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호영 세무사
석호영 세무사

칸차나부리(깐짜나부리, Kanchanaburi)의 새벽은 언제나 부드럽다. 햇살은 마치 이 땅이 오랫동안 갈무리해 둔 비단을 펴듯 얇고 투명하게 내려앉고, 바람은 사람의 귀에도 닿지 않을 만큼 조용히 스쳐 간다. 그러나 그 고요의 중심에 서 있는 서해벨트 4인방은 언제나 한 가지 사실을 알고 있다.

우리는 여행을 하는 것이 아니라, 또 한 번의 ‘삶’을 열고 있다는 것.

올해는 딱 열 번째. 열흘 동안의 장정, 열흘 동안의 270홀, 열흘 동안의 ‘희로애락 애오욕(喜怒哀樂 愛惡欲)’.그리고 나는 이 열흘이 또 하나의 생(生)이었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은 골프를 ‘운동’이라 부르지만, 나는 이제 확신한다. 골프는 인간의 속내가 샤프트를 타고 손끝까지 흘러나오는, 가장 정직한 예술이라는 것을.

▶ 320m의 비행…기쁨(喜)과 욕망(欲)의 합장

마지막 라운드, 마지막 p5 450m 롱홀. 드라이버를 손에 쥔 순간, 나는 이미 오늘이라는 시간이 어떻게 완성될지 예감하고 있었다. 드라이버는 골프 클럽 가운데 가장 솔직한 도구다. 속마음이 단 1㎜라도 흔들리면 스윙도 흔들리고, 욕심이 단 1g만 넘치면 타구도 넘쳐 버린다.

백스윙을 올리던 그때, 내 안에서 떠올랐던 감정은 ‘기쁨(喜)’이자 ‘자신감’이었다. 그리고 아주 작은 ‘욕망(欲)’도 있었다. 오늘만큼은, 나를 넘어서고 싶다.

휘~, 공이 뜨는 순간 이미 결과는 내 몸이 먼저 알고 있었다. 볼은 바람의 등 위에 올라타듯 곧게, 아름답게, 매끄럽게 날아갔다. 캐디가 외쳤다. “도로 건너 300m 오버예요! 오버!” 막상 공을 찾아 측정 결과 320m. 10년 동안 수없이 뿌려온 장타의 기록을 스스로 다시 쓰는 순간이었다. 나는 조용히, 더 조용하게 중얼거렸다. “나는 아직도 나를 이길 수 있다.”

니체가 말했지 않은가. “인간은 스스로를 넘어설 때 가장 인간적이다.” 오늘의 나는 그 말을 몸으로 증명한 셈이었다.

▶ 8번 아이언…평온(樂)과 아쉬움(哀), 그리고 소소한 해탈

남은 거리 130m. 욕망이 가라앉자, 대신 ‘평온(樂)’이 내 안을 채웠다. 나는 8번 아이언을 가볍게 잡았다. 손에 닿는 그립의 감촉이 오늘따라 유난히 부드러웠다. “그래, 이건 내가 가장 잘 다루는 클럽이었지.”

톡~, 아이언에서 공이 떨어져 나가는 소리는 언제 들어도 소박한 음악 같다. 정확한 탄도, 정확한 궤적. 그린 왼쪽 앞 깃대를 향해 고요하게 착지하는 그 순간, 심지어 감정조차 없었다. 그저 ‘아, 옳다. 이건 나의 리듬이다’라는 깨달음뿐. 그리고 450m 파5 투온. 나는 오랜만에 그 오래된 희열을 다시 맛보았다. 이글 퍼트가 살짝 스친 채 지나갔을 때 찰나의 아쉬움(哀)이 스쳤지만, 이상하게 웃음이 나왔다.

불교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잃음도 소유이고, 실패도 또 다른 완성이다.” 그러나 파 5홀에서 버디 하나를 스코어카드에 적어 넣으며, 나는 이미 오늘의 완성은 거기서 결정된 것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 골프는 희로애락애오욕(喜怒哀樂愛惡欲)의 집합체

10년 동안 함께한 우리는 샷마다 다른 감정이 묻어남을 안다. 잘 맞으면 기쁨(喜), 벙커에 빠지면 분노(怒), OB가 나면 슬픔(哀), 롱 퍼트를 넣으면 즐거움(樂), 좋은 샷은 사랑(愛), 엉망인 샷은 미움(惡), 그리고 모든 샷에는 ‘더 잘하고 싶은 욕망(欲)’이 따라붙는다.

인생이 복잡한 게 아니다. 사람 마음이 복잡한 것이다. 그리고 골프는 그 복잡한 마음의 지도를 18홀이라는 작은 세계 위에 그대로 펼쳐 보일 뿐.

장자(莊子)는 말했다. “마음이 곧 세계다(心卽世界).” 오늘의 장타는 내 활력을 증명했고, 놓친 이글은 기대와 현실의 간극을 일깨워 주었다. 그 모든 감정이 ‘내 것’이라는 사실이 칸차나부리를 더욱 깊고 아름답게 만들었다.

▶ 칸차나부리…無何有之鄕, 욕망이 사라지는 땅

칸차나부리는, 분명히 말해 ‘무하유지향(無何有之鄕)’이다. 굳이 욕망을 덧붙일 필요가 없는 땅. 쾌식(快食), 쾌면(快眠), 쾌변(快便). 이 세 가지만 충족되면 다른 욕망은 저절로 사라진다.

