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당하면서 인수위도 없이 취임한 문재인 정부의 첫 국세청장은 한승희 서울국세청장이 임명됐다. 뒤에 세정가는 인수위가 제대로 꾸려졌더라면 결과는 달라졌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다.
문재인 정부 출범 당시 국세청장 지명을 앞두고 정치권과 세정가에서는 김봉래 차장(경남 사천)이 차기 국세청장의 바통을 이을 것이란 전망이 있었다. 국세청장 자리는 대부분 대통령과의 동향 출신이 많이 배출된 선례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는 국세청 2인자를 비롯해 요직인 서울국세청 조사1국장을 지내는 등 전 정권에서 국세청을 쥐락펴락했다는 점에서 발탁되지 못했다. 세간에서는 ‘그가 직접 고사했다’는 말이 돌기도 했다.
그리고 한승희 씨가 청장직에 올랐다. 2인자는 문재인 대통령과 대학 동문이기도 한 서대원 차장(충남 공주, 행시 34회)이었다. 세정가는 서 차장이 국세행정개혁TF 부단장을 맡으면서 자연스럽게 다음 청장직을 예약했다는 말이 돌았다. 그러나 문 정권에서 조사국장과 서울국세청장으로 승승장구해온 김현준 씨(현 LH사장)가 임명됐다.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실(조국)과 국세청 조사국간 직통라인의 힘과 한 청장이 자신의 고향과 대학 후배인 김현준 씨를 위한 인사를 했다는 분석이 나왔었다.
한승희 청장이 취임한 후 1년여만에 서대원 차장이 물러나고, 이은항 차장(66년생, 행시 35회)이 그 자리에 임명되었고, 당시 조사국장이던 김현준 씨는 서울국세청장으로 발탁되면서 국세청은 인재들이 우수수 떨어져 나가는 ‘인재참사’ 수준의 일들이 이어졌다.
행정고시 순으로 따지면 한승희 전 청장은 33회였고, 서대원 전 차장은 34회, 이은항 전 차장과 김현준 전 청장은 35회였다. 큰 문제는 나이였다. 한승희 청장 후임으로 오르내리던 서대원 전 차장은 62년생이었던 반면, 김현준 전 청장은 겨우 68년생이었다. 국세청장 임명장을 주던 문재인 대통령조차도 가장 젊은 차관급이라고 말했을 정도였다.
세정가는 한승희 청장 후임에는 서대원 전 차장이 떼논당상이라는 말들이 돌았으나 서 차장은 1년여가 되면서 정리됐다. 그의 퇴진은 지방청장까지 지낸 인물이라는 허위보고에 의한 것이라는 말도 나왔었다. 실제로 서 전 차장은 지방청장을 지낸 적이 없다. 얼마나 마음이 상했으면 서 전 차장은 퇴임식도 치르지 않고 조용히 떠나려고 했으나, 주위의 만류로 조촐한 퇴임식을 치르고 후배들에게 국세청을 넘겼다.
그러자 국세청은 급격하게 젊어졌다. 국세청은 한승희 청장(61년, 행33), 이은항 차장(66년, 행35), 김현준 서울청장(68년, 행35), 유재철 중부청장(66년, 행36), 김대지 부산청장(66년, 행36), 이동신 대전청장(67년, 행36) 등으로 재편됐다. 그리고 1년 뒤 조사국장과 서울청장을 맡아온 김현준 씨가 문재인 정부 두 번째 국세청장직에 올랐고, 국세청의 영파워는 더 심해졌다.
김현준 씨가 청장에 오르면서 행정고시 동기인 이은항 차장은 자연스럽게 명퇴했고, 국세청 라인업은 행시 1년 후배인 김대지 차장이 임명됐으며, 호남 출신으로 새역사를 쓰며 김명준(68년, 행37)씨가 서울청장으로 올랐고, 중부청장에 유재철(66년, 행36), 인천청장 최정욱(65년, 행36), 대전청장 한재연(66년, 행37), 광주청장 박석현(66년, 행38), 대구청장 권순박(63년, 세대1), 부산청장 이동신(67년, 행36)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1급 1년 용퇴 룰에 따라 행시36회가 옷을 벗고 행시37회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유재철 중부청장의 명퇴로 후임에 이준오 중부청장(67년, 행37)이, 최정욱 초대 인천청장의 명퇴로 후임에 구진열 인천청장(69년, 행37)이 바통을 이었다. 대구청의 경우 세대출신의 권순박 청장의 명퇴로 세대3기의 최시헌 청장이 임명됐다.
