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국세청장이 취임일성으로 “턱도 없는 인사 청탁하지 말라”고 했다는 소식을 반갑게 받아들인다. 옛날부터 ‘인사가 만사’라고 했다. 앞으로 국세행정의 많은 부분이 달라질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한다. 인사의 개혁을 출발점으로 하여 국세행정의 전반에 새 청장의 색깔로 바꾸는 개혁을 단행할 것이라는 예고로 보아도 좋을 것이다. 국민들의 기대하는 바에 부응하는 바람직한 방향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관행에 없는 인사로 본인의 마음고생이 심했음을 은연중 들어낸 것 같기도 하다. 이미 퇴직한 사람을 청장으로 모셔오는 새로운 역사 앞에 얼마나 아팠으면 취임 일성이 “턱도 없는 인사 청탁 하지 말라”일까. 그의 가슴이 따뜻한지 차가운지 모른다. 영혼이 아름다운지 어떤지도 알 수 없다. 천사인지 악마인지는 겪어보기 전에는 누구도 알 수 없다. 더구나 머리는 얼마나 복잡한 진화과정을 거쳐 왔는지 얼마나 많은 지식을 쌓아왔는지 측정할 수 없다. 그래서 누구도 감히 강민수 청장을 안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그저 우리 눈에 보여주는 것만으로 각자 자신의 능력만큼만 알 수 있을 뿐이다. 그래서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라는 말을 진리처럼 기억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인사가 만사’라고들 말은 쉽게 하지만 막상 인사가 쉬운 일은 아니다. 인사가 만사라고 무턱대고 자기 맘대로 인사만 먼저 손댔다가 망한 사례도 부지기수다. 그 대표적인 예가 자기 사람 심기다. 업무 능력, 조직 충성도, 영혼의 청명함, 배려하는 인성, 화합력 등 인사에 필요한 모든 요인들을 무시한 채 친소관계를 이유로 인사하는 경우 십중팔구 망신을 당하기 십상이다. 잘못된 인사의 전형이다. 대표적인 실패한 인사를 보면 아첨하는 사람을 가까이 중용하는 경우 대체로 인사권자의 눈과 귀를 가리는 최악의 인사로 친다. 대체로 인사 청탁을 하는 자들이 이런 부류라고 봐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그다음으로 소신이나 철학 없이 시키는 것만 하는 자를 중용하는 경우도 차악 정도는 될성 싶다. 이런 경우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 자신의 공을 떠벌리고 책임을 전가하는 소인배들을 귀히 대접하는 경우도 조직을 망칠 가능성이 높다.
그러면 어떤 인사가 올바른 인사인가? 이에 대한 정답도 쉽지 않다. 정답을 찾아가는 과정도 오답만큼이나 개인차가 커서 핵심을 집어내기가 어렵다. 인사를 잘하기 위해서는 먼저 조직원들의 능력과 장·단점을 파악해야한다. 그리고 전체가 수긍할만한 평가의 기준이 확립되는 것이 유리하다. 특히 실적이나 생색이 나지 않는 분야에서 묵묵히 헌신하는 사람들에 대한 배려가 있어야 한다. 또 자리를 걸고 자신의 아이디어를 관철시키는 용기와 배짱이 있는 사람들이 중용되어야 한다. 다면 평가에 의한 공정한 평가기준을 마련하는 것도 공정한 인사의 전제조건이다. 능력과 상관없이 생색을 많이 낼 수 있는 자리는 평가에서 박한 점수를 받아야 한다. 업무 분야별 배점이 공정하지 못하거나 특정인에 의한 평가에 의할 경우 ‘이(耳)현령 비(鼻)현령’이 되어 인사 불만 요인이 커지는 원인이 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는 말을 참고할 만 하다. 국가정보원 상징석에 새겨진 글귀다. 어떤 인사가 잘된 인사인지 정답에 가까운지의 잣대는 성현들의 가르침에서 찾아보면 좋을 것이다. 온고지신이라 했다. “옛것을 알고 지금 상황에 맞게 새로 고쳐 쓰라”는 얘기다. 조선 성종 임금께서 조광조에게 좋은 인재를 고르는 법을 하문했을 때 조광조는 “소위 군자는 자기를 낮추고 숨는 관계로 찾기가 어렵고 소인배들은 자기를 자랑하기 좋아하여 쉽게 눈에 띄는 법”이라고 충언했다. 좋은 인사란 숨어있는 유능한 인재를 찾아내기 위한 노력이 선행돼야 함이 중요하다는 가르침이다.
