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기號 국세청을 이끌어갈 고공단 인사가 7일 밤 발표됐다. 국세청 인사가 한밤중에 발표된 것은 국세청 인사 역사에서 처음보는 광경이었다. 그만큼 이번 인사가 어려웠다는 반증으로 읽혔다. 이번 인사가 앞으로 김창기 호의 인사시그널이 될 것이라는 점에서는 더욱 그랬다.
6개월밖에 되지 않았는데 사퇴시켜야 할 것인지, 6개월밖에 남지 않았는데 지방청장으로 승진시켜야 하는지, 어쩌다보니 TK출신 재원이 많은데 모두 중용해야 하는지 등 쉽지 않은 난제를 풀어내는데 생각보다 많은 시일이 걸렸다. 김창기 청장이 취임한지 딱 24일 만이다.
한밤중에 뚜껑이 열렸고, 예상대로 대구‧경북(TK)인사들이 약진했다. 김태호 차장(경주), 김진현 중부청장(대구), 정철우 대구청장(경주)이 1급과 2급 청장으로 임명되면서다. 이들은 전 정부에서 능력에 비해 인정을 받지 못한 것에 대한 반전이다. 실제로 전 정부에서 TK출신들은 국세청 인사에서 적잖이 홀대받아왔다. 5년동안 TK출신 중에서 김창기 청장만이 1급으로 승진하면서 체면을 세웠다. 그것도 정권 말기에 생색용이었다는 평가가 주류였다.
무엇보다 이번 인사는 김태호 차장, 강민수 서울청장, 김진현 중부청장, 정철우 대구청장의 경우 국세청 내에서 ‘일로 승부’하는 사람들이다. 소위 정치권에 줄대는 스타일이 아니라는 점에서 인사때마다 기대이하의 보직을 받았음에도 인내해온 사람들로서 ‘정권교체의 힘’으로 제자리를 찾았다는 평가다. 특히 청장과 고시동기(행시 37회, 강민수‧정철우)일 경우 자리를 비워주기도 하지만 이들 두 청장의 경우 전임 정부에서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했다는 점에서 김창기 호의 조직 안정과 업무추진에 크게 힘을 보탤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면서 고시 동기들과 고시 한해 후배(김태호, 김진현)들을 전진 배치하며 중용한 것은 김창기 청장의 두둑한 배짱의 산물이라는 평가도 뒤따른다.
김태호 차장의 경우 본청에서 오랫동안 묵묵히 일로 승부해 오면서 1급 승진의 재목으로 꼽혀왔다. 그러나 6개월 전 1년 만에 관복을 벗어야 하는 대구청장으로 임명될 것이라고는 누구도 생각지 못했으나 실제 대구로 발령나면서 세정가의 아쉬움을 샀던 인물이다. 그의 차장 기용은 일로 승부하는 강한 국세청을 연상시키는 대목이다.
강민수 서울청장의 고공단가급(1급)의 승진도 반전이다. 개인적으로 보면 와신상담(臥薪嘗膽 )이라는 말이 어울린다. 강 청장은 전 정부에서 인사상 가장 홀대받은 것으로 알려져 왔다. 중부청장, 서울청장, 부산청장 등 인사시기마다 후보자로 올랐으나, 번번히 좌절을 맛봤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는 본청 법인납세국장 시절 1급 승진에서 낙마하자 사표까지 낼 생각을 하기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자 세정가에서는 '정치적 뒷배가 없는 게 약점'이라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왔었다.
정철우 대구청장은 국세청 내에서 ‘워크홀릭’으로 소문난 관리자다. 얼마나 명성이 높았으면 이번 인사를 앞두고 중부청장과 부산청장으로 임명될 것이라는 하마평이 나오자 관련 지방청 직원들이 ‘이제 죽었구나’라는 말을 되풀이하면서 다른 인사내용보다 정철우 청장의 향방에 대한 인사내용을 귀동냥하느라 분주했다는 후문이다.
