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장 인사청문회는 공직후보자의 선서와 모두발언을 듣고난 뒤 시작된다. 사실 그대로를 말한다고 선서하면서 국세청장으로 임명된다면 어떻게 국세행정을 운영해나갈 것인지 밝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역대 국세청장들은 국민 앞에 어떤 것을 맹세했을까.
그들이 지난 20년간 국세청장직을 걸고 국민과 약속한 것은 ‘공정한 과세’, ‘투명한 세정운영’이었다. 공정하게 과세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것인데, 이것을 꼭 전면에 내세워 약속하는 것이 그동안의 국세청의 아이러니 중 한 가지다. 물론 과거 이주성 청장은 인사청문 자리에서 “제한된 국세 인력을 감안할 때 사람에 의한 세원관리로는 공평과세에 한계가 있다”고 솔직하게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현 김대지 국세청장은 인사청문회 모두발언에서 ‘공평과세’를 입에 담지 않았다. 그동안 역사 속에서 국세청은 ‘법과 원칙에 따라 공정하고 투명하게 과세하겠다’고 약속했던 것과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이는 인사청문회가 실시된 지난 20년, 혹은 국세청 역사가 시작된 66년도 이후 반백년 역사 속에서 처음으로 ‘공평과 공정’은 ‘말하지 않아도 당연히 지켜져야 할 것’이라는 인식을 깔고 있었다.
역대 국세청장 후보자들이 공통적으로 내세운 약속은 △공정·공평과세 △세무조사 투명화 △공정한 인사였다. 그리고 2009년 이명박 정부 들어 백용호 청장이 오고 난 후부터는 여기에 △세입예산의 차질없는 조달 △납세자 권익보호 내용이 추가되기 시작했다.
임환수 청장은 △능력과 평판에 따른 탕평인사를, 한승희 청장은 △복지세정 확대, 김현준 청장은 △국세행정시스템 개혁 등을 추가로 약속했다.
김대지 청장의 모두발언에는 납세서비스의 디지털화, 코로나19 위기극복 뒷받침, 불공정 탈세와 체납 엄정대응, 적극행정 공직문화의 정착 등 그동안의 지난 청장들의 모두발언과는 비슷하지만 조금 다른 결을 보여주었다.
◆ “세금이 바로 서야 나라가 바로 선다”
이들의 각오는 지켜졌을까. 첫 청문회 대상이었던 이용섭 청장은 청문회에서 “세금이 바로 서야 나라가 바로 선다는 신념으로 법과 원칙에 따라 공정하고 투명하게 과세해 국민의 사랑을 받고 기업의 신뢰를 받는 국세청으로 다시 태어나도록 하겠다”고 장담했다.
그는 국세행정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국민신뢰’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권력기관의 이미지를 불식시키면서 봉사하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대민행정기관으로 거듭나도록 세정개혁을 적극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국세행정이 자의적으로 집행되거나 과세 이외의 다른 목적에 이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저의 확고한 소신”이라고 말하며 세무조사 과정을 공정하고 투명하게 실시하겠다고도 약속했다.
이주성 청장은 청문회에서 30년간 국세청 공무원의 경험을 살려 각종 개선책을 제시했다. 전자세정의 정착으로 납세서비스 편의의 확대, 납보관의 독립성 강화, 공평과세를 위한 과세자료 인프라 확대, 세무조사 합리적 운영, 조사실적 평가 계산, 부실과세의 책임화, 외부인이 참여하는 세정협의기구 구성, 전문직원 양성 등을 제시한 바 있다.
전군표 청장은 청문회에서 그간의 약력을 설명하며 “다양하고 소중한 경험을 통해서 따뜻한 마음과 냉철한 머리로 조세정의를 구현하는 국세공무원이 되어야겠다는 신념과 공직관을 정립하게 되었다”고 말하면서, 특히 세무조사 건수를 줄이고 조사 투명성을 높여나가는 등 세무조사의 혁신을 약속한 바 있다. 이외에도 시민감시시스템, 국세통계전담조직 신설 등 다양한 대책도 내놓았다.
다만, 이렇게 청문회가 공직자 개인의 도덕성과 책임성을 검증하는 자리임에도 불구하고 곧바로 국세청장들의 ‘흑역사’가 쓰여지면서 국민들의 실망감을 부풀려놓기 시작했다. 전군표 청장이 CJ에 대한 세무조사 무마 등으로 유죄판결을 받았고, 이전 이주성 청장 역시 국세청장으로 재임하며 청탁과 뇌물수수 등으로 징역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한상률 청장은 청문회에서 조사 청탁, 인사 청탁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근원적 쇄신방안을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청장으로 임명된다면 국민께 보고드리고 즉시 시행하겠다”면서도 “그러나 중요한 것은 거창한 계획이 아니라 구체적 실천이 중요하다”고 국민 앞에 행동으로 보여줄 것을 약속했다. 그가 모두발언에서 내놓은 계획 들은 권위적 리더십에서 섬김형 리더십으로, 고객만족센터로 확대, 과세품질 개선을 위한 6시그마운동, 납세서비스 종합 개선, 공정한 업무성과 평가에 기초한 경쟁문화 정착, 승진 적체 해소+글로벌 인재 육성을 위한 이원적 인사관리체제 구축 등 구체적이고도 다양한 계획을 내놓았다.
