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줄 알고 베어내려던
마당의 모과나무에
어느 날인가부터 연둣빛 어른거린다
얼마나 먼 곳에서 걸어왔는지
잎새들 초록으로 건너가는 동안
꽃 한 송이 내보이지 않는다
모과나무 아래 서 있을 때면
아픈 사람의 머리맡에 앉아 있는 것 같아요
적막이 또 한 채 늘었어요
이대로 죽음이
삶을 배웅 나와도 좋겠구나 싶은
바람 불고 고요한 봄 마당
[박정원의 시에서 시를 찾기]
“초록으로 건너가는 동안”의 희열을 느끼던 순간도 잠깐, “이대로 죽음이 삶을 배웅 나와도 좋겠구나 싶은” 경우가 나를 종종 괴롭혔습니다. 파스텔톤 “연둣빛”인 “봄 마당” 시절이 제일이었던 것 같아요. ‘희망의 청춘’을 이루고자 노력하는 동안 수십 번의 봄이 찾아왔지만 그걸 놓치기만 했습니다. ‘맑고 고요한 이미지 시인’의 시집 『바람 불고 고요한』(문학동네, 2022)의 표제작입니다. 숙독하고 나면 나도 모르게 고요해집니다. “봄 마당”을 찾는 지금의 나를 뼈저리게 되돌아보면서 말이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