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년 6월, 상세내용 보고 후 나가는 ‘골프사전신고제’ 실시

10년이 흘러도 조사국 직원들의 납세자와 골프 여행은 여전

“부조리에 있어서는 온정주의를 배격하고 엄정한 신상필벌이 이루어지도록 하겠다.”

강민수 국세청장이 취임 일성으로도 부조리에 대한 강력한 경고 메시지를 내놓았지만, 최근의 국세청은 국민에게 인정받겠다는 포부와는 다르게 의심만 깊어지는 국세행정의 모습을 보여줬다.

최근 ‘세무조사 무마’ 청탁을 받고 뇌물을 수수하면서 실제로 조사 결과를 조작하는 등 세무공무원의 비리가 잇따라 터졌기 때문이다. 이 사건에서 세무조사 무마는 물론, 국세청 직원들의 ‘골프 접대’는 더 큰 문제가 됐다.

세무조사 담당 공무원이 조사 대상인 업체와 전관 세무사를 동행해 원정 골프 여행을 떠나고 접대를 받은 것이 세상에 드러났고, 조사공무원과 함께한 다른 조사국 팀원들도 징계를 피할 수 없었다.

국세공무원에 대한 ‘골프 금지령’은 뿌리 깊은(?) 역사를 자랑한다. 2000년대 이후 국세청의 골프 금지령만 하더라도 청장마다 지시했던 사항이다.

과거 `00년 안정남 국세청장은 간부회의에서 본청, 지방청, 일선 세무서까지 골프 부킹 청탁을 전면 금지한 바 있다. 감사실 조사 결과 매주 상당수 직원이 유력인사들의 부탁을 받아 골프장에 부킹 청탁을 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기 때문이다. 특히 골프장이 밀집한 경기도 일대 세무서장의 경우 일주일에 평균적으로 3, 4건 이상의 부킹 부탁을 받는 것으로 집계되기도 했다.

안 청장은 취임 초부터 지방청장급 이상 고위직이 승인을 받은 경우를 제외하고는 세무공무원들의 골프를 줄곧 금지해 왔으며, 국세청 전 직원은 골프장에 출입하지 말고 지방청장급 이상 간부 중에서 불가피하게 골프를 해야 할 경우 차장이나 청장에게 사전에 승인받을 것을 지시한 바 있다.

또한, 이용섭 국세청장은 `03년 4월10일 간부회의에서 “국세청이 이제는 권력기관이 아닌 만큼 세무공무원이 골프장에 부킹을 부탁하는 일도 없어야 한다”며 “감찰 활동을 벌여 골프 접대받은 직원은 강력히 처벌하고 골프장 부킹을 부탁하는 국세공무원은 인사조치를 당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 청장은 “기업 경영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향락성 접대비를 줄이겠다는 정부 의지를 보여주기 위해 청장 재임 기간 중 골프를 치지 않을 계획”이라면서 “골프를 치려면 내 비용은 직접 계산해야 하는데, 내 월급으로 보아 남에게 신세 지지 않을 수 없기에, 직원들도 내 뜻을 헤아릴 것이기 때문에 국세청에서 골프 문화가 자연스럽게 없어질 것”이라고 말해 사실상 국세청 직원들에 대한 골프금지령을 내렸다.

이와 함께 업체나 납세자로부터 골프 접대를 받는 고위 간부 등 세무공무원에 대해서도 강력한 처벌을 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이주성 국세청장도 취임 후 골프 금지령을 내렸고, 처음에는 6급 이하 전체에, 이어 사무관까지 골프 금지대상을 확대하기도 했다. 당시 LG CNS가 현금영수증 전산시스템 사업을 따내기 위해 국세청에 전방위 로비를 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는데, 국세청 모 과장과 모 국장이 함께 회사로부터 골프접대, 식사제공까지 받았으며 모 과장의 경우 프로젝트 한 건 해주면 승용차 1대와 골프채 등을 요구했다는 의혹이 있었다.

전군표 청장도 `07년 모 국장이 한정식집에서 뇌물을 받은 사건이 발생하는 비위 사건이 터지자 ‘골프 금지령’을 내렸다. 이때부터는 ‘국세공무원 비위 발생=골프 금지령’으로 이어지는 코스를 밟았다. 자발적인 라운딩 취소에도 불구하고 힘 세기로 유명한 국세청 감찰은 골프장에서 잠복하는 등 대대적인 단속에 나섰다.

