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5월. 국세청 공무원으로부터 ‘세무조사’가 끝나기 전에 한번 얼굴을 보자는 연락이 왔다. 조사 담당 공무원으로부터 연락을 받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지만, “아무한테도 얘기하지 말고, 그냥 저하고 그래도 좀 편하게 얘기하시는 게 나을 것 같아가지고”라며 ‘아무한테도 이야기하지 말라’는 조건 하에 만남을 요구했다.

조사 담당 공무원이 불러내는데 거절할 수 있는 납세자가 있을까. 그렇게 A씨와 국세청 공무원 L씨는 그날 만남을 가졌고, 점심 식사, 커피, 그리고 술자리까지 이어지는 자리에서 은밀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비용은 납세자인 A씨가 전부 부담했다.

국민권익위원회는 지난해 이 같은 내용의 서울지방국세청 공무원의 청탁금지법 위반 사항을 접수하고 국세청에 사건을 이첩했다. 그리고 국세청은 국세공무원 L씨에 대한 징계를 내렸다.

세정일보는 세무조사 과정에서 세무공무원과 납세자 사이에서 일어난 일들을 재구성해 보도한다.

◆ 끊이지 않는 ‘세무조사 청탁’…최근 대구지방국세청장도 재판行

몇 년 전, 세무공무원 출신 세무사가 납세자로부터 수십억의 뇌물을 받아 현직 세무공무원에게 알선하고 백억대의 세금을 탈루하는 사건이 세상에 드러났다. 전관 세무사의 비위 사건이 끊이지 않자, 국회에서는 국세청에서 퇴직한 세무사들이 수임제한이 필요하다고 봤다.

그렇게 지난 `18년 말 세무사법이 개정되면서 세무사에 대해 업무실적 내역서를 한국세무사회에 작성·제출토록 했다. 세무사가 세무대리를 시작하기 위해 등록하는 세무사등록부에는 ‘공직퇴임세무사’ 여부를 기재하도록 했으며, 연고관계를 선전할 수 없도록 했다. 변호사처럼 세무사도 전관예우나 전‧현직 간 유착 등 비위 행위를 예방하기 위한 조치였다.

당시 국세청은 강하게 반발했다. ‘직업선택의 자유를 침해한다’, ‘세무공무원의 사기가 저하된다’, ‘능력있는 직원들이 (5급이 되기 전)조기퇴직할 것이다’ 등의 이유를 들었다. 그러면서 ‘사적관계신고제도', ‘퇴직자 사적접촉 금지제도’가 도입됐다며 전관 예우 사건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의견을 어필했다.

그러나 전관예우 문제가 심각했고(클럽 아레나 세무조사 당시 전 강남서장에게 금품을 전달, 세무조사 로비청탁 문제가 수면위로 떠오르는 등), 세정협의회 사건(퇴직 후 고문료 수수) 등이 터지면서 `21년 말 국세청이 그토록 반대하던 ‘공직퇴임세무사’의 수임제한 규정이 국회를 통과했다. 5급 이상에서 퇴직하는 경우, 퇴직 1년 전부터 퇴직한 날까지 근무한 곳과 관련된 세무대리를 1년간 수임을 제한받는 내용이다.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관할 지역에서 개업하는 세무서장은 끊임이 없다. 강남지역으로 발령받은 세무서장은 주로 명예퇴직을 앞두고 있는 자들로 채워지고, 그들은 퇴직 후 관내에 개업했다는 소식을 알려온다. 세무서장으로 재직하면서 관내 기업체에 세무조사를 나가고, 퇴직 후에는 그 기업체로부터 기장을 수수하는 사실이 드러나곤 한다.

법도 고쳤고, 국세청 내부적으로도 각종 장치를 두고 있다. 그런데 세무조사, 정말로 공정하게 진행될까.

세무조사는 의도적인 탈세행위를 잡아내어 공정하고 공평하게 과세하기 위해 실시한다. 그러나 최근에도 전관 세무사에게 뇌물을 받아 법정에 서게 된 전직 지방국세청장 소식이 세정가를 강타했다. 전 대구지방국세청장이 현직에 있을 당시 전관 세무사로부터 세무조사 무마 등을 대가로 1300만원을 받은 혐의다.

성실납세자를 바보로 만들고, 납세자들의 조세 저항심을 일으키게 하는 사건들이다.

◆ “아무한테도 이야기하지 말고 만나자”

납세자 A씨는 지난 `20년 부친의 사망 이후 `21년 2~5월 사이 국세청으로부터 상속세 세무조사를 받았다. 상속 관련 조사내용이 너무 방대하고 어려워 국세청 조사국 근무 경력이 있는 세무대리인 K세무사를 선임했다. K세무사는 대형로펌에 소속돼 세무조사 대응 업무를 맡았다.

서울지방국세청 조사3국. 양도세와 상속세, 증여세 등을 조사하는 조직이다. 납세자가 상속세를 신고하면, 조사3국 직원들은 상속재산을 평가하고 세액 결정을 위해 세무조사를 실시하게 된다.

이처럼 상속세 세무조사를 담당하는 서울청 조사3국 소속 조사관 L씨는 2021년 5월, 자신이 세무조사를 진행하고 있는 납세자 A씨에게 전화를 걸어 “아무한테도 얘기하지 말고, 그냥 저하고 그래도 좀 편하게 얘기하시는 게 나을 것 같아가지고”라고 말하며 불러냈다.