특히 호남 출신의 이준오 중부청장의 경우 조사국장으로 임명된지 반년도 채우지 않고 곧바로 1급으로 승진하기도 했다. 이 청장은 조사국장을 더 하고 싶었는데 특정인 때문에 밀려서 1급으로 빨리 승진한 것 같다는 뒷말이 나왔다.
국세청장의 경우 별다른 사안이 없다면 2년간의 임기를 맡는 것이 관행이었으나, 김현준 국세청장은 1년 만에 갑작스럽게 교체된다는 설에 휩쓸렸다. 그리고 현실화됐다. 청와대는 김대지, 김명준, 이준오, 이동신 청장을 차기 청장 후보로 두고 검증에 돌입했고 최종적으로 김대지-김명준 구도로 압축됐다. 호남 출신의 국세청장이 배출될 수 있다는 기대감, 그리고 엘리트코스를 밟은 조사통이라는 점에서 김명준 서울청장이 유력한 후보로 꼽혔지만, 당시 LH의 부동산 문제, 다주택자에 대한 징벌적 성격에서 ‘무주택자’로 청렴한 이미지를 보여준 김대지 차장이 최종 국세청장 후보로 낙점됐다. 김대지 청장의 경우 노무현 정부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청와대에서 근무한 이력도 갖고 있었다.
67년생인 김대지 청장이 임명되면서 국세청은 타부처(세제실)보다 빠른 행시 라인업 속도가 계속됐다. 청장 후보로 경합을 벌인 김명준 서울청장이 국세청을 떠났고, 그 자리는 승승장구하던 임광현 청장(69년, 행38)이 차지했다. 임광현 청장은 고공단 승진 후 중부청 조사4국장, 서울청 조사2국장, 서울청 조사4국장, 서울청 조사1국장, 국세청 조사국장까지 무려 6번의 조사국장을 역임하는 기록을 세운 인물로 고공단 가급으로 승진하고서도 1급 1년 용퇴 룰을 벗어나 국세청 2인자인 차장까지 올라섰다. 특히 충남 홍성 출신으로 지역색이 강하지 않아 차기 정부의 유력한 청장 후보로 거론되는 인물이다.
1급 1년 용퇴 룰을 벗어난 것은 임광현 차장 뿐만은 아니다. 문 대통령과 같은 경남고 동문이자 PK출신인 임성빈 부산청장(65년, 행37)은 서울청장으로 이동했고, 김창기 중부청장(67년, 행37)은 부산청장으로 이동하며 고공단 가급의 재임 기간이 길어졌다. 현재 부산청장은 조사국장을 지낸 노정석 청장(69년, 행38)이다.
현 중부청장에는 비고시출신으로 초고속 승진을 해낸 김재철 중부청장(64년, 세대4)이다. 국세청 대변인에서 부이사관으로 승진하고 서울청 조사3국장에 전격 발탁되었으며, 이후 문재인 정부에서 부동산 조사라는 실적을 올리면서 1급자리인 중부청장 자리까지 꿰찼다. 김재철 중부청장에 이어 현재 비고시 지방청장으로는 이현규 인천청장(64년, 세대2), 이판식 광주청장(65년, 세대4)이 있다.
이외에는 강민수 대전청장(68년, 행37)과 김태호 대구청장(68년, 행38)이 있다. 특히 강민수 청장의 경우 PK출신으로 문재인 정부에서 홀대 받은 인물로 유명하다. 본청 국장을 5번이나 지내고도 1급 승진 후보에서 번번히 밀리는 쓴잔을 연거푸 마셔야했다. 그러나 5년만에 정권이 바뀌면서 그간 기를 펴지 못했던 강민수 청장도 새 정부에서 빛을 볼 수 있을 것인지 세정가는 주목하고 있다.
이와 함께 TK출신인 정철우 교육원장(66년, 행37)도 문재인 정부에서 강민수 청장과 함께 기를 펴지 못한 인물로 꼽힌다. 그가 TK출신이라는 점도 한몫했지만, 하드 워커(hard worker)로 성격상 일에 대충이 없는 빡센 관리자로도 유명해 직원들이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 등이 작용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임환수 전 국세청장은 정철우 원장의 이같은 점을 높이 샀다는 후문이다. 일로 승부를 거는 것으로 유명한 정 원장의 거취도 새 정부에서 어떻게 조명될지 주목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