물론 일부 직원들은 ‘자기 비용으로 골프를 친다는데 이를 막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했지만, 일부의 일탈이라는 국세청의 해명이 통하기 위해서는 전체가 자중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정권이 교체되면서 이명박 정부가 들어섰고, 한상률 청장이 재임하던 시기에도 골프금지령은 유효했다. 당시 새 정부가 출범하며 공직자들을 향해 ‘이 시점에서 골프를 치는 수석이나 비서관이 없을 것’이라는 발언이 나오자 대통령 의지에 따라 국세청도 자발적으로 골프 자제에 동참했던 것이다.

문제는 한상률 청장이 그림 로비 등 사건을 겪으며 불명예 퇴진을 하게 되자 당시 부적절한 골프 회동이 문제가 된 것이라는 지적과 함께 사무관급 이하까지 적용되던 골프 금지 대상이 복수직 서기관급 이하까지 확대됐다.

서장급 이상은 유관기관과의 업무 공조 등의 불가피한 경우에만 골프를 칠 수 있도록 허락했다. 이때에도 비용은 무조건 본인이 부담해야 하는 것이 전제였다. 또한, 감찰부서에 미리 누구와 언제, 어디서, 무엇 때문에 골프를 치는지 의무적으로 신고도 하게 했다.

백용호 청장이 취임했을 때도 골프 금지령은 어김없이 있었다. 당시에는 천안함 침몰 사태가 발생하면서 공직자들의 복무기강 확립을 위해 국세청이 골프 금지령을 내리며 단속했던 것.

이현동 청장 시절이던 `11년에는 청장이 골프 자제령을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외부인으로부터 부적절한 골프접대를 받은 지방청 조사국 소속 팀장 등 직원 6명이 적발되면서 이 중 5명이 징계조치됐다. 서울청 조사1국, 조사4국, 대전청 조사2국 등 주로 조사국에 근무하는 이들이었다.

김덕중 청장은 `13년 취임 이후 첫 관서장회의에서 본청 및 지방청 국장급 이상 고위공직자는 100대 기업 임직원과의 식사와 골프 등 접촉을 전면 금지하는 것으로 그 내용을 구체화했다. 이는 전군표 전 청장과 허병익 전 청장이 CJ 그룹으로부터 수억 원의 금품을 받은 혐의로 구속기소되고 송광조 서울청장까지 골프 로비 의혹으로 옷을 벗으면서 내려진 조치였다.

그리고 새 정부가 들어서며 박근혜 대통령이 ‘골프 활성화’ 방안을 주문하면서 공직사회에도 골프 금지령이 해제되는 것 아니냐는 기대감이 커졌다. 하지만 국민들로부터 세금을 징수하고 세무조사를 실시하는 국세청의 입장에서 잊을만하면 뇌물이나 비리 사건이 터진 데다 세월호 참사 이후 골프 라운딩은 자제령 없이도 부담스러운 상황이었다.

실제로 국세청공무원행동강령에는 골프 접대를 받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그리고 `16년 9월부터 청탁금지법이 본격적으로 시행되면서 국세청장 발 ‘골프 금지령’은 모습을 감췄다. 청탁금지법 1호가 누가 되느냐 조심스러운 모습이었지만, 국세청 모 간부가 세무서장으로 재직하면서 골프 관련 청탁금지법을 위반한 사례가 발생했고 다시 조심하는 분위기였다.

시간이 흘러 코로나19가 발생하자 다시금 국세청 간부들을 향한 골프 금지령이 내려졌고, 코로나가 잦아들자 조용한 틈을 타 조사국 직원들의 골프접대 사건들이 터지게 됐다. 특히 감찰 담당 직원들이 밤낮없이 감찰 활동을 적극 펼치고 있다는 전직 고위직 간부의 말과는 다르게 해당 지방청 직원들의 여러 차례 골프 여행은 감찰의 감시 레이더망에는 걸리지 않았다.

이렇듯 반복되는 골프 금지령은 국세청뿐만 아니라 공직사회 전체에서도 꾸준히 있었지만, 과거 국세청은 골프 회동에 대해 고강도 감찰행위를 실시해 왔다. 이 과정에서 과거와 다르게 골프가 대중화되고 하위직에만 금지하는 것에 대해 불만이 가진 직원들도 늘어나는 것이 사실이었지만, 이 같은 청장들의 계속되는 골프 자제, 금지령에도 `24년 현재까지 국세공무원들의 부적절한 골프 모임은 계속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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