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이 윤석열 당선인 인수위 업무보고에서 필요 시 법 개정을 통해 과세정보 공유를 더욱 넓히겠다고 밝히면서 새 정부에서는 국세청의 과세정보의 문이 어디까지 열리게 될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국세청을 향해 ‘과세정보’ 범위를 확대하라는 주문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국세기본법 제81조의13’에 따르면 납세자 정보보호를 위해 세무공무원의 과세정보 비밀 유지 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다만 9가지의 예외적인 경우에 한해 그 사용 목적에 맞는 범위에서 과세정보를 외부기관에 제공할 수 있다. 비밀유지 조항은 1996년 신설됐고 예외 사유는 5가지에서 법이 개정됨에 따라 9가지로 늘어났다.
이처럼 국세청 대부분의 자료가 베일에 가려진 채로 누구도 확인할 수 없고, 감시조차 받지 않게 되면서 폐쇄적인 측면에 대한 비판이 지속되었고, ‘과세정보’를 공개해야 한다는 주문 또한 계속돼 왔다.
지난해에는 곽상도 전 의원의 아들이 화천대유 대주주 김씨로부터 성과급 등 명목으로 50억원을 받은 혐의(뇌물)로 현재 재판을 받게 됐는데, 이는 한 시민단체의 고발에 따라 세상에 사건이 드러나면서 국세청의 과세정보 공개범위 확대에 더욱 불을 지폈다.
국세청의 정보공개 불허는 이 뿐이 아니다. 명단도 비공개다. 국세행정개혁위원회와 같은 공개가 가능한 위원의 명단은 공개되고 있지만, 이외에 주요 국세행정에 관여하는 민간인들도 신분은 절대 드러내지 않게 했다.
변호사, 회계사, 세무사, 교수 등 다양한 세무전문가들이 국세청의 각종 위원회에 참여하면서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이들의 명단은 사생활 침해, 로비, 부당한 압력이 들어올 수 있다는 이유로 철저히 비공개되고 있다.
그러나 최근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곽 전 의원 사건뿐만 아니라 이재명 민주당 상임고문의 대장동 의혹, 조국 전 장관의 증여세 회피 의혹 등 각종 정치권을 뒤흔드는 사건 사고가 잇따르면서 그 어느 때보다도 정치권의 ‘정보공개’요구는 거세게 일고 있다. 이와 함께 국민들 역시 ‘투명하고 공정한 사회’에 대한 열망이 높아지고 있다.
이에 따라 국세청이 새 정부 인수위에 과세정보 공유를 더욱 넓히겠다고 약속하면서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물론 개별납세자의 과세정보를 공개하는 것이 아닌 부처간 협업 등 새 정부 경제정책을 뒷받침하는 데에 쓰이는 것으로 국한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그동안 엄격하게 지켜져왔던 ‘비밀주의 엄수’의 문이 조금씩 열리게 되는 계기가 될 것이란 기대다.
그간 국세청은 과세정보 확대 요구에 ‘비밀유지 엄수를 위해 절대 불가능하다’거나, 이미 부처간 정보공유가 필요한 경우에는 법을 개정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법개정이 필요치 않다’는 입장을 보여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세청에 과세정보 공개범위를 확대하라고 목소리를 높인 이들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 “세무조사 결과를 공개하라”…“70년대는 재벌기업 과세정보도 공개했었다”
김두관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세무조사 결과를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사생활 보호라는 명분 아래 탈세, 불법, 사익추구를 보호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김 의원은 “우리나라는 과세정보 중 법률 위반에 대한 내용도 일절 공개하지 않고 있고, 고액상습체납자에 대한 공개를 규정하고 있지만 전혀 실효성이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개인의 권리를 철저히 보장하는 미국도 필요한 경우에 한해 비식별조치로 납세정보를 제공하고 있고, 필란드는 세무서를 방문하면 열람할 수 있고, 스웨덴은 전화로도 확인할 수 있으며, 노르웨이는 인터넷에 소득규모를 공개하고 있다”며 “최소한 과거 일본처럼 납세자 중 최고소득계층의 과세정보 등을 공개하는 것이 맞다”고 주장했다.
양향자 의원도 국가적·사회적으로 중요한 사건의 경우 관련자의 과세정보를 공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양 의원은 “현행법상 재산을 은닉하고 호화생활을 누리는 악의적 체납자들의 과세정보가 국민들에게 공개되지 않고 있다”며 “악의적인 체납자였던 전두환 씨처럼 공공의 이익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고 판단되는 과세정보의 경우에는 국민의 알권리 보장 차원에서 공개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고액체납자 명단공개도 비밀유지조항으로 인해 공개되지 않던 자료였다.
악의적 체납자와 비슷한 경우로, 범죄혐의가 인정되는 자에 대해서도 과세정보 비밀유지 대상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김정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의료법’ 제23조의3에서 금지한 리베이트성 경비를 적발한 경우에도 보건복지부나 수사기관에 과세정보를 적극적으로 제공할 수 없어 의료행위 리베이트 관행 근절을 위한 전방위적인 대응이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국세청이 다른 법률을 위반한 범죄혐의가 있다고 인정되어 수사기관이나 관련 국가기관에 과세정보를 제공하는 경우를 비밀유지의무의 예외로 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승희 전 민주당 의원도 “비밀주의는 개인정보보호법에 의해 충분히 보호되고 있고, 70년대는 재벌 대기업의 과세정보를 국민에게 모두 공개했다는 점도 상기시켜달라”며 정보공개에 찬성표를 던졌었다. 이에 대해 국세청은 OECD 가입을 계기로 회원국이 납세자 비밀보호 실태 문제점을 지적함에 따라 96년도에 도입한 제도로, 세무공개 결과가 공개된 것은 결코 더 선진적인 것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김광림 전 자유한국당 의원은 “그동안 국세청은 자료를 요구하면 개별과세 정보라며 답변의 80%는 대답을 하지 않는데 이같은 자세는 바뀌어야 한다”면서 “기본적으로는 정보제공 쪽으로 하되, 개인정보가 유출되는 것은 막아야 하므로 그룹핑 등 제공자체를 막지 않는 선에서 할 수 있는 방안이 무엇인지 대안이 필요하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한편 국세청은 과세정보 확장하라는 요구에 문재인 정부에서 국세통계센터를 출범시키면서 “그간 국세청은 납세자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과세 목적 이외의 정보 활용은 엄격히 제한했으나, 국세정보에 대한 공익목적 수요의 증가와 4차 산업혁명 시대로의 전환 등에 적극 부응하기 위해 국세통계센터를 출범하게 된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간의 ‘과세정보 보호’ 중심 체계에서 벗어나 ‘개방과 공유’의 가치를 중시하는 수요자 중심의 국세정보 관리 패러다임으로 전환했다는 것이다. 법령상 ‘과세정보 비밀유지 의무’와 국세정보 공개를 통한 ‘국민의 알권리’를 조화시킴으로써 납세자의 개인정보와 영업비밀 등은 안전하게 보호하면서 공익 목적의 정보 활용을 적극 지원할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내달 출범하는 윤석열 정부가 지향점으로 삼고 있는 공정과 정의를 위한 밑바탕이 될 수 있는 과세정보의 공개, 어디까지 그 문이 열리게 될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