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은 한 지방세무사의 정기총회 장면.
이번 정기국회에 상정된 세법개정안중 조세업계를 달구는 것 중 하나는 ‘전자신고세액공제제도’의 폐지다.
이 제도의 수혜를 입는 쪽은 세무사들과 납세자들이다. 모두 합해 연간 600억원 가량이라고 한다. 세무사들에게 순수하게 돌아가는 것은 450억원 정도로 추계되고 있다. 세수부족에 허덕이는 정부로서는 한 푼이 아쉬운 판에 이런 호재를 놓칠리 없다.
세무사들은 전자신고세액공제가 폐지되면 세금신고를 전자로 하지않고 과거처럼 수동으로 제출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아보지만 ‘맘대로 하시오’라는 게 정부의 입장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세무사들은 또 노동에 대한 최소한의 댓가라면서 반대를 하고 있지만 정부는 요지부동이라고 한다. 이런 돌부처 정부를 움직이는 데는 한계에 부닥쳤다고 판단했는지 지금 세무사회는 국회를 상대로 조심스럽게 물밑 설득작업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렇다면 이 제도가 폐지되면 과연 세무사들은 전자가 아닌 신고서류를 수동으로 제출할까? 아마도 서슬퍼런 국세청이 무서워 그렇지 못할 것이라는 쪽이 많다. 세무사들은 여러면에서 국세청의 눈치를 봐야하는 직업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고 도입할 때는 언제고, 이제와서 ‘토사구팽’도 유분수지 세무사들이 한창 어려울 때 제도를 폐지하겠다는 것도 솔직히 너무한 처사라는 지적이 많다.
450억원, 세무사 1인당 연간 400만원, 작은 금액이 아니지만 수입이 괜찮은 세무사들에겐 결코 큰 금액이라고도 할 수 없다. 그럼에도 세무사들이 이 제도의 폐지를 강하게 반대하는 것은 분명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무엇일까?
세정일보가 세무사들의 속마음을 들여다봤다.
국세행정이 전산화되지 않았던 1990년대 초반까지 납세자들의 세금신고는 세무서 방문신고가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2000년대 초 우편신고가 실시되기도 했으나, 큰 호응을 얻지 못했다. 그러다가 본격적인 전자신고는 2002년경 도입되었다.
국세행정의 전산화는 1997년 국세통합시스템(TIS)을 구축하고, 일선세무서에 본격적으로 PC를 보급하면서 사실상 본격화 되었다. 그러나 초창기 세금신고는 대부분 방문이나 우편신고가 주를 이루었다. 이에 따라 신고서 내용을 전산화하기 위해서는 국세청 직원들은 모든 신고서를 직접 입력해야 했다.
국세청 전산실이 1990년대 초 구축된 이후 2002년 전자신고제도가 본격 도입되기까지 무려 26년 동안은 모든 신고서와 세금계산서 그리고 연말정산 등 소득자료의 입력은 국세청 직원들의 몫이었다. 국세청 전산실은 한때 1000여명이 넘는 입력요원이 업무를 맡았던 적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다면 지금의 국세청 업무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국세청 전산실의 입력조직은 아주 적은 인원으로 슬림화된지 오래다. 또한 일선 세무서에도 신고서를 입력하는 일은 전혀 찾아 볼 수 없다. 심지어 당초신고가 잘못되었다고 수정신고하는 부분까지도 국세청 직원들이 입력하는 일은 없다.
물론 일부 전자신고가 까다로운 양도소득세나 상속.증여세는 아직까지 우편신고가 많은 편이어서 직접 입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2002년 전자신고 도입이전 입력업무의 1%도 채 되지 않는다는 게 과거 국세청에 근무했던 세무사들의 이야기다.
전자신고가 도입되고 국세청 직원들은 입력이 필요 없어진 만큼 그 업무를 세무조사와 세원관리업무에 매진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전자신고 도입전에는 수백만 근로자들의 연말정산자료가 제때에 입력되지 않아 5월 종합소득신고에 제대로 반영이 어려워 ‘합산표’라는 게 생기게 되었고, 9월 이후에 소득세과 직원들은 합산표 처리에 날밤을 지새워야 했다는 것은 과거에 국세청에 근무했던 사람들은 추억으로 남아있다.
이 모든 것을 국세청은 세무사들에게 넘겼다.
1개 업체의 부가가치세 신고서를 한번 작성해서 제출하는데 10여장을 입력해야하는 경우도 많다. 소득세신고서를 첨부하는 서식, 수 십장에 이르는 법인세 신고서 서식, 수 천.수 만장에 이르는 세금계산서와 계산서 그리고 근로자의 연말정산 자료 등등. 이 모든 것이 전국의 1만여 세무사와 세무사사무소 종사직원 5만여 명의 손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표현하면 국세청은 세무사와 세무사사무소 직원 등 6만 명을 월급 한 푼도 주지 않고 고용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게 세무사들의 솔직한 인식이다.
이 뿐이 아니다.
과거 각종 신고서나 세금계산서 연말정산자료들을 문서로 받을 때는 오류가 많아 불부합을 잡는 일이 일선 세무서 세원관리과 업무의 2/3를 차지했다.
하지만 지금의 전자신고는 아예 국세청에 전송단계에서부터 신고서에 오류가 있으면 전송이 되지 않는다. 국세청은 정말 ‘손 안대고 코푸는 격’이다.
전자신고제도가 단순한 납세협력업무에 불과하다는 국세청의 시각에 대해 세무사들은 외부조정업체의 경우 회사에서 작성한 재무제표를 넘겨받아 표준재무제표로 작성해야 함은 물론 매출액 30억원 이상인 경우에는 추가로 서면신고서 1부를, 매출액 300억원 이상은 2부를 추가로 제출하는 등 단순한 납세협력 업무를 넘어서는 결코 적지않은 추가업무를 하고 있다고 하소연한다.
지금 세무사들은 세무사사무소 5만명의 급여를 연봉으로 2000만원씩 계산하면 1조원에 달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정부가 세무사들에게 베푸는 시혜라고 생각하는 전자신고세액공제액 중 세무사들의 몫은 겨우 450억 원 정도. 1조 원 어치 일을 해주는 댓가로 겨우 4.5%인 450억 원을 주는 현실까지 부정하고 이제 그것마저 폐지하겠다고 한다는데 세무사들은 아쉬움과 원망을 감추지 않고 있다.
또 세무사들은 “이런 심정은 몰라주더라도 국세행정의 동반자라고 해온 세무사들이 제도 폐지에 대한 대비책을 마련할 기회도 주지 않고 일방 통보식으로 추진되는 것에 대한 서운함에 정신적 충격마저 크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 정도면 하얀 머리띠 두르고 정부와 국회 앞에서 목소리를 높일 사안일 것 같은데도 세무사들은 과격함 보다는 애써 신사적으로 대응하는 모습이다. 그러면서 ‘전자신고세액공제 폐지가 불가피하다면 당장의 전면 폐지보다 단계별 폐지 수순을 밟았으면 한다’는 소망을 간곡히 전하고 있을 뿐이다.
27일부터 관련 세법 개정안을 논의하는 국회 기획재정위 회의가 차례로 열린다. 이같은 세무사들의 바람이 어떤 결과로 나타날지 연말 세무사들의 시선은 국회로 향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