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차 문재인 정부의 마지막 세법개정안이 나왔다. 내년 출범할 새 정부의 첫해 재정수입원이자 그 다음해 짤 예산의 기초이기에 너무나 중요하다.

구재이 한국납세자권리연구소장(세무사)
구재이 한국납세자권리연구소장(세무사)

보지도 않고 알았지만, 이번에도 뻔한 ‘마이너스 세법개정안’이다. 정부가 마련한 정책세제가 당연하듯 누적기준 마이너스세제로 돌아선지 벌써 3년째가 되어간다. 그런데 갈수록 그 규모가 대담하게 더 커진데다 이제 대놓고 ‘재벌프렌드리’ 대기업친화적 세제가 됐다.

처음부터 그런 건 아니었다. 촛불정부로서 문재인 정부는 공약과 국정과제에서 어느 정부보다 과세형평과 조세정의, 자산과 블로소득 과세 강화와 경제적 약자에 대한 포용적 조세지원을 통한 ‘소득재분배 세제’를 지향했다. 이런 문정부이기에 세법개정안이라면 응당 과세형평과 조세정의, 사회적 경제적 약자를 위한 포용적 조세개혁이 핵심이 되어야 한다.

정권이 출범하자 마자 호기롭게 법인세-소득세 최고세율을 인상했다. 그것뿐이었다. 경기활성화와 대외경쟁력을 이유로 내리 대기업과 고소득자에 대한 증세는 커녕 금융종합과세 확대는 포기하고 통합투자세액공제 등을 과감하게 도입하더니 이번에는 ‘국가전략기술’ 명분으로 재벌 대기업에 무려 30~40%에 달하는 세액공제까지 도입했다.

봉급생활자 수천만명이 몇푼씩 공제받는 소득-세액공제는 형평성을 이유로 악착같이 줄이려고 하면서 ‘듣보잡’ 신성장 원천기술을 명분으로 한 파격적인 감면제도는 다시 대상까지 더 확대해 못받던 나머지 대기업까지 받게 하고 지원효과는 따지지도 않고 다시 3년간 연장하겠단다.

이번 세법개정안이 통과되면 대기업 감세는 과거 ‘비지니스프렌드리’로 명명되었던 MB의 법인세율 인하와 20여년간 유지된 임투공제 수준에 버금가는 수준이 될 것이다. 재벌과 대기업에 대한 역대급 감세 선물에 반해 코로나19 팬데믹 속 하루하루 생존을 걱정하는 소상공인과 중소기업 생태계를 위해서는 변변한 지원책도 없어 눈물과 한숨을 깊게 한다. 문정부 세금정책,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처음부터 문 정부가 이랬던 건 아니다. 분명 그런 건 아니었다. 정권 인수위 격인 국정기획자문위원회 전문위원으로 참여해 직접 조세분야의 국정과제인 ‘과세형평 제고와 납세자 친화적 세정 구축’을 네이밍하고 설계해 과세형평 확보, 소상공인 중소기업 보호, 국민중심의 조세행정 등 문 정부 5년동안 달성할 조세개혁 세부내용을 만들고, 자신을 세법입법기관으로 믿는 기재부의 극렬한 반대에도 국정과제로 사회적 합의를 위한 조세개혁논의기구를 설치하게 했다.

하지만, 이명박-박근혜 정부 정신과 조직을 그대로 계승한 기재부는 문 정부에서 강했다. 어느때는 대통령보다도 말이다(결과적으로 김대중-노무현 대통령 때처럼 기획예산처와 재정경제부로 다시 분리했어야 하는데 촛불혁명 이후 대선으로 이미 출범한 신정부라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합쳐놓은 ‘공룡’ 기재부를 분리하지 못한 것은 문 정부에 가장 뼈아프다).

2017년 기재부 초대 김동연 장관과 관료들은 집값 폭등에 ‘재정개혁특위’를 빨리 출범시켜 보유세 인상을 논의하라는 국민의 요구에도 차일피일 미루다 거의 1년만인 다음해 4월에야 자기입맛대로 출범시키더니 마음껏 일개부처 내부위원회마냥 운용했다.