광주청장으로 발령난 윤영석 청장은 호남 출신으로 행시 41회이기 하지만 나이(65년생)가 많다는 점에서 배려인사 성격으로 보인다. 이경열 대전청장 역시 행시 40회이지만 66년생이라는 점에서 마지막 공직으로 읽힌다. 그러나 대전청의 경우 대구‧광주와 달리 지역(충청) 출신이 아닌 영남, 호남 출신들이 연이어 임명되면서 아쉬움을 낳고 있다. 그간 세정가에서는 충청(논산) 출신의 백승훈 중부청 조사2국장의 임명을 강하게 점쳐왔다. 그러면서 앞선 인사에서 중부(김재철), 광주(이판식), 인천(이현규) 등 3명의 세무대학 출신들이 지방청장을 맡았으나, 백 국장이 탈락하면서 세무대 출신 지방청장은 인천청 한곳으로 줄었다.
이번 인사에서 눈에 띄는 또다른 포인트는 행시(38회)동기인 김진현 중부청장의 1급 승진을 바라만 봐야하는 송바우 기획조정관의 배치다. 송 국장은 전 정부에서 부산청 조사2국장, 서울청 조사3국장, 서울청 조사1국장 등 소위 잘나갔다. 이후 본청 조사국장을 맡겨도 손색이 없다는 평이었으나, 조금 젊다(72년생)는 점에서 본청으로 입성했으나 징세법무국장에 머물렀다. 이번 인사에서도 호남 몫으로 중부청장과 광주청장 하마평이 나오기도 했으나, 최종 기획조정관으로 배치됐다. 송 국장의 기획조정관 임명은 업무 특성상 국회의 일이 많다는 점에서 발탁된 것으로 보인다. 현재 국회 구성이 민주당이 다수당이라는 점에서 호남 출신의 송 국장이 역할을 해낼 것이라는 기대다. 그의 역할에 따라 1년 뒤 1급 승진을 노릴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오호선 조사국장(행시 39회)의 발탁도 눈에 띈다. 부산청 조사2국장, 중부청 조사1국장, 서울청 국제거래조사국장, 서울청 조사4국장, 본청 국제조세관리관 등 요직을 맡아오면서 언제가는 조사국장을 맡게될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다. 그러나 정권이 바뀌면서 예상되어온 ‘TK전성시대’ 시나리오에 따라 정재수 국장이 발탁될 것이라는 하마평이 많았으나, 최종 오 국장이 본청 조사국장을 꿰차는 행운을 거머쥐었다. 본청 조사국장을 지내면 대부분 1급으로 승진하기 때문이다.
한편 이번 국세청 고위직 인사에서는 전 정권의 힘이 좌우되었다는 설이 많았던 노정석 부산청장은 부임 6개월이라는 점에서 유임됐다. 세정가 일부에서는 노 청장의 유임을 놓고 ‘정권교체의 의미가 뭐냐’는 말이 나오고 있기도 하다. 김동일 조사국장의 경우도 한때 사의설이 나돌았으나, 징세법무국장으로 자리를 옮겨 다음번 인사에서 1급 승진을 타진하게 됐다.
이와함께 요직으로 불리는 서울국세청 조사1국장에 민주원 중부청 조사1국장이 발탁됐다. 민 국장은 어느 자리에 배치해도 조용히 일 잘하는 선비스타일의 국세공무원이다. 과거 청와대 하명조사국으로 불리운 서울청 조사4국장에는 이동운 서울청 조사2국장이 임명됐다. 그는 행시 37회에 합격해 김창기 청장과 고시 동기이지만 젊은 나이에 합격해 군 복무후 행시 41회와 연수를 하면서 사실상 41회로 분류되고 있다. 현 정부의 실세 장관으로 불리는 한동훈 법무부 장관과 현대고 동문이라는 점이 눈에 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