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물기업 재조사하고, 추징액 얼마인지 조속히 밝혀야-

국세청이 지난 11일 박근혜정부들어 첫 전국세무관서장회의를 열어 지하경제양성화 및 세무비리 근절을 총력으로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또 국세청은 이 자리에서 국민이 신뢰하는 공정한 세정을 펼치겠다면서 ‘청렴실천결의’를 다졌다.

국세청의 이같은 자기 반성적 ‘결의’는 툭 하면 열린다. 지난해 5월 전관예우 등이 문제가 되어 ‘공정세정을 위한 자정결의대회’를 연지 1년이 채 안되어 보여준 ‘청렴결의’였다. 부끄러운 일이다.

이날의 결의는 특히 목민심서의 글귀를 새기는 묵상의 시간을 갖는 등 다소 눈물겨운 모습도 연출했다. 그러면서 국세청은 감찰업무를 총괄하는 감사관 직위를 외부인사에게 개방해 엄정하고 투명하게 내부감찰을 실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세무조사 감찰관을 신설하고, 조사공무원에게 조사업체 관계자 및 수임 세무대리인과의 사적관계 사전고지 의무제, 조사종결 후 2년내 개별접촉금지, 금품수수직원의 조사분야 영구퇴출제 등의 그럴싸한 대책을 발표했다.

국세청의 이날 청렴결의는 부대행사였다. 메인행사는 전국의 세무관서장들을 모아놓고 올해의 국세행정방향을 전달하고, 특히 금년도 세정의 화두인 지하경제 양성화 방안에 대해 논의하고 역량을 결집하겠다는 다짐을 하는 자리였다.

당연히 강력한 세무조사를 통해 지하경제를 발본색원함으로써 ‘조세정의를 바로 세우겠다’는 의지를 보이는 일종의 출정식 같은 것이었다. 그런데 이날 국세청은 ‘우리조직에는 잘 봐달라면서 금품을 건네면 넘어가는 사람이 많아 이들에 대한 단속도 총력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힘으로써 스타일을 구겼다.

국세청의 이런 모습에 노회한 대재산가들, 편법상속·증여의 달인들, 활개치는 자료상 등 지하경제의 고수들이 다소 움츠려들고 긴장해야 하는데 이날 국세청의 어정쩡한 모습에 지하의 고수들은 어떤 표정이었을까?

국세청도 딱한 속사정이 있었다.

지난 3월 14일 경찰이 국세청의 핵심조직인 서울국세청 조사1국 1개 반원들이 세무조사를 벌였던 7기업체로부터 무려 3억여원의 뇌물을 받아 챙겼다고 밝히면서 세상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경찰은 세무조사를 담당하는 1개팀 전원이 모두 가담을 했으며, 각자 사이좋게 나누어 가졌다고 밝혔다. 또 세무사도 끼어있었다고 덧붙였다.

사정이 이러다보니 국세청도 이날 관서장회의는 지하경제 양성화 기치를 대내외에 선포하는 추상같은 자리임에도 체면불구 세무비리 근절대책을 내놓지 않을 수 없었다.

문제는 이날 국세청이 내놓은 ‘세무비리근절대책’은 팥소가 빠졌다. 경찰의 발표에 따르면 조사공무원들이 기업체로부터 뇌물을 챙긴 것은 국세청 출신 세무사의 중계가 있었다. 그런데 이날 대책에는 국세청이 관리 감독하는 세무사들에 대한 관리방향은 한 줄도 없었다.

특히 더 큰 문제는 세무조사대상 7개의 업체로부터 3억여원의 뇌물을 챙겼다면 과연 이들 기업에게 깎아준 즉 눈감아 준 세금은 얼마일까? 라는 국민들의 의문을 해소하겠다는 어떤 설명도 대책도 보이지 않았다.

받은 금품은 돌려 줄 수도 있고, 또 수수자를 처벌하는 것으로 단죄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이 3억여원을 챙기는 과정에서 해당기업에 대한 세무조사를 제대로 했는지? 그리고 추징해야 할 세금을 얼마나 깎아주었는지를 이번 대책에서 밝혔어야 했다.

조사팀원 한둘이 아닌 9명 전원이 두 눈 지그시 감고 세무조사업체로부터 뇌물을 받았다는 경찰의 발표가 사실이라면 정말 큰 일이다. 자칫 국세행정 최후의 보루(堡壘)라고 하는 세무조사 시스템이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는 그런 큰 사건이다.

하루 빨리 이런 국민적 의혹을 해소하지 않는다면 지금 국세청이 벌이고 있는 수많은 세무조사에 대해 국민들은 불신을 가질 것이고, 자칫 성실납세라는 국민들의 숭고한 가치도 사상누각(沙上樓閣)처럼 무너져 내릴 수 있다. 국세청으로서는 다소 아프겠지만 우리 직원들이 금품을 챙긴 기업들을 재조사해보니 얼마를 깎아주었더라, 그래서 더 강도 높게 조사를 벌여 얼마를 추징했다고 당당히 밝히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개별납세자의 정보를 밝힐 수 없기 때문에 ‘불가하다’라는 국세기본법의 조항을 되뇌일 겨를이 없는 중차대한 문제다.

그렇지 않다면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막지 못하는 일이 발생할 수도, 또한 많은 세무조사 현장에서 ‘재수 없어 세무조사에 걸렸다’라는 납세자들의 한숨이 강물을 이룰지 모른다. 그리고 국민들은 지금 국세청이 펼치고 있는 지하경제 양성화라는 대의에 대한 신뢰까지도 거두어들일지도 모른다.

차제에 국세청이 이 일을 해낸다면 지금 전국의 수많은 조사현장에서 자신의 재산권을 조금이라도 지켜내기 위해 조사공무원들을 구워삶으려고 마음먹고 있는 악덕 기업주들에게 또다른 경종을 울려 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세무조사에 투입되는 조사공무원들은 신(神)이 아니다. 견물생심(見物生心) 그들도 큰 돈 앞에 마음이 흔들릴 수 있는 평범한 우리의 이웃아저씨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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