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주영의 세정에세이]

 

“국세청장은 국세청 소속 1급 중에서 임명한다. 국세청장의 임기를 2년으로 보장한다. 국가세무위원회를 두어 국세청의 정치적 중립의무 및 국세청장 추천 등 국세공무원 인사·조직·감찰 등에 관한 사항을 감독한다. 국세공무원을 특정직 공무원으로 한다. 국세연구원을 만든다.” 

지난달 민주당 정성호 의원의 대표발의로 국회에 나온 ‘국세청법’의 골자다. 

"국세청은 지난 정부에서 정치적 목적으로 세무조사를 실시했다는 의혹을 받는 등 정치적 중립을 준수하지 않은 것으로 인식되어 국민들로부터 불신과 비난을 받고 있으며, 특히 최근에는 조세정의에 앞장서야 할 국세청이 대기업으로부터 뇌물을 수수하는 등 직원들의 비리와 부패가 날로 심각해지고 있는 상황이어서 국세청을 개혁해야 겠다"는 것이 이 법안의 제안이유다. 

이 법안이 국회를 통과할 지는 아직 미지수다. 하지만 현 시점에서 국세청이 개혁되어야 하고, 또 어떻게 개혁되어져야 한다는 중요한 신호를 해 준 법안임에는 틀림없어 보인다. 최근 국세청이 내놓은 국세행정 쇄신방안이 국세청에 의한 ‘셀프개혁안’이라면, 정 의원이 발의한 국세청법안은 외부에 의한 국세청 개혁노력을 돕겠다는 ‘헬프개혁안’이라고도 볼 수 있다. 

국세청법안에 담긴 국세청의 정치적 중립의무, 국세청장 임기보장, 국세공무원의 특정직화, 국세연구원 신설 등 100% 찬성하는 것은 아니지만 일단 방향은 틀리지 않았다고 보여진다. 

하지만 가장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국세청장의 후보자를 국세청 소속 1급중에서만 추천하도록 한 조항에는 ‘훈수’가 필요할 듯 하다. 

국세청장은 내국세에 관한 사무를 통할하고 국세청 업무를 관장하며, 소속공무원을 지휘?감독하는 자리이다. 이런 중차대한 자리의 후보자를 국세청 소속 공무원으로 한정한다면 국세청 조직을 국민의 조직이 아닌 국세청 사람들의 조직으로 공고화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재고가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국세청법이 제정될 경우 국세청의 1급 숫자가 지금의 4명에서 7명 정도로 늘어나고, 국세공무원들의 사기를 위해 9급에서 시작하더라도 국세청장까지 오를 수 있는 길을 열어놓아야 한다는 점 등에서 국세청 1급 중에서만 추천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일견 맞는 방향일 수 있다. 

그러나 국세청장 자리는 국세청에서 닳고 닳은 이들에게만 주어지는 자리로 한정시킬 수 있는 그런 자리가 아니다. 국세청장은 국가에 필요한 재정을 책임지고 확보해야 하고, 또 세부담의 공평성을 담보할 수 있는 세무조사라는 막강한 권한이 주어지는 자리다. 나아가 조세정의를 바탕으로 한 사회정의의 실현까지를 두 어깨에 짊어지는 매우 중차대한 자리이기도 하다. 

물론 국가세무위원회가 추천한다고 국세청장에 임명되는 것은 아니다. 기획재정부 장관의 제청이 있어야 하고, 국회의 인사청문회를 거쳐 대통령이 최종 임명하는 과정에서 걸러질 수 있다고 하지만 국세청에서 1급이 되었다고 무조건 국세청장 후보군이 되어야 하고, 또 그들만이 후보가 되어야 한다면 자칫 국세청이 내부 결속을 더 다지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그렇게 된다면 국세청을 개혁하겠다고 만든 법안이 자칫 국세청을 더욱 폐쇄화 해 국민들과 더욱 멀어지게 할 수도 있다. 

최근 국세청이 내놓은 셀프 쇄신안에 나타난 ‘직무상 권한을 남용하지 않고, 조직구성에 대한 부당한 업무지시나 압력을 행사하지 않겠다’는 내용이 이를 잘 대변하고 있다. 국세청의 문제는 외부의 청탁이나 정치적 압력 등을 거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부의 청탁이나, 부당한 업무지시가 더 무서운 존재라는 점에서 가장 중요한 국세청장 직을 내부인으로만 특정한다면 언젠가 국세청장 후보자가 될 상급자의 부당한 업무지시에 따르지 않을 직원이 과연 몇 명이나 되겠는가? 

국세청장 후보자격을 국세청 1급에게만 기회를 준다는 것은 생선가게를 고양이에게 맡기는 결과이자, 자칫 국세청을 그들만의 성(城)으로 더욱 공고화 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경계해야 할 사안이다. 

그동안 국세청장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국세청이 가장 두려워했던 것 중 하나가 외부인이 청장으로 내정되는 것이었다. 바꾸어 말하면 국세청은 내부에서 국세청장을 배출해야 국세청이 인정받고, 또 자존심을 상하지 않는 것이라는 생각이 매우 강하다. 

그런 점에서 국세청장 후보가 외부인도 될 수 있도록 문을 열어둔다면 국세청 고위직들의 ‘청렴과 자질’을 압박할 수 있는 또 다른 ‘무기’일 수 있다. 그리고 공직의 민간개방 추세와도 맞다. 나아가 다른 권력기관도 내부인만 수장으로 승진할 수 있도록 규정돼 있다면 당장 고치는 게 맞다. 

국세청은 물론 검찰, 경찰, 국정원 등 모두 그들만의 기관이 아닌 국민의 조직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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