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012년 새해 초 세무사회는 신년인사회를 개최하면서 꽤 괜찮은 나눔과 봉사의 화두를 던졌다. 세무사 1만명이 100시간씩 봉사하여 총 100만시간의 재능을 나누겠다고 선언했다.
전국의 1만여 세무사들이 자신의 영업권인 세무지식을 무료로 기부하겠다는 것이었다. 고소득전문자격자들은 돈 만 밝히고 사회적 책임과 봉사를 등한시 한다는 사회저변의 인식을 한꺼번에 바꿀 수 있는 제안이었으며, 신선한 충격이었다. 실제로 특정 전문 자격사 단체가 회원들의 재능을 무료로 기부하겠다고 선언한 것은 사실상 첫 사례나 마찬가지였다.
지금 이 운동이 어떻게 되었는지 알 수 없다. 잘 하고 있는 것인지, 유야무야 된 것인지 알려지지 않고 있다.
그리고 세무사회는 얼마 지나지 않아 또 하나의 역작을 출품시켰다.
세무사회 창립 50주년을 맞아 그동안 추진해 왔던 사회공헌활동을 더욱 활발하게 전개하겠다면서 세무사들로부터 11억원의 성금을 모금해 한국세무사회공익재단을 설립했다. 발기는 2012년, 설립은 2013년 5월이었다.
이후 공익재단은 3번째 어려운 이웃들에게 생활비와 장학금을 지급했다. 특히 올해는 5억5천만원을 거창한 전달식을 생략하고, 조용히 그리고 실질적인 지원이 될 수 있도록 통장으로 이체하는 방식을 택해 생활비 및 장학금 지원대상자들을 더욱 배려했다는 찬사까지 나오고 있다.
한마디로 세무사들의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실천이다.
그런데 이런 세무사회의 속을 들여다보면 이 공익재단 이사장 자리를 놓고 설왕설래가 끊이지 않고 있다. 그리고 솔직히 입에 담기도 민망한 이야기들이 회자되면서 세무사들을 소위 쪽팔리게 하고 있다.
줄거리는 ‘현 정구정 이사장(전 한국세무사회장)이 이 이사장 자리를 이용해 현 세무사회장(백운찬)의 상왕 노릇, 섭정, 수렴청정을 할 것이다’라는 코미디 같으면서도 웃지 못할 이야기다.
이 이야기의 근거는 이렇다. 공익재단 이사 15명중 대부분이 정 이사장과 가까운 사람들이어서 이사장을 이사들 중에서 호선하도록 하고 있어 정 회장이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평생이사장도 가능하다는 것. 그러면서 한해에 수억 원의 지원금을 쥐락펴락하는 이사장이 이 금권(金權)으로 세무사회장의 회무에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공익재단은 백 회장이 국회의원으로 진로를 바꿀 경우 다시 자신(정구정)이 세무사회장으로 복귀하기 위한 근거지로서의 역할을 할 것이라고 회자되었다.
이런 소설 같은 이야기는 지난 6월 세무사회장선거때 바람을 타고 전국으로 퍼졌고, 밑도 끝도 없는 이 말을 많은 회원들은 그럴듯하게 믿는 모양새였다. 그러자 당시 백 후보를 지원한다는 이야기가 나돌았던 정 전 회장은 “선거후 이사장 직위를 새 회장에게 이양하겠다”고 전 회원들에게 선언하는 승부수를 던졌다.
그러자 당시 회원들은 정 전 회장이 ‘다른 뜻이 없구나’라고 생각했고, 또 그 뜻을 순수하게 받아들이는 모습이었다.
선거는 끝났고, 새 회장이 취임하면서 세무사업계에서는 공익재단 이사장 자리의 이양이 언제쯤 이뤄질 것인가에 관심이 모아졌다. 그리고 선거후 열린 첫 이사회(지난달 30일)에 정 이사장은 이사장 자리를 이양하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한 참 뜻인지는 모르겠으나 ‘이사장 사임계’를 제출하는 모양새를 갖췄다. 그런데 재단 이사회는 정 이사장의 사임계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로써 정 이사장의 임기는 오는 2017년 3월까지 이어지게 됐다.
결과적으로 정 이사장의 이양약속은 없던 것이 되었고, 정 이사장은 선거 때의 약속을 지키지 않게 된 것이다. 당장 업계에서는 ‘어 이게 뭐야’라는 소리가 나왔다. 정 이사장이 말을 바꾼 것인가. 아니면 공익재단 이사들이 정 회장을 놓지 않은 것인가. 아마도 정 이사장이 이사장 자리를 놓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회원들이 훨씬 더 많을 것이다.
