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주영의 세정에세이]

○…지난 1999년 6월경 국세청 특별조사팀이 서울 강남의 한 기업체 사무실을 급습했다. 당시 이 조사팀의 목표는 국세청이 특별조사를 나설 경우 일반적으로 조사대상 업체의 서류를 영치하는 것과는 조금 달랐다.
당시 조사팀이 노린 것은 이 기업이 은밀하게 보관 중이던 회사의 금고였다. 금고 안에는 이 회사의 대주주와 관련한 기밀문건이 들어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국세청 조사팀은 금고를 쉽게 접수 할 수 없었다. 기업관계자들이 강하게 버티었기 때문이다. 국세청 조사국 요원들은 밤을 새웠고, 이틀반이라는 긴 시간동안 실랑이를 벌인 끝에 금고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그리고 국세청은 강도 높은 조사를 벌였고, 조세정의에 부합하는 액수의 세액을 추징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국세청은 왜 이 회사를 특별조사 대상으로 선정했고, 또 왜 세무조사의 핵심표적으로 이 회사의 금고로 삼았을까 라는 의문이 뒤따랐다.
세무조사가 끝나가면서 아주 은밀하고 정확한 ‘탈세제보’가 있었다라는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제보에는 금고안의 내용물은 물론 위치까지 정확하게 적시돼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상의 ‘휘슬블로어’였던 셈이다.
○…올 들어 탈세제보가 크게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또 제보에 따른 추징세액도 예년보다 크게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국세청에 따르면 올 들어 8월까지 제보건수는 7627건에서 1만2147건으로, 추징액은 3220억원에서 6537억원으로 크게 늘어났다. 또 국세청은 올해부터 도입된 차명계좌 신고포상금 제도로 인한 신고도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미 고소득전문직 등 사업자의 차명계좌 3545건을 확보했다고 한다.
국세청은 이처럼 탈세제보와 차명계좌 신고가 증가하는 이유를 포상금 한도를 크게 인상한 것이 큰 역할을 했다고 분석하면서 무엇보다 기업들의 비자금 조성 등 실효성 있는 제보가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 더욱 고무적이라고 밝혔다.
탈세제보 및 차명계좌 신고포상금제도가 국세청의 강력한 세무조사와 함께 조세정의를 앞당기는 최적의 수단으로 자리 잡아 가고 있다는 반증이다.
○…그런데 일부에서 조세정의의 파수꾼이라고도 할 수 있는 신성한 탈세제보자를 ‘세파라치’라고 표현하면서 아쉬움을 사고 있다.
세파라치는 사전적으로는 차명계좌를 신고하거나 세금 탈루 행위를 증명하는 장면을 몰래 카메라로 찍어 신고 포상금을 받는 탈세 제보자를 일컫는 말이다.
그러나 현실은 유명인들의 스캔들이나 프라이버시를 드러내는 사진을 노리는 질이 나쁜 사진사를 지칭하는 '파파라치'에서 파생되었다는 점에서 부정적인 의미까지 내포하고 있다.
탈세제보는 단순히 눈에 보이는 현상을 사진으로 찍어 신문사 등에 팔아먹으며 돈벌이 수단으로 하는 파파라치나 쓰파라치(쓰레기 무단투기), 카파라치(교통법규 위반)와는 차원이 다르다. 해당 기업의 사정을 깊숙이 파악해야 하고, 또 은밀하게 자료도 수집해야하는 등 고도의 전문지식이 필요한 분야다. 그런 점에서 ‘탈세제보자=세파라치’라는 말에는 동의할 수 없다.
탈세제보자는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릴 각오까지 해야 하는 담대한 용기가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부정부패와 불법에 맞서 사회정의와 공익을 실천하는 ‘휘슬블로어’이자 ‘의인’으로 불려야 하는 사람들이다.
그냥 ‘세파라치’라고 쉽게 불러서는 안 될 일이다. 그리고 탈세제보자들의 ‘용기’가 폄하되어서는 더욱 안 될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