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 본청은 지난 `14년 서울 종로구 수송동에서 세종시 나성동으로 이전하며 세종청사 시대를 열었다. 입주식을 갖고 세종청사에서 첫 업무를 시작한 지 10년이 된 지금, 세종으로 이사한 국세청 공무원들의 생활은 어떻게 변했을까.
처음 세종으로 이사할 때 본청 소속이었던 직원들은 부랴부랴 전세나 월세로 거처를 마련하기에 바빴다. 새로 생기는 도시이다 보니, 세종에 연고가 있는 직원은 없었다. 또한, 세종 생활이 얼마나 길어질지 알 수 없어 고위직이 아닌 이상 부동산을 매매하기에는 부담스러웠던 직원도 많았다.
세종청사 생활이 본격적이었던 `15년 공무원 연봉 기준의 경우 9급 초봉은 127만원, 올해는 187만원을 받는다.
본청에는 9급 직원이 들어올 수 없는 곳으로 알려져 있지만,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전산실(정보화관리관실)의 경우 9급 공무원이 가장 많은 곳이다. 본청 전체적으로 보면 7급 공무원의 비중이 높다.
7~9급인 이들이 세종 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초과근무 수당을 받는다 하더라도 60~70만원 수준의 월세를 감당하기에는 큰 부담이 된다. 승진하기 위해 힘든 타지 생활을 감당하고 있다지만 물가가 급격하게 오르는 최근에는 맛있는 식사 한 끼도 사치로 느껴질 때가 많다.
네이버 부동산 기준 현재 세종시 나성동의 오피스텔 원룸 월세는 보증금 500만원에 60만원 선이다. 평수로는 7~10평 공간이다. 조금 더 넓은 곳으로 가려면 보증금 1000만원에 월세 80만원 이상은 줘야 한다. 관리비 10만원을 더하면 월급의 1/3은 순수 주거비용으로 빠져나가는 셈이다.
처음 세종시로 정부 부처가 이전 할 때는 공무원에게 월 20만원의 이주지원비가 지급됐지만 2년간 한시적인 지원이었을 뿐, 이후로는 지원비도 없었다. 이에 따라 본청에서 직원들의 어려움을 조금이라도 줄여보고자 올해부터 월세 지원금을 지급하기로 했다.
국세청 조직은 순환 업무이기 때문에 타지역으로 발령받아 출근해야 하는 일이 다른 부처보다 잦다. 특히 지역이 넓은 중부청이나 상대적으로 멀게 느껴지는 인천청으로 발령받으면 출근만 편도 2시간 이상 걸린다는 직원들도 흔히 찾아볼 수 있다.
이에 직원들은 지방청이나 세무서에는 원격지에 근무할 경우 합숙소(관사)에서 생활하게 된다. 관사에 자리가 없으면 임차비를 지원해 주는 제도도 존재한다. 특히나 타지 생활에 더 어려움을 느끼는 장애인이나 신규직원은 일반 직원보다 차등 지원받게 돼 있다. 따라서 유일하게 주거지원비가 없던 본청이 올해부터 지원을 시작하는 것이다.
국세청에서도 ‘본청 근무=승진’이라는 인센티브를 제공해 세종으로 능력 있는 직원들을 끌어모으려 하지만, 현실적으로 치솟는 물가, 높은 주거비, 업무 강도, 주말 근무(최근엔 사라졌다) 등으로 어려움을 호소하는 이들이 많았고, 퇴근해서 잠만 자게 되는 작은 원룸에서는 답답함과 우울함이 쌓이기도 했다.
본청에서 근무 중인 A씨는 국회 업무가 있어 세종과 서울을 왕복하는 일이 잦다. ktx 이용 등 출장비는 지급되지만 특근외식비는 7000원뿐이라 저녁에는 김밥 한 줄에 라면 한 그릇 먹기도 벅차다. 새벽 늦게 끝나고 불가피하게 서울에서 1박을 해야 할 일이 생기면, 숙박비도 부담해야 한다. 1박 숙박비로 지원받는 금액은 10만원이지만, 코로나 이후 숙박 물가도 오르면서 이 금액이 모자란 경우가 많아 추가 비용이 드는 경우가 허다하다.
물론 10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세종에 정착한 직원의 수가 늘어난 것도 사실이다. 본청 근무 중인 B씨는 “부서당 절반가량은 세종에 터를 잡았지만, 서울부터 부산까지 다양한 곳에서 모이는 기관이다 보니 원룸에서 월세로 지내는 이들도 많다”고 전했다.
C씨의 경우, 처음에는 원룸에서 시작했지만 결국 아파트로 거주지를 옮기기도 했다. C씨는 “원룸에서 지냈을 때는 너무 갑갑했다”며 “집에서 출퇴근할 때는 심적으로 안정적이지만 세종에 와서는 가족과 떨어져 있는 것도 외로운데, 좁은 원룸에서 생활하다 보니 바람도 불지 않고 답답해 우울증이 올 것만 같았다”고 회상했다.
C씨는 “10년 전 세종에 내려왔을 때 본청에서 근무한 적이 있는데, 당시에는 오피스텔에서 에어컨이나 난방을 중앙에서 컨트롤하는 형식이다 보니 밤늦게 퇴근하고 에어컨도 틀 수 없어 힘들었다”며 “당시 편의점도 24시간 운영이 아니었기 때문에 정말 힘들었던 기억이 있다”고 회상했다. 결국 C씨는 이번 본청 근무를 아파트 전세로 시작했다.
특히, 세종 인구가 늘어나면서 10년 전보다는 훨씬 생활 여건이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월세만 지원이 되는 현 상황에서 전세는 지원금을 받을 수도 없다고도 덧붙이기도 했다. 맞벌이 부부다 보니, 서울과 세종에서 이중으로 주거비용이 든다는 것도 큰 부담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본청 업무 강도가 높고, 항상 야근하다 보니 어차피 집에 가면 ‘씻고 잠만 잔다’며 직원들끼리 룸메이트를 맺는 경우도 있다. ‘월세 낼 돈을 모아 캠핑카를 사는 게 낫지 않겠느냐’는 우스갯소리도 나왔다.
7급 5호봉 기본급은 240만8100원. 월세, 관리비, 생활비 등을 제외하고 나면 실제 수중에 들어오는 월급은 200만원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 이들은 연간 700만원 이상의 주거비가 필요하다. 길게 5년간 세종에 있었다면, 3500만원을 써야 하는 셈이다.
승진에 뜻을 두고 세종 생활을 시작했지만, 결국 현실적인 측면에서 어려움을 겪는 이들은 6급까지 근무하고 5급 승진하기 전에 세무사 자격증을 취득해 로펌 등으로 몸값을 올려 재취업하는 길을 고민하게 된다. 자연스럽게 인재는 유출되고, 국세청의 전문성과 존재감은 소리없이 추락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