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를 앞두고 여당발 굵직한 세금 공약이 하나 둘 발표되고 있다. ‘건전재정’을 외치면서도 연이은 감세 정책을 발표하며 표심을 모으는 중이다.
상위 1%의 부자 감세라는 금융투자소득세 폐지부터, 연 매출 2억원까지 부가세 간이과세 대상자를 늘리겠다는 자영업자를 위한 공약, 그리고 전 국민 표심을 대상으로 한 부가가치세율 인하 공약까지 ‘감세’ 공약은 다양하다.
문제는 작년 세수 결손액이 사상 최대인 56조원을 넘겼다는 것이다.
특히 간이과세자 기준을 높인다는 공약이 갑작스레 발표되면서 자영업자들의 마음을 흔들고 있다. 지난 2월 윤석열 대통령이 간이과세 기준을 연 매출 1억400만원으로 높이겠다고 발표한지 한달여만의 일이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겸 총괄선대위원장은 지난 1일 부산을 찾아 부가가치세 간이과세자 적용 기준을 연 매출 2억원까지 상향을 선언했다. 물론 법 개정 사항이므로 국회의 동의가 필요하다.
언뜻 자영업자들의 세금을 깎아준다는 것만으로도 좋은 공약처럼 보이지만, 간이과세제도는 ‘악법 중의 악법’으로 평가받는다. 부가가치세의 근본기능인 세금계산서 제도를 붕괴시키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부가가치세는 일반과세자와 간이과세자로 나뉘는데, 일반과세자가 매출액의 10%에 해당하는 부가세를 납부하는 반면, 간이과세자는 세율도 낮게 적용되는 데다, 매입 금액의 0.5%만 공제하고 있어 실제로 부담하는 세금이 적다.
가장 큰 문제는 세금계산서를 받지 않아 탈세 수단으로 악용된다. 또한, 간이과세 혜택을 받기 위해 사업자들이 매출을 축소하려는 시도가 크다. 실제로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이 발간한 ‘간이과세제도와 사업자들의 행태변화’ 보고서에 따르면 제조업과 소매업에서는 간이과세 기준금액 부근에서 사업체들이 많이 몰리는 집군현상이 나타났다. 사업자들이 세제 혜택을 누리기 위해 기준점 부근으로 의도적으로 몰리는 것이다.
대부분의 월급쟁이인 근로소득자 입장에서도 근로소득세와의 세부담 형평이 맞지 않는다는 지적을 받는다.
매출이 적은 사업자에게 납세협력비용을 경감해주겠다고 만든 예외적인 제도가, 세금을 덜 내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소상공인, 자영업자의 세금 부담을 낮춰줄 수 있지만 무자료 거래 관행을 없애고 과세표준 양성화를 위한 장치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간 간이과세 제도가 폐지돼야 한다는 것은 누구나 동의했지만 실제로 국회에 제출된 폐지안은 표심을 의식한 국회의원들의 찬성표를 얻지 못해 통과되지 못했다.
이렇게 20여년간 건들지 못하고 있던 간이과세제도가 갑작스레 2억원까지 상향으로 손질이 시작된 것은 코로나19 이후 자영업자의 고통을 줄이기 위해 기준을 연 8000만원으로 상향한 이후부터였다. 이후 코로나19 종식이 선언됐지만 현 정부 들어 간이과세자 기준액은 1억400만원까지 늘어났다.
국세통계연보에 따르면 `22년 기준 전체 세수 395조9393억원 중에서 부가가치세수는 81조6266억원으로 전체의 20.6%를 차지하고 있다.
특히, `22년 부가가치세 신고인원은 787만1616명인데 간이과세자만 200만4명으로 25.4%를 차지한다. 간이과세자 중에서도 납부 의무 면제자 수는 170만3345명으로 집계되면서 간이과세자의 85.2%는 그마저도 세금을 내지 않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의 4대 의무라고 생각해 이미 성실하게 세금을 내고 있던 사업자들의 입장에서도 간이과세 혜택을 받는 사업자들이 많아질수록 정말 영세한 사업자들에게 돌아가던 혜택이 누구나 다 받는 혜택으로 바뀐다는 생각이 들게 되고, 이럴 경우 오히려 불만이 생기면서 조세저항을 불러일으킨다는 단점도 존재한다.
그뿐만 아니라 지난달 28일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물가 안정을 위해 정부에 부가세율 인하를 강력히 요구하기도 했다. 즉석밥 등 생필품에 붙는 부가가치세율을 현행 10%에서 5%로 한시적으로 인하하는 방안이다.
앞서 윤석열 정부 출범 직후 단순 가공 식료품에 붙는 부가세를 한시 면제하는 대책과 결을 같이 한다. 당시에도 물가 안정을 위한 정책이었는데, 물가는 잡히지 않았고 결국 연장돼 내년 말까지 운영된다.
이 외에도 금융투자소득세도 도입을 코 앞에 두고 조세정책이 오락가락하고 있다. ‘소득 있는 곳에 세금 있다’는 대전제 하에 금투세 도입이 결정됐지만 2년 유예로 `25년으로 미뤄진 바 있다.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동학 개미의 표심을 잡기 위해 ‘금투세 폐지’ 공약이 수면위로 올랐고 총선을 앞두고 금투세 폐지안은 여전히 뜨거운 감자다.
한편, 기재부에 따르면 올해 국세 감면액은 전년보다 10.9% 늘어난 77조1000억원으로 전망된다. 걷어야 하는 세금을 깎아주는 것만 하더라도 70조원대를 넘기며 사상 최대치로 예상되는데, 작년 사상 최대 금액인 54조원의 세수 결손을 겪고도 선심성 세금 깎아주기 공약만이 제출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