특히 문제가 됐던 인사에 대해서는 고공단 업무실적을 평가하고 점수화해 보직을 스스로 선택하는 우선권을 부여하고, 조사에 대해서는 세무조사 투명성을 높이고 책임성을 강화해 신뢰도를 높이며, 감찰은 청렴도지수 목표관리제를 도입하는 안을 발표했다. 그러나 그는 역사 속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을 죽음으로 몬 단초가 되었다는 지적을 받는 조사이자, 정치적 세무조사로 결론난 태광실업 세무조사를 진두지휘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국세청이 정치적으로 너무나도 외풍에 시달렸던 시기다.
◆ “국세행정, 법과 원칙에 따라 운영하겠다”
백용호 청장은 청문회에서 ‘국세청 본연의 역할에 충실할 것’을 약속했다. 전임 청장들의 연속되는 불명예 퇴진에 따라 국세청 외부인으로 임명됐는데, 그는 “‘소득 있는 곳에 세금 있다’는 기본원칙을 모든 국민에게 공평하게 적용하고 세정의 일관성과 예측 가능성을 높이겠다”고 약속했다.
뒤이어 임명된 이현동 청장은 “국세청이 어떤 성과를 거둔다 하더라도 청렴성을 유지 못하면 국민의 신뢰 회복은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라면서 부조리에 강력 대처할 것을 약속했다. 물론 당시 청문회는 이현동 청장과 라이벌 관계에 있었다는 안원구 전 국장이 증인으로 신청되지 않았던 것에 대한 중점질의가 이루어지면서 그의 약속보다는 정치적 조사에 더욱 초점이 맞춰진 바 있다. 당시 안 전 국장은 구속 중인 상태로 한나라당이 증인채택을 거부하며 불발되었었다.
김덕중 청장은 청문회에서 취임 후 가장 먼저 “세무조사 관련 비리 근절을 위해 조사 분야를 전담 관리하는 특별 감찰조직을 설치하는 등 특단의 대책을 강구하겠다”고 약속했다. 당시 서울국세청 조사국 팀원들이 조사업체로부터 거액의 뇌물을 받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국세청이 또 한번의 위기를 맡았던 때였다.
그는 중부청장에서 국세청장이 되는 역사를 쓴 인물인데, 당시 정치권에서는 차장이나 서울청장을 제치고 중부청장인 김덕중 청장이 내정된 것에 대해 안도의 한숨을 쉬기도 했다. 청문회에서는 “국회에서의 우려가 컸었는데 그것과 직간접적으로 책임을 가지고 있는 분들이 국세청장으로 지명되지 않은 것은 그나마 다행”이라는 말이 나오기까지 했다.
그가 박근혜 정부 초대 국세청장에 내정된 것이 더더욱 ‘이례적인 일’로 회자되는 것은 2003년 노무현 정부에서 청와대 민정수석실에서 파견근무 경력이 있었는데 당시 수석이 문재인 수석이었고, 박근혜 당시 후보와 치열한 경쟁을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임환수 청장이 청문회를 받았다. 임 청장은 “세금을 고르게 하여 국민을 사랑하라는 균공애민(均貢愛民)의 정신이 지금의 세정에도 여전히 긴요하다는 사실도 깨우치게 되었다”며 국민과 함께하는 세정 운영, 공평한 세정, 준법 세정, 능력과 평판에 의한 탕평인사 실시를 약속했다.
촛불로 대통령이 탄핵되면서 정권이 바뀌고 한승희, 김현준, 김대지 청장이 문재인 정부의 국세청장 후보자로 내정됐다. 한승희 청장은 성실납세 지원, 고의적 탈세에 엄정 대응, 세무조사 공정성과 투명성 제고, 복지세정 확대, 균형인사 실시를 약속했고, 김현준 청장은 법과 원칙에 따른 공정·투명한 국세행정 운영, 성실신고 적극 지원으로 안정적 세입예산 조달, 불공정 탈세 대응과 공평과세 확립, 민생경제를 위한 세정지원, 국세행정시스템 개혁, 능력과 성과 중심의 인사를 약속했다.
이후 김대지 청장은 청문회에서 최상의 국세행정(납세서비스의 디지털화), 코로나19 위기극복 뒷받침, 불공정 탈세와 체납에 엄정 대응, 적극행정 공직문화 정착을 모두발언에서 약속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