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 20분경까지 하루 종일 국회에서 제21대 국세청장 임환수 내정자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개최됐다.
임 내정자는 경북 의성에서 태어나 대구고등학교를 마치고 서울대학교 정치학과에서 수학했다. 행정고시 28회에 합격해 국세청에 몸담아 30년째 근무를 하고 있다.
이런 그의 이력이 이날 청문회에서 도마에 올랐다. 현재 한국 경제를 이끌어 가고 있는 수장이자 국세청을 지휘하는 부처의 수장인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임 내정자의 고등학교 선배이고, 또 청와대의 경제수석도 동향이라는 것이었다. 한 의원은 기어이 경제부총리나 청와대 등에서 정치적 세무조사를 논한다면 중립을 지킬 수 있겠는가라면서 그의 다짐을 받아내기도 했다.
국세청장이 가져야 할 그리고 반드시 지켜져야 할 덕목중의 하나임에도 그의 출신과 배경 때문에 인사청문회에서 이런 다짐을 받아야 한다는 점에서 다소 씁쓸했다.
임 내정자는 그리고 국세청에서 30년간 근무하면서 1997년 국세청이 세무조사라는 힘을 믿고 대기업들을 윽박질러 대선자금을 모금해 난리가 났던 시절의 청장 이었던 임채주 씨의 비서관을 지냈고, 또 다른 두 청장들의 비서관으로 지근거리에서 보좌해 온 이력을 가지고 있다. 아마도 내가 국세청 수장이 된다면 어떤 세정을 이끌어 갈 것인가를 생각하고 또 생각해 봤을 것이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임 내정자를 ‘준비된 국세청장’이라고 네임 밸류를 부여해 왔다.
여기에 화답하듯 임 내정자는 인사청문회를 통해 “‘국민의 신뢰가 없는 세정은 아무리 정당한 일을 해도 설 자리가 없다’는 소중한 진리를 절실히 깨달았고, ‘세금을 고르게 하여 국민을 사랑하라’는 균공애민(均貢愛民)의 정신이 지금의 세정에도 여전히 긴요하다는 사실도 깨우치게 되었다”면서 “국세청장에 임명된다면 ‘세금을 고르게 하여 국민이 신뢰하는 세정’을 구현하는데 모든 역량과 열정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법령과 절차를 준수하는 ‘준법세정’을 전개함으로써 부실과세와 정치적 중립성 시비, 부조리문제를 극복하겠다고 말했다.
임 내정자는 지난 2003년 국세청장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 제도가 도입된 이후 8번째로 국회의 검증대에 선 국세청장 후보자다.
이전 국세청장들도 대부분 이 자리에서 부실과세 방지와 정치적 중립, 부조리문제의 척결을 외쳤다. 하지만 결과는 국민들의 ‘실망’과 ‘원망’이라는 단어로 나타났다. 많은 수장들이 구속되었고, 불명예 퇴직하는 수모를 당했다. 그리고 아직도 영어의 신세를 지고 있는 인물들도 있다.
그래서인지 임 내정자는 “아무리 훌륭한 성과를 거두더라도 청렴성과 투명성이 훼손되면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없다는 점을 깊이 인식하고 자신부터 멸사봉공(滅私奉公)의 자세로 임하겠다”면서 “국세청의 위기는 항상 고위공무원단의 부적절한 처신에서 출발했던 만큼 고위직에게는 강력한 도덕적 수준을 요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인사청문위원들은 여기에서 만족할 수 없었다.
이번에는 임 내정자의 국세청내 이력을 물고 늘어졌다. 지방청 조사국장, 본청 조사국장 등 국세청의 핵심 보직이라고 할 수 있는 조사국장을 무려 6번이나 지낸 이력이었다. “이런 이력 때문에 지금 재계에서는 징세행정이 강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있다”는 지적이었다.
임 내정자는 여기에도 당당하게 자신의 소신을 피력했다.
“세무조사를 통해 세수를 확보할 수 없다. 신고단계에서부터 성실신고가 담보될 수 있도록 조직과 업무의 프로세스를 개선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세무조사분야의 개혁과 관련해서도 “조사분야에 오래 근무했다는 점에서 우려할 수도 있지만 오히려 개선방안을 더 잘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서 조사분야의 강한 개혁의지도 드러냈다.
하지만 이런 임 내정자의 자신감에 찬 의지의 피력은 현실문제에서는 단호함을 보여주지 못함으로써 이날 인사청문회 내내 보여주었던 기대감의 한계를 드러내기도 했다.
유명 여배우 송 모양의 탈세사건과 관련 인사 청문위원이 “국세청의 봐주기 세무조사였고, 거기에는 회계사와 세무법인의 사무장이 끼어있으며, 그리고 전직 청장의 이름까지 팔리고 있다”고 하는데도 “취임 후 법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권한이 있는지를 따져본 후 (가능하다면) 확인해 보겠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인사청문회에서 보여주었던 당당하고, 열정적이고, 개혁적인 모습과는 사뭇 다른 모습으로 읽혔다.
존경하는(?) 전직 국세청장의 이름이 나와서인가? 아니면 5년치 과세분을 3년치만 했을 경우 2년치를 더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세무대리인들에 대한 관리 감독권이 국세청도에 있다는 사실을 정말 모르는 것인지 고개가 갸우뚱해지는 대목이었다.
그래서인지 이날 청문회를 마무리 하면서 청문회를 주관한 정희수 기획재정위원장의 당부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국세청 공무원이 비리를 저질렀을 경우 어떻게 하겠느냐는 질문에 대응하는 후보자의 답변이 명확하지 않다. 비리를 저질렀을 경우 말로만 하지 말라고 하면 효과가 없다. 법치국가에서는 법이 필요하다, 두 번 다시 재발되지 않도록 국세청 조직은 몇 배 엄하게 하실 용의가 있는지를 밝히라”고 고언을 전했다. 백 마디 말보다 행동으로 보이라는 주문으로 읽혔다.
그리고 기자는 “국민의 신뢰가 없는 세정은 아무리 정당한 일을 해도 설자리가 없다”는 임 내정자의 모두 발언이 자꾸 떠올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