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것은 ‘인사파동’이다. 1급으로 승진할 것이라고 하마평이 나오던 사람들이 연이어 ‘줄사표’를 던지고 있다. 제갈경배 대전국세청장이 지난 24일경 전격적으로 사의를 밝힌데 이어 김영기 조사국장까지 26일 오후 사표를 던졌다.
제갈경배 청장은 청장과 행시동기생이고, 행정고시 후배들이 모두 1급으로 승진했다는 점 등에서 사표를 낼 수밖에 없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러나 조사국장은 좀 다르다는 데서 이번 조사국장의 사표는 예사롭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조사국장이 어떤 자리인가. 국세청장의 오른팔이나 다름없는 핵심직위다. 그리고 지금이 어느 때인가. 국세청이 조직의 명운을 걸고, 그리고 대통령의 복지공약 수행을 위한 세수확보를 위해 지하경제 양성화라는 중차대한 임무를 실무지휘 해야 하는 자리다. 그런 조사국장이 느닷없이 그리고 청장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사직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고 한다. 어떤 사람들은 ‘항명성’ 사표라는 표현까지 동원하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조사국장이 갑작스럽게 사표를 냈다는 사실이 공개되는 모양새도 ‘국세청답지 못하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지금 국세청 수뇌부의 조직관리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뒷말까지 나온다. 그러면서 그 뒷말은 내년 초 예상되는 개각 때 모종의 조치가 뒤따르지 않겠느냐는 ‘억측’까지로 옮겨가고 있다. 나아가 급변사태가 생기면 국세청 내부에서 성장한 관료가 아닌 외부에서 수혈될 가능성이 높다는 섣부른 전망까지 나온다. 그 뒷말의 속도가 가히 광대역 LTE급이다.
이 무슨 소리인가. 지금의 국세청 수뇌부가 말 그대로 조직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 이런 ‘항명성’ 사표사태가 초래되었고, 조직이 흔들리는 모습으로까지 비춰지고 있으니 이에 대한 관리책임을 누군가 져야 한다는 이야기다. 섬뜩하지만 참으로 올곧은 지적이다.
그러면서 이번 국세청의 인사사태가 ‘권력투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지난 2003년 국세청에서 생긴 일을 반면교사로 삼아 만일 그렇다면 ‘당장 집어치워야 한다’는 충고가 잇따른다.
2003년 노무현 정부가 들어섰다. 김대중 정부 마지막 국세청장인 손영래 청장이 재임하고 있었다. 새 정부는 새로운 국세청장을 물색 중이었다. 국세청에서는 내부인 두 사람의 경합이 붙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호남의 지원을 많이 받아 당선되었다는 점에서 영남출신 1명과 호남출신 1명이 아주 세게 붙었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그러나 둘은 서로에게 상처만 주고 지붕만 쳐다보다가 사라졌다. 이용섭 관세청장이 어부지리를 했다.
그리고 지난 1999년 김대중 정부의 일은 타산지석이다. 김대중 정부가 들어섰으나, 정권의 실세 대신 이건춘씨가 청장에 올랐다. 그는 충청인이었다. 1년 남짓 후 안정남 씨가 청장에 올랐다. 그는 정권의 실세로 불렸다. 당시 안 청장에게는 동기생이 있었다. 김성호 전 서울국세청장이었다. 자칫 권력투쟁이 생길수도 있었으나 그는 다른 길을 찾았다. 조달청장으로 방향을 돌리더니 보건복지부장관 자리에까지 올라 명예롭게 공직을 마쳤다.
다시 2013년 국세청의 겨울. 1999년 국세청과 그리고 2003년의 국세청 모습과 흡사하지는 않지만 자꾸 그때가 연상된다. 2003년에는 내부인 끼리의 싸움으로 인해 외부인이 청장으로 왔지만, 1999년에는 바통터치가 원만하게 이뤄지면서 조직이 안정되었고, 국세청 역사상 가장 큰 개혁조치들이 빛을 보았다. 무엇을 배울 것인지는 지금 후배들의 몫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