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주영의 세정에세이]

○…‘9급 신화, 박찬욱 서울국세청장 취임’. 지난 2006년 7월 31일의 뉴스였다.
최하위직인 9급으로 국세청에 입문해 서울국세청장(1급)까지 오른 첫 케이스였다. 2만여 국세청 직원들의 99%에 이르는 비고시 출신들에게 꿈과 희망을 줄 수 있는 인사라는 수식어가 붙어있었다.
그는 8개월 가까이 재임하다 그 자리를 끝으로 물러났다. 그리고 사무실을 차려 39년간 국세청에서 익힌 세무지식을 납세자들에게 베푸는 세무사로 활동하고 있다. 그러면서 그는 사재를 털어 장학재단을 설립, 어려운 국세공무원들을 도우는 일까지 하고 있다. 서울국세청장을 지낸 후 고액의 연봉을 받으며, 굴지의 로펌(법무법인, 회계법인)으로 직행하는 전임들과는 많이 다른 모습이었다.
박 전 청장 이후 여러 명의 내로라하는 인물들이 서울국세청장을 지냈다. 그리고 대부분 대형 로펌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면서 그의 행보는 더욱 신선해보였다.
이후 서울국세청장을 지낸 이병국 전 청장도 퇴임 후 로펌보다는 세무법인에 둥지를 틀면서 비고시출신 서울청장 2인의 탈로펌행은 후배들에게 귀감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송광조 서울국세청장이 사의를 표하고 물러난지 벌써 19일째다. 국세청은 아직 후임자를 정하지 못하고 있다. 물론 서울국세청장의 임명은 인사권자인 김덕중 국세청장이 혼자만의 생각대로 할 수 있는 인사가 아니라는 점에서 여러 가지 절차를 거치고 있을 것으로 본다. 또한 그만큼 중요한 자리이기도 하다.
현재 세간의 관심은 어떤 인물이 낙점될까이다. ‘누구 누구가 후보자로 올라갔다더라’는 등 하마평이 돌고 있기도 하다.
그러면서 고시출신은 안된다. 또 특정지역 출신도 안된다 등 여러 의견들이 흘러다니고 있는 모양이다. ‘지금 국세청은 특정지역 출신인사들이 중요직위에 대거 포진해 있는 만큼 이번 만큼은 다른 지역 인사를 임명해야 한다. 비고시 출신자를 선택해 9급에서 시작한 직원들도 열심히 일하면 1급으로 오를 수 있다는 꿈과 희망을 주어야 한다’는 등 나름대로의 주문들을 쏟아내고 있는 것이다.
‘인사가 만사’라고 하듯이 정말 어려운 문제다. 어떤 인물을 선택해야 할까요.
그동안 국세청 고위직 인사를 점칠 때 어떤 인물이 되어야 한다는 여론보다 어떤 인물이 임명될까에 더 관심을 가져온 게 사실이다. 이는 임명권자인 국세청장이 누구보다 조직을 잘 알고 또 그 자리에 어떤 인물이 적합한지를 제대로 판단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과 신뢰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렇게 임명된 ‘3인자’가 겨우 4개월도 채우지 못하고 과거의 불미스런 일로 중도 낙마했다. 제대로 검증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번에는 매우 신중한 모양새를 띄고 있는 모습이다. 물론 청와대와의 조율도 필요할 것이고, 국세청 내부의 인사역학관계도 따져야 할 것이며, 소위 말하는 정무적 판단도 필요할 것이라는 점에서 쉽지 않은 인사임에는 틀림없다.
그런 점에서 지금 국세청은 송광조 전 서울청장의 우(愚)를 범하지 않기 위해 그리고 그 일로 맥 빠진 국세공무원들의 사기를 위해 빠뜨린 것은 없는지 시간이 남아 있다면 한번 더 숙고해 보아야 할 것이라고 주문하고 싶다.
○…지금 서울국세청장이 해야 할 일은 무엇보다 안정적인 세수관리일 것이다. 따라서 후임 서울청장은 6천여명에 이르는 서울국세청 직원들의 신망을 받는 인물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래야 조직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일 수 있다. 그래서 국세공무원들의 99%를 차지하는 비고시 출신중에서 임명하는 것이 더 나을 수 있다는 소리가 나오는 것이다.
물론 비고시출신이 임명되거나, 그리고 특정지역 출신을 배제한다고 직원들의 사기가 올라갈 것이라는 이야기는 추상적인 것이다. 그리고 ‘역차별’일 수 있다는 점에서 신중을 기해야 할 부분이다. 그런 점에서 그 어느 때보다 이번 인사가 중요하고 또 쏠린 눈도 많다. 어떤 인물이 되던 ‘아! 적임자다’ 라는 말을 들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가지 더 덧붙이자면 비정치적 인물이 임명되었으면 한다.
서울국세청 조사4국이 과거 모(某) 기업을 조사해 전직 대통령을 사지(死地)로 몬 단초를 제공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는 것처럼 국세청장이 그런 정치적 오해의 소지가 있는 조사를 명령할 때 최소한 한번 정도는 ‘신중합시다’라고 말할 수 있는 강단 있는 인물이었으면 한다.
그리고 서울국세청장을 지낸 후 곧바로 대형 로펌에 들어가 후배들을 상대로 ‘로비’를 벌이지 않겠다고 서약하는 사람이라면 더 좋을 것 같다. 과연 가능할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