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정협의회가 쏘아올린 작은 공…“청장님 폐지발언 예상못했다”
`01년 이후 입사자 개업가능성 줄어…말 잘 듣는 후배 사라지나
1급도 ‘용퇴’ 전통 안 지켜…2년 먼저 용퇴 문화도 사라질 전망
세정협의회에 속한 기업체가 퇴직하는 세무서장이나 해당 세무서의 법인세 과장에게 고문료나 기장을 주기로 약속하는 것은 수십년간 이어져온 일종의 ‘관행’이었다. 국세청에서는 세정을 홍보하고 현장의 목소리를 듣는 소통창구로 역할을 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인터넷과 SNS가 활발하고 이제는 뉴스도 실시간으로 받아보는 세상에서 굳이 오프라인을 통해 관내 기업인들을 모아두고 국세행정을 읊는다는 것은 말그대로 구시대적인 세정홍보라는 지적이 많았다.
또한 퇴직후 받는 고문료가 사후수뢰에 해당한다는 의혹에 휩싸이며 국세행정에 대한 불신을 키워나갈 바에는 이를 폐지하고 투명한 소통채널을 만드는 것이 더 나은 방향이라는 고언도 많았다. 그러나 국세청 내부에서는 세정협의회에 대해 ‘건전한 소통창구’라는 입장을 일관되게 유지해왔다.
국세청 관계자는 “왜 국세청만 가지고 그러느냐”며 “국세청에 세정협의회가 있지만, 이는 경찰서에도, 소방서에도, 지역에 있는 모든 곳에 이들 모임은 존재한다. 세무서만 없앨 거면 다른 곳도 없애야 하는 것이 맞는 것 아니냐”면서 거침없이 속내를 드러냈다.
그러면서 “세정협의회 회원들이 세정협의회 뿐 아니라 여러 기관의 외부위원으로 겸직하는 경우가 많아 나름대로 지역에서는 영향력 있는 인물들이기 때문에 이들을 통해 세정을 홍보하면 이들의 발언력이 커서 그 효과도 크다”며 소통창구로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정치권에서는 국세청의 세정협의회 활동을 ‘적폐’로 보고 있다. 국정감사장에서 세정협의회를 폐지하라고 목소리를 높였고 이에 김대지 국세청장은 결국 “폐지하는 방향으로 처리하겠다”고 답했다.
국세청 내부 직원들의 반응은 ‘아쉽다’였다. 국세청 관계자는 “청장님이 세정협의회를 더 나은 조직으로 발전시키겠다고 강단있게 말씀하실 줄 알았는데, 폐지한다고 약속하실 줄은 몰랐다”는 반응을 보였다.
물론 국세청 내부에서는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지만, 세정협의회의 고문직 알선 문제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결국 고문료를 받는 것은 퇴임한 세무서장이기 때문에 국세청 내부에서도 건들 수 없다는 것이 공식 입장이었다.
이전 서울 강남의 클럽인 아레나 문제가 터졌을 때도, 아레나의 세무대리를 맡은 것이 전직 강남세무서장이었고 세무조사 착수 당시 금품을 전달했다는 세무조사 로비 의혹까지 터져나오면서 공직퇴임 세무사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에 불을 지폈다.
그렇다면 앞으로 이와 같은 전관예우 문제가 발생하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가장 먼저 처리해야 할 것은 세무사법 개정안이다. 현재 5급 이상 공직 퇴임 세무사를 퇴직 전 1년간 근무한 기관과 관련있는 세무대리를 맡을 수 없도록 하는 전관예우 방지법(세무사법 개정안)이 국회 법사위에 계류 중이다. 변호사의 세무대리 업무허용 범위를 골자로 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어 현재까지 국회 통과가 어려운 상황이지만 입법공백이 계속된다는 점에서 결국 개정안이 통과된다면 공직퇴임 세무사에 대한 전관예우가 줄어들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두 번째로는 2001년 이후 입사한 국세공무원들에게 ‘세무사 자동자격 부여’가 안 된다는 점도 전관예우가 줄어들 수 있는 가능성을 높게 만든다. 2000년 12월 31일 이전에 임용된 세무공무원의 경우 국세행정 종사경력이 10년 이상이고 일반직 5급 이상 공무원으로 5년 이상 재직한 자는 시험 없이 세무사 자격을 취득할 수 있으므로 명퇴 후 개업만 하면 됐다.
그러나 2001년 이후 입사자들이 점차 늘어나면서, 세무사 자격증을 취득해야만 세무대리인으로 활동할 수 있어 국세공무원 퇴직후 필수코스로 여겨졌던 세무사개업을 하지 않는 이들도 점차 늘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된다면 정년까지 버티는 직원들도 늘어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세무공무원을 그만두면 세무사라는 밥벌이 수단이 있는 선배들과는 달리 세무사 자격증을 취득하지 않는다면 굳이 2년 먼저 명퇴하는 용퇴문화를 지킬 이유가 없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가깝게는 현재 1급으로 승진한 고위직도 ‘1급 1년 후 용퇴’라는 전통을 지키지 않고 있다. 고위직도 그럴진데, 세무사 자격증이 나오지 않을 국세공무원들이 굳이 2년 일찍 용퇴를 해 후배들의 승진기회를 열어줄 것이냐는 것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분위기다.
이와 맞물려 시대적인 변화, 세대차이와 같은 요소도 전관예우를 사라지게 만드는 요인으로 꼽히고 있다.
현재 국세청 내부에서도 세대차이, 문화차이와 같은 기성세대와 신세대간의 갈등을 겪고 있다. 특히 상명하복과 같은 권위적이고 폐쇄적인 국세청 조직문화가 조금씩 시대 변화에 따라 개인주의, 워라밸 중시로 변화하면서 ‘선배’들의 부탁에 말 잘듣는 ‘후배’가 점차 사라진다는 것도 이런 전망쪽으로 무게추가 기울어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