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우 시인
김은우 시인

새라고 발음하면

새는 벌써 날아가고 없습니다
 

새가 실루엣만 남기고 사라질 때

폭설이 시작됩니다


우르르 몰려다니던 새를 좇던 바람


눈 위에 글자를 쓰는 순간

글자들이 하얗게 지워집니다
 

사슴의 발자국이 끝나지 않고

모든 게 느리게 흘러갈 때


슬픈 일이 지나가면 가끔은

기대하지 못한 기쁨도 왔다 갑니다


옆을 내주고 허공이 되어버린

나무들 고요에 뒤덮이는


기도보다는 노래가

길다보다는 깊다가

어울리는 여긴 어디입니까


기다려도

기다려도


와야 할 한사람이 당도하지 않고

집으로부터 점점 멀어집니다
 

[박정원의 시에서 시를 찾기]

시인 박정원
시인 박정원

한동안 드뷔시의 “달빛”에 취했던 적이 있습니다. 은은한 달빛의 애상을 베토벤의 “월광”과 함께 피아노로 다독이던 그때 그 시절이 사실은, 내 인생의 절정기였던 것 같습니다. 속내를 전하지 못했던 청춘의 달빛이 여전히 비춥니다. 김은우 시인의 시집 『만난 적은 없지만 가본 적은 있지요』(2024,한국문연)에서 “어둡고도 환한 어제로부터 달아나는 이야기”를 듬뿍 읽어낼 수 있는데, 특히 “뼈 아픈 이별의 노래”가 “매혹의 순간들”을 가만히 어루만져줍니다. 없어진 듯 늘 있는, 사라지지 않는 슬픔의 “삭월(朔月)”을 앞세우면서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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