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무사회 “보따리 사무장 발본색원하겠다” 강력 대처로 업계 ‘경종’ 예고

올초 여직원이 무려 34건의 기장업체를 이직 사무소로 가져간 경북 영주지역의 세무사 사무실. 이 여직원이 빼간 업체로부터 받은 보수는 연간 8천여만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올초 여직원이 무려 34건의 기장업체를 이직 사무소로 가져간 경북 영주지역의 세무사 사무실. 이 여직원이 빼간 업체로부터 받은 보수는 연간 8천여만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초 경북 영주 지역에서 ‘보따리 사무장(직원)’ 사태가 발생하면서 한국세무사회에서 조사에 착수했지만, 지난 16일 한국세무사회 제2차 윤리위원회에서 해당 건에 대해 ‘재조사’ 결정이 내려지며 관련자들의 징계 여부는 미뤄지게 됐다. 반년간에 걸친 조사에도 쉽게 결론이 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세무대리시장에서 ‘보따리 사무장’ 사건은 끊임없이 발생했다.

‘보따리 사무장’이란 기장 업체를 가지고 세무사, 회계사 사무소를 옮겨 다닌 직원을 뜻하는 말로, 세무대리 질서를 무너트린 주범이다. 수임료 덤핑, 명의대여 등의 문제가 발생하기도 하고, 무자격 세무사의 세무대리로 납세자가 피해를 보는 일이 발생하게 된다.

세무사사무실에는 세무사를 돕는 직원들이 여럿 근무한다. 이 중에서도 세무사의 지시에 따라 업무를 총괄하고 직원들을 지도 감독하는 사람이 바로 ‘사무장’이다. 이들 사무장이 기업체 기장 대리를 가지고 다른 세무사사무실로 이직하는 행위를 통틀어 ‘보따리 사무장’이라 표현한다. 이번 경북 영주 사건에서는 사무장이 아닌 ‘직원’의 이직 과정에서 발생한 사건이다.

◆ 보따리 사무장과 관련한 세무사회 규정들

세무사사무소설치운영규정에 따르면 제10조(사무직원의 결격사유)에서 ‘종전에 근무하던 회원 사무소의 수임 거래처를 다른 회원 사무소로 이전시킨 자’는 사무직원이 될 수 없다고 규정돼 있다.

사무장이 기장을 가지고 다른 곳에 이직한 사실이 인정되면 앞으로 세무사사무소에서 근무가 불가능하게 된다. 명의대여(기장은 사무장이 하고, 세무사의 이름만 빌려 사무실을 운영하는 경우)도 징계 대상이 된다.

또한, 사무장만의 문제가 아니다. ‘기장을 갖고 오겠다’는 사무장의 제안을 승낙한 세무사의 경우도 징계 대상이 된다.

세무사윤리강령 제3조(징계사유)에 따르면 부당 또는 부정한 방법에 의해 직접 간접으로 업무의 위촉을 간청, 권유, 강요 또는 유인하는 행위, 사무직원으로 하여금 전에 근무하던 세무사가 수임하고 있는 업무에 대해 수임하도록 지시하거나 방조 또는 방임하는 행위(단, 전 근무 세무사가 승낙하거나, 수임 거래처가 자발적으로 수임 계약을 해지한 경우는 제외) 등은 징계 대상이다.

사무직원의 결격사유에 해당하는 자를 채용하는 행위 역시 징계를 받는다.

◆ ‘보따리 사무장’ 발본색원해 업계 질서 바로잡겠다던 세무사회

지난해 박연기 업무정화조사위원장이 취임하면서 “플랫폼 사업자의 불법 세무대리 행위를 비롯해 업계의 악습인 명의대여와 ‘보따리 사무장’에 대한 폐해가 심각해 회원으로부터 다양한 기대와 요구가 표출되고 있다”며 “세무사 업계가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한 지금, 세무사회가 중심을 잡고 명의 대여자와 보따리 사무장을 발본색원해 업계 질서를 바로잡겠다”고 선포한 바 있다.

따라서 그간 유야무야되어 오던 ‘보따리 사무장’ 사건을 세무사회가 엄벌하겠다며 이번에 직접 조사에 나선 것이지만, 반년이 지나서 나온 결론이 ‘재조사’라는 부분에 대해서 많은 이들이 허탈함을 느껴야만 했다. 세무대리업계의 불법을 뿌리 뽑기 위해 착수된 조사였고 이에 대해 많은 세무사가 기대를 걸었으며 경종을 울려주길 바랐기 때문이다.

내용은 간단하다. 사무직원이 기장 수십 개를 가지고 다른 세무사사무실로 이직했다는 내용이다. 여기에 얽힌 복잡하고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것도 아닌 것으로 파악된다.

◆ 기장 탈취당한 세무사, “도둑맞은 사람에게 죄를 묻는 격”

하물며 무언가 사정이 있다고 하더라도, ‘기장을 갖고 이직한 사실’에 대해서만 징계 결론을 내리면 될 뿐이다.

실제로 관련자인 A세무사는 “세무사회에서 조사관이 파견돼 관련 자료를 다 챙겨갔으며 윤리위에서 진술도 마쳤는데 뭘 더 조사해야 하는 건지 잘 모르겠다”며 “이 사건이 그렇게 판단하기 어려운 사건인지,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너무나 명확한 사건인데 조사를 더 한다고 결과가 달라지는 것이냐”고 반문했다.

또한 윤리위원회에 진술을 하기 위해 참석했을 당시 “(직원에 대한)관리소홀 책임을 묻던데, 그간 많은 직원이 입사와 퇴사를 반복했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직원이 마음먹고 작정해서 가져갔는데 관리 소홀 책임을 묻는 것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도둑맞은 사람한테 왜 도둑맞았냐고 죄를 물을 순 없다”며 “어떤 규정에서 관리 소홀로 징계사유가 되는지에 대해 물었지만 답변을 해주는 사람도 없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설령 관리를 잘못했다 하더라도, 안 가져가면 안 가져가는 것 아니냐”고도 덧붙였다.

한편, A세무사는 세무사회 윤리위원회로부터 재조사 여부에 대한 내용을 통지받지도 못했으며, 재조사 사유에 대해서도 알지 못했다고 전했다.

이번 조사 결과 A세무사가 직원에 대한 ‘관리 소홀’ 책임을 지게 된다면, 앞으로 ‘보따리 사무장(직원)’을 신고할 세무사는 아무도 없어질 것이란 푸념들이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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