“문자나 카톡 남기지 말라”는 부탁(?)도 있었다.

A씨는 당황했다. 자신의 상속재산에 대한 세무조사를 진행 중인 국세청 조사관의 만나자는 요구를 거절할 수 없었다. ‘둘이서만 만나자’는 이야기가, 돈을 요구하는 것인지 헷갈렸다.

그리고 서둘러 유명 호텔 셰프 출신이 운영하는 일식점에 전화를 걸어 당일 예약했다.

그날 오후 일식집에서 만난 A씨와 L조사관은 세무조사에 대한 은밀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L조사관은 ‘자신이 뺄 수 있는 것은 뺐다’고 말했다. 상속세로 부과돼야 할 사전증여 재산 등을 고의로 누락시켰다는 말로 들렸다.

상속세 세무조사를 대리하고 있는 ‘K세무사에게 고마워하라’는 말도 했다. “우리한테 열의도 주시고”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가 받았다는 ‘열의’가 무엇인지 확인되지 않았다. ‘우리’라고 언급한 만큼 조사 담당 공무원 외에 열의를 받은 이들이 있다는 말로도 해석된다.

그날 점심식사 후 커피를 마셨고, 저녁은 술자리로 이어졌다. L조사관은 무엇 때문인지 “기분이 좋다”며 추가로 술을 더 마시자고 자꾸 권했다. 술을 마시지 못하는 A씨는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고, 나중에 자리에 합석한 K세무사가 L조사관과 함께 했다.

식사 비용을 납세자인 A씨가 결제했지만 이 외에 금전이 오고간 것은 없었다. 하지만 세무조사 공무원은 조사 대상자로부터 그 어떤 접대를 받아서도 안 된다. 최근에는 기업체에 조사하러 나가서도 물 한 잔 얻어먹는 일이 없어 물과 종이컵까지 조사처로 들고 간다고 한다.

이 자리에서는 ‘친하게 지내자’는 이야기가 오고 간 것으로 파악된다. 세무조사를 실시한 세무공무원이 조사 대상자인 납세자와 ‘친하게 지내는’ 것이 왜 좋은 일일까.

세정일보는 L조사관이 납세자를 따로 불러낸 이유에 대해서 듣기 위해 당사자에게 수 차례 연락을 시도했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다.

◆ 금품 제공액수는 19만원인데…결국 상속세 ‘재조사’ 결정

국민권익위원회가 부정청탁 금지행위에 대한 진정서를 접수해 검토했고, 국세청은 접대 의혹을 받고 있는 L조사관에 대해서 정직 처분과 함께 타 지방청 세무서 지서로 하향 전보조치했다. 그리고 담당 팀장은 국세청을 퇴사한 것으로 전해졌다.

세무조사 대응 과정에서 국세청 출신 전관 세무사인 K세무사는 이 건으로 세무사징계위원회에 회부됐고, 다행히 경징계를 받았다.

L조사관이 A씨에 대한 조사 편의를 봐줬다면 중징계 처분을 피할 수 없다. 하지만 L조사관은 7급 공무원 신분을 유지 중이다. 이유는 금품제공의 액수다.

국세청 조사 결과, ‘금품제공’ 금액은 단 19만원. 이를 토대로 국세청에서는 내부 징계를, 세무사징계위원회에서는 견책 의결을 내린 것이다.

공무원 징계령 시행규칙에 따르면 ‘직무와 관련해 금품·향응 등 재산상 이익을 받거나 제공하고, 그로 인해 위법‧부당한 처분을 한 경우’에는 최소 강등, 그리고 파면과 해임 조치가 이루어진다. 금품 수수액이 100만원을 넘으면 무조건 ‘파면’이다.

세무조사는 국세기본법 제81조의4에 따라 ‘재조사’를 엄격히 금지한다. 재조사가 허용되는 경우는 △조세탈루 혐의를 인정할 만한 명백한 자료가 있거나 △거래상대방에 대한 조사가 필요한 경우 △2개 이상의 과세기간과 관련하여 잘못이 있는 경우 △납세자가 세무공무원에게 직무와 관련해 금품을 제공하거나 금품제공을 알선한 경우 등 7가지 항목이 있다.

납세자와 식사를 한 것이 전부고 조사 내용에 문제가 없었다면 재조사를 굳이 할 이유는 없었겠지만, 결국 세무조사는 재조사가 이루어졌고 당초 부과된 세금과 결과에는 큰 차이를 보였다. 국세청은 지난달 말 A씨에 대한 상속세 세무조사 재조사를 마무리하고 가산세를 포함해 수십억의 세액을 고지했다.

세정일보는 이번 사건과 관련 L조사관의 입장도, 국세청 감찰로부터의 어떤 답변도 들을 수 없었다. 감찰은 이 사건에 대해 “답변할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해당 공무원이 어떤 징계를 받았는지도, L조사관이 받았다는 열의가 무엇인지도, 19만원이 인정된 이유도, 세무조사 재조사 금액이 달라진 이유도 알 수 없었다.

‘세무조사 봐주기’는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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