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법정에서 전직 지방국세청장에게 휴가비를 줬다는 전관 세무사의 증언이 나왔다. 물론 현직 지방청장 재직 때이다.
이 세무사는 관할 지방국세청장을 만나 “지역의 세무조사를 대리하고 있다”고 말하고 휴가비 300만원을 건넸다. 그는 이 돈의 정체가 청탁의 대가가 아닌 ‘휴가비’라고 말했지만, 세상 사람들은 ‘내가 어느 업체 세무대리를 맡고 있다’면서 돈을 건네는 행위를 청탁이라고 말한다.
청탁의 대가이든, 휴가비든, 뇌물을 받았다고 지목된 지방국세청장은 그 시기가 ‘추석 명절 집중 감찰기간’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집중 감찰기간 중이므로 금품 등 뇌물을 받기 어려운 시기였다는 취지다.
하지만 ‘집중 감찰 기간’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그날 지방청장을 만난 자들의 출입명부는 존재하지 않았다. 지방국세청장에게 배정되는 비서는 1명인데, 이 비서는 “청장님이 세무사 몇 명과 만남을 가졌지만, 누가 왔었는지 별도로 기록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누가 누굴 만나는지조차 파악이 안 되는데, 명절을 앞둔 ‘집중 감찰 기간’은 왜 있는 것일까.
통상 집중 감찰 기간에는 감찰 직원들이 세무서를 찾는다(지방청장에 대한 감찰 활동은 총리실에서 담당한다). 점심시간에 일찍 세무서를 나가는 이들이 있는지 없는지 감시하기 위한 것이다. 점심 약속으로 인해 11시30분에 출발하려고 하면, 직원들이 “40분에 출발하라”며 입구를 지키고 서 있다.
10분 늦게 나가라고 지키고 서 있는 건 무엇을 위한 감찰일까. 너무나도 구시대적인 감찰 활동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국세청 출신 세무사가 조사국 직원들을 압박해 세금을 깎는 행위가 버젓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납세자 입장에서 보아도 점심시간에 10분 일찍 나가는 것이 과연 중요한 감찰 활동일까.
또한 세정일보 취재 결과, 대형 로펌에 소속된 전관 세무사가 자신이 국세청 출신 세무사로 지방청 조사국 직원들에게 압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호언장담한 것으로 확인했다.
이 세무사는 납세자를 만나 이렇게 얘기했다. “국장, 과장은 컨트롤할 수 있고, 국장은 같이 골프도 많이 친다”고.
이 역시 서울지방국세청 조사국 출신의 전관 세무사이다. 납세자가 상속세 세무조사를 받게 되자 조사 대리를 맡기기 위해 만났는데, 자신이 국세청 출신 세무사로 지방청 조사국 직원들에게 압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호언장담했다. 서로 잘 아는 사이인 데다, 골프도 함께 치러나가는 관계라며 친분을 과시했다. 이 납세자는 해당 세무사에게 세무대리를 맡겼다.
그는 세무조사 대리를 맡은 후 납세자에게 “(조사 담당 직원들에게)차비라도 쥐어주고 싶은데”라며 “이런 일은 서로 입조심해야 한다”고 신신당부하기도 했다.
이렇듯 대형 로펌 등에서는 소속 세무사들이 국세청 조사국 출신이라는 점을 내세워 ‘세무조사 대응 능력’을 강조하고 있다. 이 세무사의 말처럼 국장, 과장은 컨트롤할 수 있다는 것이 ‘세무조사를 잘 안다=조사국 사람들을 잘 안다’는 뜻으로 이어진다.
세무조사 현장에서 전관 출신 세무사들의 영향력은 무시무시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한 납세자는 전관 세무사를 수임한 이유에 대해 “청탁 및 로비 능력에 따른 도움을 기대했다”면서 고액의 수임료를 지불했다.
모 지방청 조사국 팀장도 국세청 출신인 선배 세무사가 상속세를 깎으라고 청탁하자, 결국 세금을 깎아 ‘상속세 감액 조사보고서’를 작성해 결재받고 납세자의 세금을 임의로 깎아줬다.
국세청은 세무조사 감독 및 견제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국회에서 전관 세무사 문제가 꾸준히 지적됐고 결국 ‘공직퇴임세무사’ 수임제한 규정이 국회를 통과하기도 했다. 국세청 내부에서도 조사 중에 위법·부당 행위가 있으면 납세자보호담당관에게 권리보호를 요청할 수 있도록 하고, 조사팀 교체신청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등 각종 장치를 마련했다. 조사 종결 후에는 ‘세무조사 사후 체크리스트’를 작성해 조사의 투명성이나 조사공무원의 청렴성을 평가하도록 했다.
그러나 세무조사 과정에 속사정을 잘 알고 있는 국세청 출신 세무사들이 현직 직원들과 골프라운딩을 나가거나 술자리를 가지며 친분을 다지고 있는 것이 사실로 드러났다. 따라서 납세자의 국세행정 신뢰도를 더욱 떨어트리기 전에, 국세청은 세무조사 금품수수 행위에 대한 특단의 조치를 취해야 할 때라는 지적이다.
국세청 감찰은 세무서를 찾아가 직원들이 점심을 언제 먹는지 체크하기보다, 차라리 세무조사 대상 업체를 감찰에 공개하고, 조사착수 시점부터 감찰 직원들이 조사 과정을 살피는 것이 더 효과적인 감찰 활동이 될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국세기본법상 세무조사 여부를 세상에 공개하기 어렵다면, 내부 조직인 감찰에라도 조사대상 업체를 공유해 자체 감찰의 감시라도 받도록 하자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