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주영의 세정에세이]

세수 전망이 빨간불이다. 상반기에만 10조원의 세수가 부족하다고 한다. 그런데 정부와 여당은 세수가 필요한 근원적 요인인 복지공약의 후퇴는 절대불가를 외치면서 ‘증세는 없다’는 방침을 확고히 하고 있다. 그리고 국세청으로 하여금 지하경제 양성화부터 해내라고 다그치고 있다. 여기 저기서 빠져나가는 탈세만 찾아내어도 증세를 하지 않고 복지재원을 확보할 수 있다는 논리가 다그침의 배경이다.  

 

그런데 지하경제 양성화라는 것이 말처럼 그렇게 녹록하지 않다는데 고민이 있다. 국세청이 발족한 이래로 지금까지 숱하게 외쳐온 것이 지하경제 양성화다. 사실 지금 국세청은 우리나라의 지하경제 규모가 어떤 수준인지에 대한 자료조차 없다는 것이 더 큰 문제다. 모든 조세전문가들이 외국의 학자가 발표한 숫자를 놓고 우리나라 지하경제 규모가 얼마라는 둥 떠들어대는 수준일 뿐이다. 

 

어쨌든 지금 국세청은 숫자 타령할 여력이 없다. 세수를 확보해 내야한다. 그래야 2만명의 직원을 거느린 조직의 체면이 서게 된다. 국세청은 세법을 집행하는 기관이다. ‘세수가 어려우니 복지공약을 수정해야한다. 증세를 해야 한다. 애초부터 예산을 잘못 짰다’라는 등의 말을 할 수 없는 기관이다.   

 

이런 점에서 국세청은 지금 ‘사면초가’다. 

 

이런 국세청의 위치를 잘 아는 김덕중 국세청장은 이미 인사청문회를 준비할 때부터 지하경제 양성화에 ‘다걸기’를 하겠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그런데 여기 저기서 적(敵)들이 나타났다. 그가 취임한지 5개월을 넘기면서 그 적의 숫자가 자꾸 불어나 오적(五敵)이 되었다. 

 

그 첫 번째 적은 김 청장이 취임 전에 불거져 나온 ‘뇌물직원들’이었다. 국세청의 핵심조직인 서울국세청 조사1국의 한 개 조사반 전원이 세무조사 업체로부터 추징액을 줄여주겠다면서 수 억 원의 뇌물을 챙긴 사건이 터져 나왔고, 지하경제의 탈세를 잡아내겠다며 분기탱천했던 국세청의 의지에 찬물을 끼얹었다. 

 

두 번째 적은 ‘전직 두 국세청 수장들’이었다. 조사국 직원들의 뇌물사건의 재발방지를 위해 ‘세무조사 특별감찰팀’을 만드는 등 나름대로 대책을 강구하면서 안정을 찾아가던 국세청을 뒤흔든 사건이 터졌다. 전직 두 국세청 수장이 연루된 국세청장 취임 축하용 ‘뇌물돈다발’ 사건이었다. 이들은 지금 법의 심판을 받기위해 영어의 몸이 되어있지만 그 후유증은 고스란히 국세청에 남아있다. 국세청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가 바닥으로 추락할 수 밖에 없는 사건이었다. 

 

세 번째는 ‘증세론자들’이다. 이들은 국세청이 아무리 노력을 해봐야 세수를 맞추기는 어려울 것이므로, 복지공약을 수정하지 않으려면 증세를 하라는 이야기를 수 없이 쏟아내고 있다. ‘증세는 없다. 주어진 세수는 우리가 확보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세수확보에 일로매진하고 있는 국세청 직원들을 느슨하게 만드는 요인인 것이다. 지하경제 양성화가 하루 아침에 되는 것도 아니고, 최선을 다하다가 안되면 증세하겠지 라는 매너리즘에 빠지게 만드는 것이 지금의 증세론이자 세수확보 의지에 고춧가루를 뿌리는 국세청의 또 다른 적인 것이다.

      

네 번째로 국세청 직원들을 힘 빠지게 하는 요인은 만사(萬事)라고 하는 ‘인사(人事)’다. 김덕중 국세청장이 답은 현장에 있다고 했듯이 국세청의 뿌리와 줄기 즉 힘은 일선 직원들의 사기와 자부심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지금 국세청 인사는 99% 비고시 출신들의 기대를 저버리는 선택을 함으로써 이들이 ‘희망’을 둘 곳이 없다며 꺾인 근무의욕이 한눈에 보인다. 이 인사에 대한 책임은 인사권자인 김 청장에게 있는 것이어서 누구 탓도 못 할 테니 더 아프다. 

마지막으로 국세청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것은 내란모의 혐의를 받고 있는 ‘나쁜 국회의원’이다.  

 

많은 국민들은 자유 대한민국의 안정된 체제를 위해 세금을 낸다. 그런데 내란음모 혐의를 받고 있는 국회의원이 꼬박 꼬박 세금으로 세비를 받고, 또 그가 속한 정당도 매년 27억 여원의 국고보조금을 받고 있다면 납세자들의 생각은 달라진다. 국가 전복을 꾀하고, 내란을 모의하는 개인과 집단에 돈을 보태주기 위해 세금을 내는 국민은 없다.  

 

불꽃 튀는 세정현장에서 ‘내란모의를 하는 국회의원에게 세금(세비)을 주기 위해 지하경제를 양성화 하려느냐’라고 납세자들이 얼굴을 붉힌다면 국세청 사람들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요.  

 

‘나쁜 국회의원’, 어쩌면 가장 무서운 국세청의 다섯 번째 적(敵)이자 국민 세금의 적(賊)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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