그렇다면 왜 정 이사장은 이양약속을 이행하지 않았을까.
당시 이양약속은 선거를 위한 정치적 수사(修辭)였다는 이야기가 들려오기도 한다. 그래도 세무사회장을 세 번이나 한 사람치고는 너무 가벼운 처사라는 비판이 뒤따른다. 이런 것 말고 분명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그래서 기자가 오랫동안 추적을 해 봤더니 ‘정구정 전 회장과 백운찬 현 회장간의 사이가 좋지 않은 것 같다’는 사실까지는 확인됐다. 그러나 왜, 어떤 일로 사이가 틀어졌는지는 정확한 확인이 어렵다. 현 회장, 전 회장 모두 그런 일 없다고만 할 뿐이다. 누군가 한마디라도 하면 두 사람 모두 자리를 탐하는 소인배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세무사회 공익재단 이사장을 현 세무사회장이 자동적으로 맡는 것이 좋을까. 아니면 다른 사람이 맡는 것이 좋은지를 취재해 봤다.
먼저 현 회장이 당연직으로 공익재단 이사장까지 맡아야 한다는 논리는 이렇다.
공익재단의 이름이 한국세무사회공익재단인 만큼 세무사회장이 이사장직을 겸직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것이며, 또한 공익재단 후원금의 가장 큰 부분이 세무사회원들이 강제적으로 납부하는 회비(회원 1인당 연간 4만원, 회원 1만2천명 기준 연 4억8천만원)로 구성된다는 점이다.
또 있다. 공익재단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현 회장이 이사장을 맡아야 각 지방회장과 지역회장들이 관심을 갖고 공익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된다는 것이다.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로써 그럴싸하다.
하지만 이와는 달리 공익재단 이사장은 세무사회장이 겸직하면 덕 보다 실이 많을 것이라고 지적하는 회원들도 적지 않다.
먼저 공익재단이 가지는 역할이다. 공익재단은 고소득전문직인 세무사들이 사회봉사 성격으로 내놓는 성금인 만큼 세무사회장보다는 사회 저명인사나 재단발전에 기여한 인물이 맡아 발전시켜야 한다는 논리다.
여기에 더해 세무사회장이 이사장직을 겸직해 자칫 재단운영에 리스크가 발생할 경우 재단의 문제가 세무사회 전체로 불똥이 튈 수 있다는 염려 등 몇가지 지적이 나온다.
이런 이치를 접어두고 지금 세무사업계에 회자되는 공익재단 이사장 자리에 대한 갑론을박은 정구정 이사장이 이사장 자리의 이양약속을 지키지 않음으로써 또다시 세무사회장에 도전할 것이라는 얼토당토않은 ‘정구정 트라우마’속으로 빠져들고 있는 모습이다.
어떻게 정 전 회장이 세무사회장에 또 출마할 수 있다는 말인가. 정말 어처구니가 없다는 말 밖에 나오지 않는다.
그리고 ‘공익재단 이사장 자리를 가지고 세무사회의 회무를 섭정, 수렴청정 할 수 있다’는 것이 솔직히 말이 되는 소리인가. 현 회장이 관에 누워있는 사람이라고 해도 벌떡 일어나 화를 낼 일이다. 지난 선거때 백운찬 후보 역시 정부고위직 1급인 조세심판원장과 세제실장을 지냈고, 차관급인 관세청장으로서 5천명 공무원을 지휘감독한 사람인데 특정인에 의해 좌우되거나 활동에 제약을 받지 않을 것이며, 이런 말은 음해이자 인격적 모독이고 분열과 갈등을 조장하는 몰지각한 것이라고 했었다.
현실적으로도 회원들의 회비는 세무사회장이 거두어 재단으로 넘겨주는 시스템이다. 즉 재단 금고의 열쇠를 사실상 세무사회장이 쥐고 있다는 점에서 한마디로 가당찮은 말이다.
그런데 왜 섭정이니 수렴청정이니라는 말을 자꾸 퍼뜨릴까. 이런 말로 이득을 보는 사람들이 누구일까. 두 사람을 싸움질시켜 정치적 반사이익을 노리겠다는 얄팍한 노림수라는 생각이 맞을 것이다. 추잡한 말 장난인 것이다.
지금 세무사회에 필요한 것은 뒷구멍에서 이러쿵 저러쿵하는 듣보잡이 아니라 공익재단 이사장 자리를 누가 맡는 것이 세무사회의 발전, 그리고 재단의 설립취지에 더 부합하는 것인지를 테이블위에 올려놓고 제대로 한번 따져보자고 하는 정의로운 사람일 것이다. 또 그것이 논리를 숭상하는 세무사들이 취해야 할 자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