재발 방지 대책 마련을 위한 청문회’에서 “3300만건 이상의 이름·이메일이 유출됐고 개인정보보호위원회·경찰청·민관합동조사단에서 이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주관으로 열린 이틀간의 쿠팡 개인정보 유출 및 재발 방지 대책 마련 연석청문회에는 쿠팡의 핵심 경영책임자인 김범석 의장은 불출석한 채 쿠팡 임시 대표로 출석한 해롤드 로저스는 정부 지시로 조사를 실시했다며 책임 회피성 발언을 이어가자 국회의원들의 거센 질타를 받았다.
배 부총리는 31일 “청문회 과정에서 드러난 쿠팡의 미온적이고 소극적인 해명 태도, 피해 축소 및 책임 회피적 대응이 국민적 우려와 불신을 더욱 증폭시키고 있다”면서 “정부는 이를 절대 좌시하지 않고 법적으로 가능한 모든 방안을 강구해 조치하겠다”고 강조했다.
정부의 쿠팡 조사는 강도를 높여 개인정보 유출, 노동권 침해, 불공정 거래, 세금탈루 의혹 등 네 갈래로 전개될 전망이다.
개인정보 유출 관련 쿠팡의 셀프 조사 결과에 대한 범정부 TF 내에서 전면 재조사가 필요하고, 증거인멸이나 조작 여부도 조사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또 다른 쿠팡 사태의 핵심으로 노동권 침해에 대해서는 고용노동부가 나서 쿠팡의 산재 은폐를 신속 수사하고 야간 노동 및 건강권 보호 조치와 관련해 대대적인 실태 점검에 나선다.
수면 위로 떠오른 산재 은폐와 가혹한 야간 노동은 김범석 쿠팡Inc 이사회 의장이 2020년 대구 물류센터에서 일하다 숨진 고 장덕준씨를 두고 “그가 열심히 일했다는 기록을 남기지 말라”고 지시한 의혹이 더해졌다. 해롤드 로저스 임시대표는 청문회에서 “야간 근무가 주간 근무보다 힘들다는 증거를 알지 못한다”며 시종일관 해명을 회피하기도 했다.
납품업체를 상대로 한 ‘갑질’도 조사 대상이다. 청문회에 나온 쿠팡의 한 입점업체 대표는 “3000원짜리 방풍나물까지 저들이 사냥(베끼기 상품 출시)하는 것을 보았다”며 “공권력 위에 쿠팡이 있는 것 같아 두렵다”고 증언했다.
주병기 공정위원장은 이를 “기술탈취와 유사한 행위”라며 향후 면밀한 조사를 예고했다. 쿠팡의 개인정보 유출 및 피해회복 조치와 관련해선 “영업정지 처분까지 할 수 있다”고 밝혔다. 공정위는 또 쿠팡의 시장지배적 사업자 지정 여부와 김범석 의장의 대기업 집단 동일인 지정 여부도 심도 있게 검토하기로 했다.
국토교통부는 국회 을지로위원회와 함께 쿠팡 종사자 보호를 위한 사회적 합의안을 마련하고, 쿠팡 및 물류 자회사의 근로 여건과 안전관리 조치 등을 점검할 계획이다.
법무부는 중국에 개인정보 유출 증거 수집을 위해 필요한 형사사법 공조의 신속한 이행을 요청하는 한편 주요 사건 관계자의 체류자격 변동내용 및 출입국 기록 등을 검토할 예정이다.
전방위 조사 가운데 가장 날카로운 ‘칼날’은 국세청 세무조사가 될 전망이다.
쿠팡에 대한 세무조사를 하고 있는 임광현 국세청장은 쿠팡 조사 과정에서 미국 국세청과 공조 가능성을 내비쳤다. 임 국세청장은 지난달 22일 착수한 쿠팡에 대한 특별 세무조사에서 구체적 탈세 단서나 물증에 대해서는 조사가 진행 중이라 구체적으로 답할 수는 없다며 국내외 법인 간 내부 거래 적정성 여부를 철저히 살펴볼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임 국세청장은 쿠팡이 상장을 위해 미국에 법인을 설립한 것으로 알고 있지만, 연결 재무제표상 대부분의 매출이 국내에서 발생하는 한국 국민이 키운 기업이라며 정당한 납세 의무를 이행하고 있는지 철저히 확인하겠다고 강조했다. 또 혐의가 있다면 창업주인 김범석 쿠팡Inc 이사회 의장도 철저히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국세청은 지난달 22일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과 국제거래조사국 요원 150여명을 쿠팡 물류 자회사인 쿠팡풀필먼트에 투입해 관련 회계장부 등을 예치했으며, 쿠팡에 대한 특별 세무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국세청은 쿠팡이 미국 본사에 로열티·자문료·수수료 명목으로 거액을 송금해 국내 법인세 부담을 줄이는 방식의 역외탈세 가능성을 살펴보는 것으로 알려졌다. 계열사 간 내부 거래 과정에서 단가를 인위적으로 낮춰 세금을 회피했는지도 집중 조사 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