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 생활하는 바자우족 마리아는 배 위에서
셋째를 낳다 숨을 거두었습니다
배 위에서 산 일생이
그때서야 외딴섬 깊은 흙 속에 안식했습니다
음악 행상에게서 노래를 사서
노란 비밀을 노래에 숨겼어요
노래를 들으면
비밀이 향기처럼 흘러나옵니다
눈도 안 뜬 아기를 두고
흙 속에 묻힌 마리아
죽어가는 어린 돌고래를 등에 업어
숨 쉬게 하는 어미 돌고래
말할 수 없는 것들은 침묵을 지켜야 합니다
노래를 사서 노래에 침묵을 숨겼어요
보호 종료가 끝나 보육원을 떠나는 열여덟 살 은이는
어디로 가야 하지요?
마음의 근육을 기르기에 좋다는
오래된 차밭을 찾아가는 길
왜 슬픔을 먹는 포식자는 없는 걸까요
새벽에 보는 죽은 이의 전화번호
페북 속 환한 얼굴이
깨달음은 늘 뒤늦게 온다고 속삭입니다
고요한 시간
시간의 등 뒤에 서 있으면
침묵의 중얼거림
침묵에도 입이 있습니다
[박정원의 시에서 시를 찾기]
“왜 슬픔을 먹는 포식자는 없는 걸까요.” “깨달음은 늘 뒤늦게 온다고 속삭입니다.” 수많은 생명이 부딪히고 살아가는 세상엔 늘 끝이 보이지 않는 비극이 존재합니다. 그래서 시의 생명 또한 무한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좀 더 가까이 다가가 소통하고 싶은 이유이기도 하고요. 나이가 들수록 “죽은 이”들을 맞이하는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마리아”를 둘러싼 시적 이미지를 수시로 다중매체에서 접합니다. 최근에 발간된 시집 『사과나무 아래서 그대는 나를 깨웠네』(2024,천년의시작)를 탐독하며,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생(生), 돌아봅니다.
