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무사회의 '불씨 제거용' 규정 개정 이야기
한국세무사회, 지난 7월 여비지급 규정 ‘상임이사회 의결’ 강제한 문구 삭제
회원들, 이제 미국출장은 ‘회장 맘대로’…“회장 전횡 막을 최소장치 사라져”
지난 2011년 정구정 제27대 세무사회장 당선자는 5월 취임했다. 2005년 재선에 실패한 후 6년여를 절치부심하며, 전국을 누빈 결과 압승을 거두었다.
그런데 취임 한 달여 만에 ‘부랴부랴’ 선거관리규정의 특정 조항을 개정했다.
내용은 9조의 2(선거운동의 제한) 규정으로 선거예정일 90일 전부터 선거와 관련 본회 및 지방회 등에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기부하거나 약속하는 행위 또는 당선을 전제로 기부금품 제공을 약속하는 행위를 할 수 없도록 하는 것이었다.
개정되기 전의 해당 조항은 ‘임원선거와 관련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기부금품 제공’을 아예 할 수 없도록 되어있었다. '선거예정일 90일 전부터'라는 문구를 추가한 것이었다. '왜 굳이 90일로 했을까?'라는 의문을 뒤로 한 채 “알고 보니 '자신을 위한 개정'”이라는 이야기가 돌아다녔다.
당시 업계에서는 3월 치러진 회장 선거전에서 정구정 후보가 ‘1억원을 기부하겠다’고 약속했고, 선거에서 고배를 마신 상대 후보가 (선거전 기부는)선거규정상 '명백한 당선무효'이므로 소송도 불사하겠다는 압박을 하는 등 논란이 뜨거웠던 일 때문일 것이라고 수군거렸다. 새로 당선된 회장이 취임한 지 한 달여 만에 처리된 일이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이후에도 이 1억원에 대한 논란은 '1억원의 진실'이라는 제목으로 세무사회 게시판을 뜨겁게 달구는 등 한동안 업계의 '핫 포테이토'였다.
그리고 2년 후.
지난 6월 선거가 치러졌고, 또다시 출마해 3선을 쟁취한 정구정 회장은 이번에도 당선 한 달 만에 세무사회의 한 가지 ‘규정’을 개정하는 남다른 순발력을 발휘했다.
2013년 7월 26일이었고, 제28대 임원진을 구성한 후 첫 상임 및 이사회에서였다.
내용은 ‘여비 등 지급규정’ 제12조.
‘국외여비는 실비지급을 윈칙으로 하되, 그 전액 또는 일부액만을 지급할 수 있다’는 내용으로의 개정이었다.
개정 전에는 ‘국외여비는 실비지급을 윈칙으로 하되, 상임이사회의 결의에 따라 그 전액 또는 일부액만을 지급할 수 있다’라고 돼 있었다. ‘상임이사회의 결의에 따라’라는 자구가 빠진 것이다. 실제로 세무사회 고위관계자도 자구수정을 한 것일 뿐 아무런 이유가 없다고 둘러댔다.
그러나 다른 관계자는 이 규정은 지난 선거기간 내내 정구정 후보를 괴롭혔던 사안이었다는 점에서 어떤 회무보다 시급하게 고치고 싶었을 것이라고 전했다. 2년 전 후다닥 선거관리규정을 개정했던 것처럼 이번에도 선거후유증을 염려한 정 회장의 정교한 '불씨제거' 작업이라고도 했다.
실제로 지난 선거전에서는 2012년 가을 정구정 회장이 감사들과 함께 미국으로 출장을 갔다온 것이 두고두고 뒷말을 남기며, 선거전 악재로 작용했었다. 여비지급 규정에는 상임이사회의 결의에 의해 지급토록 돼 있는데 당시 미국출장비용은 상임이사회의 결의를 무시하고 집행되었다는 것이 공격의 골자였다.
이같은 여비지급 규정의 개정 사실을 접한 세무사회 한 회원은 “회원들의 회비는 국민들이 국가에 납부하는 혈세와 다를 바 없는 만큼 신중하고, 또 투명하게 사용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상임이사회의 결의에 의해 집행되도록 하는 것이 맞는 것”이라면서 “이런 중차대한 규정이 별다른 토의 없이 개정되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특히 “예산집행은 총회에서 회원들이 승인을 한 사안이라고 할지라도 그 투명한 집행을 위해 상임이사회의 의결을 거치도록 한 것이고, 또 회장의 회무전횡을 막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라면서 “이번 개정은 회장이 상임이사회를 무시하고 예산을 맘대로 쓰겠다는 것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문제는 이날 관련 규정의 개정이 상임이사회 멤버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한 가운데 일사천리로 통과된 것으로 전해졌다.
실제로 현 집행부의 회무집행을 꼼꼼하게 감사하겠다고 선언했던 백정현 감사는 “첫 상임이사회에서 눈 깜짝할 사이에 개정되었다. 회장이 아무것도 아니라고 해서 이의를 달지 않았다. 솔직히 어떤 내용인지 몰랐다”고 고백했다. 백 감사는 이어 “한 참 지난 후에 그런 내용이 들어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면서 “자신의 불찰이 컸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앞으로는 회의 규정을 개정할 때에는 회원들의 의견을 듣는 절차를 거쳐 고칠 수 있도록 감시를 해 나가겠다”고 덧붙였다.
세무사회의 상임이사회 멤버는 회장이 직접 임명한 상임이사 외 서울, 중부세무사회장 등 각 지방회장들과 윤리위원장, 감사들도 포함돼 있다. 이들 모두 ‘눈 뜬 장님’이었는지, 아니면 모두가 ‘벙어리’가 되었는지, 이도 저도 아니면 여비지급 규정의 중요성을 모르는 것인지? 그렇다면 모두 ‘자격미달’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