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주영의 세정에세이]

국세청이 지난 29일 ‘전국관서장회의’를 열어 몇 가지 ‘국세행정 쇄신방안’을 발표했다. 국세청이 강조했고, 또 눈에 띄는 것은 국세청 간부들은 대기업 관계자들과 부적절한 사적만남을 갖지 못하게 하겠다는 내용이다.
구체적으로는 식사나 골프 등 일체의 부적절한 사적 만남을 금지하라는 지시다.
대기업으로부터 뇌물을 받아 챙긴 혐의로 잇달아 구속되고 사직한 전직 국세청장들의 뉴스를 접한 국민들의 국세청에 대한 신뢰가 바닥으로 곤두박질치면서 자칫 국세행정이 총체적으로 동력을 잃을 수도 있는 시점에서 나온 쇄신책이어서 눈길을 끌었다.
그런데 왠지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지 ‘반신반의’하게 된다.
고위직이든 아니든 국세공무원이 기업체 관계자들과 부적절한 만남을 가지는 것은 당연히 ‘이상한 행위’이다. 그런 당연한 것을 ‘이제부터는 하지 않을 것’이라며 동네방네 선전을 하니 참 우습다.
그동안 그런 만남이 얼마나 많았기에 그리고 국세행정에 얼마나 큰 걸림돌이 되었기에 이렇게 간부들을 모아놓고 ‘서약’을 받고 국민들에게 ‘선언’까지 하나 싶다. 전직 국세청 수장들이 대기업으로부터 취임 축하용으로 미화를 받아챙기고, 또 호텔에서 만나 고급시계를 선물 받았기 때문이라면 언뜻 이해가 가기도 한다.
그런 만남이 문제라면 왜 간부들만인가? 국세공무원들은 9급만 되어도 사실 관내 중소기업 사장들의 오금을 저리게 하는 ‘슈퍼 갑’이라는 소리를 듣고 있는 게 현실이다. 그렇다면 단계적 시행이 아니라 당장 전 직원들까지 확대하는 게 맞다.
그리고 간부들이 만나지 말아야 할 대상 중 ‘조사수임 세무대리인’으로 국한한 것도 이상하다.
당장 ‘팥소’가 빠진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국세청 간부들이 조사수임대리인과 부적절한 사적 만남을 가져서는 안된다는 것도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다. 문제는 조사수임 세무대리인을 만나는 것보다 조사수임도 없는 세무대리인을 자주 만나는 것도 문제라는 사실을 모르진 않을 텐데 그 부분은 왜 쏙 뺐는지 모르겠다.
기라성 같은 국세청 출신 OB들의 반발이 두려워 이 부분을 발표에서 뺐는지 모르겠지만 이번 국세청의 쇄신방안이 국민들로부터 박수를 받기 위해서는 되새겨 봐야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쇄신안에 높은 점수를 줄 수가 없다. 지금 국세청이 쇄신해야 할 일은 간부들의 청렴의식도 중요하지만 정치적 세무조사 금지방안, TK독식으로 불리는 인사혁신 등 산적한 진짜 과제들이 많음에도 한 두가지 쇄신책을 내놓고 국민들에게 우리를 신뢰해 주시오라고 하는것은 염치불문이다.
국세청이 진정 국민들의 신뢰를 회복하려면 가죽의 때를 긁어내는 정도로는 안된다. ‘병객(屛客)’의 실천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이야기다. 표정의 비장함 못지않게 가죽을 아예 한 꺼풀 벗겨내는 심정으로 덤벼들어야 한다. 국민들은 그런 개혁(改革) 을 원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