신임 청장이 취임 일성으로 “턱도 없는 인사 청탁 말라”는 의미는 국세청의 이미지 메이킹을 새로 하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나아가 인사에서 출발하여 국세청의 만사를 재정립하고 일하는 방식을 전면 개혁할 것이라는 선전포고로 봐야할 것이다. 국세청 전 직원이 긴장하고 개혁을 준비하라는 메시지로 봐도 무방할 것이다. 철저히 업무능력 위주로 판을 새로 짜겠다는 의지의 표출이다. 출신을 따지지 않겠다는 인사원칙을 천명한 것이다. 나이도 불문할 것이니 능력을 보이라는 주문이다, 국세청에는 지금도 나쁜 습성이 남아있다. 출신에 따른 편 가르기다. 출신에 따른 문제는 오래된 지연과 학연은 이제 어느 정도 해소되어가고 있는듯하다. 그러나 고시와 비고시, 공채와 세대 등 출신에 따른 차별은 엄연히 존재하고 있는 실정이다. 또 고위직은 고시출신이 점령하고 있으나 채용직급상의 차이에 의한 것이라 어찌할 수 없는 부분으로 인식되고 있다. 즉 연공서열이 은영 중 관습처럼 된 상태다. 발탁 등 획기적인 인사를 방해하고 있는 가장 큰 장애물이기도 하다. 중간간부는 세무대학 출신들이 핵심이 되고 있다. 세무대학의 특채출신들이 다수를 점령하면서 끼리끼리의 문화를 만들어 가고 있다는 지적은 아픈 부분이다. “상·하간 명령보다 세대 동문끼리가 더 잘 통한다”는 자조가 나올 정도로 세대 전성시대라고 전한다.
신임 청장이 말하는 “턱도 없는 인사 청탁”은 무엇인가? 국세청의 경우 승진대기자 반열에 오르면 보직관리 등 승진에 필요한 인사고가가 동점자가 많을 수밖에 없다. 원래 인사 청탁은 다른 조건이 엇비슷할 때 낙점을 위한 것이 대부분이고 스스로 승진대상이 안 되는 경우 아예 청탁을 생각지도 않는다. 물론 무슨 의미인지는 우리 모두 짐작하고 있다. 국세청 인사에서 유독 소위 ‘힘 동원하기’ 또는 ‘줄 대기’가 많았던 과거를 소환해보면 알만하다. 조직 내에 숨어있는 유능한 일꾼을 찾아내겠다는 의지로 해석하면 될 것이다. 나아가 일 잘하는 국세청으로 거듭나겠다는 의지이고 그 첫 단추를 인사에서부터 풀어가겠다는 장밋빛으로 읽힌다.
그래서 새 청장의 취임일성에 대해 일하는 분위기로 일신하고자 하는 의욕을 높이 평가하게 된다. 사실 관가에 해묵은 복지부동을 모르지 않는다.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 임기가 길어진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지나간 세월 몇몇 국세청장의 전례도 있다. 뿐만 아니라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면 “잘하는 네가 해라”면서 모든 책임을 지우는 못돼먹은 습성들이 이미 몸에 베어있다는 한숨이 적지 않다. “아무것도 받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어떤 목사의 당당함이 오버랩 되는 이유다.
최고 책임자만이 무엇이 됐던 시도할 수 있다. 그것은 복지부동으로 무능함을 입증하는 것보다 월등히 평가받아야 한다. 인사의 쇄신을 통해 일하는 분위기를 일신하고 뭔가 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한 노력과 고민이 중첩되면 그만큼 국세청은 발전할 것이다. 필자는 과거 청장들에게 업무에 대한 새로운 아이디어가 없고 열정이 부족하여 복지부동한다고 일갈한 바 있다. 업무에 자신의 스타일을 입히고 전체 조직원들의 머리를 하나로 모아 아이디어를 낸다면 국세청의 미래는 맑음이다. ‘인사가 만사다’라는 말은 진실이고 진리이다. 국세청장의 인사혁신이 국세청 개혁의 주춧돌이 되었으면 한다. 새 국세청장의 건투를 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