미래세대 조세재정 대안을 모색하기 위해 사회적 합의를 위해 대통령 공약과 국정과제로 대통령 직속기구로 까지 만든 재정개혁특위인데도 일개 정부부처에 불과한 기재부의 ‘황당한 갑질’은 차마 참기 어려웠다. 부동산 보유세를 비롯한 대부분의 개혁안인 위원회안에 자신들의 의견을 ‘소수의견’으로 달기는 예사고 이것으로 세법개정안을 만들었다.

그 결과 시장과 투기세력은 진보 정부의 조세정책을 ‘헛방’으로 만들었고 국민들의 비웃음을 샀다. 그리고 정권내내 이어진 집값 폭등과 부동산-세금정책은 이 정부의 가장 큰 부끄러움이 되고 말았다. 기재부의 비웃음 속에서도 몇몇은 치열하게 논리를 세우고 싸웠지만 청와대까지 기재부를 감싸는데는 더이상 싸우고 개혁할 동력을 상실했다.

지금 정부의 세법개정안은 기재부가 누구도 간섭없이 마음껏 만든 것이다. 기재부는 전국민 재난지원금 등 확장재정을 요구하면 앵무새처럼 재정건전성을 이야기하면서도 한번도 곳간을 채울 세입확충방안은 고민해보지 않는다. 세법에 따라 매년 수립해 국회에 제출해야 하는 ‘중장기 조세정책계획’은 이번 세법개정안을 낼 때까지 아예 확정도 안했고, 금과옥조(金科玉條)여야 할 재정개혁특위 권고안은 아예 쳐다보지도 않았다.

정부가 발표한 세법개정안은 입법예고기간을 거쳐 9월초 정부안으로 국회에 제출된다. 이제 재벌 대기업만이 아닌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 시간이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직격탄을 맞은 소상공인 중소기업 지원을 대폭 보강하고 균형감을 상실한 재벌 대기업 감면은 지난 3년간 감면효과를 분석하여 감면율의 대폭인하, 감면한도도입, 최저한세 적용 등 보완해야 한다. 아울러 문 정부가 약속한 자산소득과 불로소득 과세방안을 하나하나 점검해 입법해야 한다.

문 정부가 재정개혁특위까지 만들며 그토록 염원하던 조세개혁은 근본적 조세개혁에 근접도 못한 ‘미완의 개혁’, 형평과세와 조세정의 색깔도 못낸채 ‘용두사미’로 끝날 듯하다. 호기롭던 소득재분배 세제가 용두사미가 된 조세개혁은 참으로 안타깝지만, 결코 무의미한 건만은 아니다. 분명 곧 출범할 차기 정부에게 이번 문 정부의 ‘조세개혁미수사건’은 적지않은 교훈과 영향을 줄 것이다.

다음에도 실패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기본소득과 보편적 복지를 하겠다는 차기정부가 필요로 하는 복지재정을 추진동력으로 새 조세개혁과 재정정책의 아젠다와 로드맵을 세워야 한다.

그들이 꼭 필요하다고 하거나 관행이라고 하거나 그렇게 하면 정권이 위험하고 큰 일난다고 하는 대부분은 반대로 뒤집어야 바로 보인다. 경제정책을 담당하는 부처가 세제입법까지 하다보니 경제정책에 아무런 효과 없는 비과세 감면 등 조세정책을 남발한다. 조세지원을 받기 위해 거액의 투자-R&D-고용 등 상관관계도 없이 사중손실이 되어버리는 비과세감면 만능주의 관행과 틀을 버려야 한다.

무엇보다 개혁과제를 이루려면 범접할 수 없는 권력인 ‘실질적 조세입법기관’인 기재부의 조직 개혁과 인적 쇄신이 핵심이다. ‘노브레이크’ 기재부에 견제와 균형이 가능한 조직과 사람들로 쇄신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 검찰과 감사원, 기재부 수장들의 퇴임후 행보를 보며, 그리고 정권말 기재부의 ‘야심작’ 오직 재벌 대기업만을 위한 세법개정안을 보면서 한가지 분명해진 것이 있다.

국민을 위해 일한다고 하면서 자기와 조직을 위해 일하는 자들과의 진정한 결별이 진정한 개혁에 얼마나 중요한지, 얼마나 필수요소인지 말이다. 이를 그르치지 않으면 그 이후 국민과 함께하는 제도개혁은 오히려 쉽다. 실망하긴 이르다. 신발 끈을 고쳐매고 다시 시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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