여기서는 사소한 것조차 은혜다.

매끼 나오는 진수성찬. 세탁 서비스로 매일 다시 태어나는 골프복, 그보다 더 따뜻한 캐디와 직원들의 미소. 이곳에서는 존재 자체가 ‘편안함의 예술’이다.

에픽테토스의 말처럼, “행복이란 원하는 것을 갖는 게 아니라, 이미 가진 것을 사랑하는 능력이다”라고 하지 않았던가. 칸차나부리에서는 가진 모든 것이 사랑할 가치가 있었다.

▶ 벙커에 누운 개들, 그리고 간식 도둑 원숭이

이곳 골프장의 벙커는 ‘모래 함정’이 아니라 개들의 개인 비치(Beach)다. 티샷 직전, 우리는 긴장으로 숨을 고르고 있는데 개들은 벙커 모래 위에서 요가 자세로 누워 ‘행복이란 이런 것이다’라고 시위라도 하듯 졸고 있다.

어느 날은 벙커샷을 하려는데 개 한 마리가 슬쩍 눈만 뜨고 ‘미안한데 이 자리 내가 쓰는 중이거든?’ 이라는 표정을 지으며 옆으로 비켜 주었다. 그 순간, 우리는 골프공보다 더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반면 원숭이들은 한 번 찍은 골퍼의 가방을 절대 놓치지 않는 수준급 도둑이었다.

특히 내 가방. 내 바나나, 내 빵. 그것들은 모두 녀석의 작은 손아귀로 들어갔다. 도망가는 원숭이의 둥근 엉덩이를 보며 미워하려 해도 도저히 미워할 수 없었던 건, 아마도 그 순간마저 여행의 구성 요소였기 때문일 것이다.

▶ 서해벨트 4인방…우리는 골프를 치지만, 사실은 인생을 배우는 중이었다

10년의 세월 동안 우리 넷은 기이할 만큼 조화로운 ‘차이’로 이루어져 있다. ▷아이언이 컴퓨터처럼 정확한 친구, 그러나 드라이버 샷을 멀리 못 보내어 짧은 친구. ▷우드샷과 퍼팅이 예술인 친구, 그러나 가끔 그린 주변에서 두더지 잡는 퍼석 샷을 하는 친구. ▷어프로치가 바늘 끝처럼 정교한 친구, 그러나 가끔 페어웨이에서 세컨샷 쪼루를 내는 친구. ▷그리고 나는 범접할 수 없는 장타로 길을 여는 사람. 그러나 어프로치가 약한 사람이다. 이렇게 우리는 이목구비가 다르듯 다르다. 하지만 그 다름이 우리의 완성이다.

톨스토이는 말했다. “기쁠 때 옆에 있는 사람은 누구나 친구다. 슬플 때 곁에 있어 주는 사람이 진짜 친구다.” 우리는 기쁜 샷만 공유한 것이 아니다. 짜증나는 샷, 억울한 샷, 벙커 모래처럼 온몸에 들러붙는 날들도 함께 견뎠다. 그래서 우리는 오래 간다. 그래서 우리는 깊다.

▶ 저녁 바람, 오래된 팝송…우리들만의 천국

라운드를 마치고 골프장 카페에서 저녁 바람을 맞으며 듣던 팝송은 10년의 추억을 음악으로 풀어놓는 시간이었다. 그 시간만큼은 스코어도, 나이도, 걱정도 모두 의미가 없었다.

영화 시네마 천국의 명대사가 떠올랐다. “인생은 네가 기억하는 모든 순간으로 이루어진다.” 우리가 기억할 순간은 오늘도 하나 더 늘었다.

▶ 마지막 날 오후…짐을 싸며 비로소 깨닫는 것

룸에서 가방을 잠그려는데 문득 깨닫는다. 이번 여행은 ‘단지 여행’이 아니라 내 인생의 또 하나의 장(章)이었다는 것을. 원숭이에게 빼앗긴 간식, 벙커 위의 개들, 320m 장타, 투온의 감각, 4인방의 웃음, 그리고 켜켜이 쌓인 희로애락애오욕.

이 모든 것이 마치 오래된 서가(書架)에 꽂아 넣는 귀한 텍스트처럼 내 마음속 깊은 곳에 차곡차곡 보관된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래, 10년이 이토록 멋졌다면 앞으로의 10년은 더욱 아름다울 자격이 있다.”

▶ 에필로그

골프는 삶의 축소판이 아니다. 그보다 더 정직하다. 감추는 만큼 드러나고, 꾸미면 꾸민 만큼 어설퍼지고, 있는 그대로일 때 비로소 빛을 낸다. 서해벨트 4인방은 그 정직함을 함께 견뎌온 전우들이자 삶의 거울을 함께 들여다본 동행자들이다. 우리는 공을 멀리 보냈지만, 사실 멀리 함께 걸어온 것은 우리의 우정이었다.

그 우정은 다음 여행에서도, 아마 그다음 여행에서도, 하늘 위로 다시 솟구쳐 오를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 우리는 또 하나의 ‘인생을 새로 시작한 사람들’이 될 것이다.

저작권자 © 세정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