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세정가는 ‘청렴’이 지배하고 있다. 새해 1월 1일 임환수 국세청장이 신년사를 통해 시작했다. 최근 취임한 심화석 조세심판원장도 ‘청렴’을 유독 강조하면서 자신이 솔선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유직업단체인 세무사회장도 나서 청렴을 강조하고 있다. 무슨 일일까.

500여년 전으로 돌아가보자.

고려의 영웅으로 칭송 받는 최영 장군(1316~1388). 조선의 건국 과정에서 부정하게 재산을 축적했다는 죄목으로 처형당했다. 그러나 그는 만약 그런 방식으로 재산을 축적했다면 자신이 죽고 난 뒤에 무덤에 풀이 자랄 것이지만 결백하다면 풀이 자라지 않을 것이라고 유언했다. 실제로 오랜 세월동안 그의 무덤에는 풀이 자라지 않아 그의 청렴결백을 증명했다. 그는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평생 황금보기를 돌 같이하며(견금여석.見金如石) 스스로 근검성과 청렴함을 실천했다.

조선으로 넘어와 황희 정승은 비가 새는 초가집에 살았고, 누덕누덕 기운 이불을 덮고 잤다고 한다. 율곡 이이는 벼슬에 물러나니 식량이 없어 대장간을 세워 생활을 이어갔다고 전해진다. 그가 남긴 유명한 말이 있다. 견리사의(見利思義)다. 서애 유성룡은 10년 정승 생활을 했지만 청렴하고 정직하여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가 벼슬을 버리고 나오자 서울에서는 기식할 집도 없어 알고 지내던 스님을 찾아가 절간에서 겨우 숙식을 해결했다고 한다. 오성과 한음의 오성으로 잘 알려진 백사 이항복은 셋집살이를 했다고 한다.

다시 600년 뒤 2016년. 새해 정초에 임환수 국세청장은 신년사를 통해 ‘청렴’을 강조했다. 아마도 작년에 적지 않은 국세공무원들의 일탈행위들이 세상에 드러나면서 땅에 떨어진 국세청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청렴만이 국세청이 살아날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임 국세청장의 신년사 일부다.

“세정 핵심가치인 ‘준법과 청렴’이 세정 전 분야에 확고히 뿌리 내려야 한다. 극소수의 일탈로 모든 성과가 일거에 무너지는 악순환을 이제는 끊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한 두 사람의 의지나 행동이 아니라 국세청장부터 9급 직원까지 모두의 마음을 모아야 하고, 저를 포함한 고위직부터 준법과 청렴을 철저히 실천하겠다. 2016년이 ‘준법·청렴문화 정착의 원년’이 되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세정가의 청렴바이러스는 국세청을 넘어 최근 새로 취임한 심화석 조세심판원장도 취임사에서 청렴을 강조했다. 그리고 그는 자신부터 솔선하겠다고 했다.

심화석 조세심판원장의 취임사중 청렴을 강조한 대목이다.

“조세심판원은 민원부서로서 과세관청의 직원뿐만 아니라 납세자와 대리인들과의 접촉이 빈번한 곳이며, 또한 국민들의 청렴에 대한 요구수준도 어느 때보다 높은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환경에서 조세심판원 직원들에게 청렴은 아무리 강조해도 과하지 않다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조세심판원에 근무하는 우리들은 내부적인 기준이 아닌 일반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청렴성을 갖추어야 한다”면서 사지(四知, 네가 알고, 내가 알고, 하늘이 알고, 땅이 안다)라는 고사성어를 인용해 “홀로 있을 때에도 도리에 어그러짐이 없도록 몸가짐을 바로 하고, 언행을 삼간다는 신독(愼獨)의 자세로 근무에 임해 달라”고 주문했다.

그리고 심 원장은 자신의 명함에 '청렴한 공직사회 제가 앞장서겠습니다'라는 문구를 선명하게 새겨넣고 청렴실천을 다짐하고 있다.

무엇보다 '16년 세정가의 청렴물결은 자유직업인단체인 세무사단체에서도 거세게 일 조짐이다.

지난 22일부터 시작돼 내달 2일까지 이어지는 회원보수교육에서 보통 회무자랑으로 끝나는 회장에게 주어진 윤리교육 시간을 통해 백운찬 회장은 손수 만든 청렴교육 교재를 들고 "나와 세무사들이 ‘청렴’해야 세금이 바로서고 나라가 바로 선다" 면서 "국민이 신뢰하는 반듯하고 당당한 세무대리를 구현하자"고 강조했다.

공직자들의 ‘청렴’을 강조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겠지만 전문자격사단체 회장이 회원들을 상대로 청렴을 교육하고 청렴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이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모습은 신선하고, 약간의 충격으로도 다가왔다. 아마도 세무사법 개정을 통한 세무사들에 대한 징계 강화조치와 함께 매년 늘어나는 세무사들에 대한 징계 숫자가 자칫 이대로 방치할 경우 세무사업계 전체를 무너뜨릴 수 있다는 위기감이 작용한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 뒤에는 33년3개월 동안 공직의 길을 걸으면서 누구보다 청렴하고 청빈하게 살아왔다는 백운찬 회장의 자신감에서 나온 것이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100년 뒤 아니면 600년 뒤 우리의 후세들은 임환수 청장, 심화석 원장, 백운찬 회장을 어떻게 기억할까. 지금 기자가 최 영, 이 이, 유성룡 선생의 청렴이야기를 들추어 이 시대의 화두를 이야기하듯 아마도 우리 후세들도 마찬가지의 글을 쓰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하지만 ‘세남자’들의 노력과 솔선이 있었기에 세정가의 청렴이 ‘조금은 나아진 것 같다’라는 이야기로 전해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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